이레의 항변 - 왜 나만 청소해야 돼?

by 두레엄마 posted Apr 2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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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벼르고 벼르던 아이들 방 청소를 했다.
아이들 방은 아이들이 치워야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는데,
사실은 게으름을 위장한 원칙일지도 모른다(ㅎㅎ).
되도록 손을 안대고 있다가 두레와 이레가 같이 쓰니 한 놈은 노상 치우고
한 놈은 마냥 어지르고..
이제 한 놈도 동화되어 가는지 같이 어질러 놓고있었다.
방을 들여다보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기에 씩씩대며 치우고 있는데 이레가 들어왔다.
정작 어지르기는 두레가 거의 다 어질러놓는데....
이레를 야단을 치니 예전에는 "네"하며 치우던 놈이
"두레오빠가 다 어질러 놓는데 내가 왜 치워야 되느냐,
왜 맨 날 나 만 치워야 되느냐?, 나도 치우기 싫다"하며 그래서 자기도 안 치웠다는 것이다.
그 말에 화가 나기에 "그러면 엄마는 왜 엄마가 먹지도 않는데
니 밥은 해주며 니 옷도 입지 않는데 니 빨래를 왜 해주냐니까
그건 엄마라서 라나!...

하느님이 너를 왜 우리 집에 주셨는지, 그리고 두레 오빠를 왜 우리 집에 주셨는지
엄마 아빠에게 니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설명을 해도 이레는 이제는 엄마의 그 호소(?)를 듣지 않겠다는 듯이
결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작년 가을 학교 학예회가 생각났다.
이레는 요번 학예회에 올 수 있냐고 몇 번이나 묻고 또 확인을 하곤 했다.
우리는 두레 때문이라도 학교 행사(가을 운동회와 학예회이지만)에는 참석을 하는 터라 그러마 하고 대답을 했음에도 이레는 자꾸만 묻고 또 묻고 확약을 받곤 했다.
그러더니 학예회 전날 사실은 자기가 내일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읽는다며 꼭 오시라고 말했다.
그 날 난 그 순서가 시작 되기도 전에 눈물이 나고 있었다.
옆에 앉은 두레 아빠에게 "나 벌써부터 눈물이 나와" 하니
평소에 하도 잘 우는 것을 아는 지라 아무 말도 않는다.
이레의 순서가 되어 이레는 나와서 차분히 편지를 낭독했는데
언젠가 이레가 엄마 아빠는 오빠만 사랑하고 자기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었을 때 해 주었던 아픈 손가락 이야기.
아픈 손가락은 아파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고,
그렇지만 다른 네 손가락도 다 한 손이라서 사랑한다고...........

난 내내 울고 있었다. 이레의 편지 낭독이 끝나고 나니
두레 아빠는 아무 말 않고 있더니 울어서 빠알갛게 된 내 얼굴을
보며 "이레 이제 다 컸네" 한다.......
내 모습을 보던 작년 이레 선생님께서는
"아니, 왜 우세요. 이 편지는 전교에서 이레 어머님만 받은 편지인데요,
기뻐하셔야지요."  물론 다 아시고 하시는 위로의 말씀이신게지.
그렇게 속이 멀쩡한 녀석이....
오랜 시간 버티던 이레는,
"사실 엄마도 힘들단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단다. 하지만 엄만 니가 두레 오빠라도 그렇게 했을꺼야.
그리고 엄마가 포기하면 오빠가 얼마나 불쌍하겠니.
그렇게 할까?" 하니 이레가 울면서 와락 안긴다.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속상해서 나도 일부러 그랬노라고..."
나와 이레는 둘이 안고  엉엉 울었다...

어제 아이들 방을 보니 한쪽 벽은 두레의 지하철 노선도로
가득 도배되어 있고 벽이며 책장도 노선도와 한국 철도노선뿐이다.
이제는 방 안치운다고 이레만 탓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지하철과 한국 철도의 광고판이다. 사설 광고판.
이레가 이해가 간다.
같은 방을 쓰니 한 놈을 위해서 한 놈을 야단 칠 수도 없고.
두레는 그 것이 놀이이자 공부인데.
그래서 두레 아빠와 나는 다락을 예쁘게 꾸며서 두레의 전용 공간으로 하기로 했다.
며칠 서둘러서 두레에게 두레 전용 한국 철도와 지하철 노선도 게시판을 만들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