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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나루>두레네이야기

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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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96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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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냉한 감성의 소유자처럼 저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먼저 살다 떠나온 곳을 그리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아래 34년 동안이나 태어나 자라고 살면서 그곳을 뜬지도 만 9년이 되가고, 그리곤 6년 동안이나 정붙여 살았던  바다가 가까웠던 공동체마을도 발길을 옮기고는 한번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는게 남자라는 영화대사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잔잔한 정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갈바람언덕으로 이사오고 나니 지난 3년 저희가 머물렀었던 섬진강이 휘돌아가는 지리산 자락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그곳 그 장소는 언제나 그대로이니 갈 수만 있으면 언제든 가면 되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떠나온 곳은 그립지 않는데 두고 온 것이 있어서만 같습니다. 시골을 모르고 살던 순 도시인인 저에게 그곳은 나의 고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이 없는 저에게 그곳은 과분한 곳이었습니다. 고향은 나서 자란 땅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있지 않고 사람이 사람를 배려해주는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을 3년만에 이웃으로 인정해주고 놀아주고 받아주신 이웃들.
아무런 봉사도 못했는데 예우만 해주셨던 교회 식구들, 부족한 두레를 친구로 삼아 스스럼없이 놀아주던 아이들, 사람이란 살면서 시덥지도 않은 일에 티격태격 할 일도 많은 편인데 우리가 살았던 지난 동안에는 그런 알도 없이 보냈던 것이 모두 꿈만 같습니다.

3년을 살았는데도 정을 듬뿍 주신 고마운 사람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리움이 절로 나는 것 같습니다. .큰 산아래 넉넉함이 있다는 말처럼 지리산 아래서 받은 그 정기가 어디로 갈바를 찾지 못하다가 어찌 길 잘못 든 외지인인 저희에게 온통 쏟아진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이사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중 몇분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그런 교육청의 비리 공무원은 도 교육위원회에 고발하면 간단하다고... 저도 그런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아가 치밀고 씩씩거리며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반드시 고발하고야만다 하는 결연한 심정을 두레엄마에게 토로하곤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제가 그런 일을 벌리지 않고 지순히 물러난 것은 어쩌면 그곳에 살면서 3년간 받아왔던 사람들의 정이 사람이 서로를 험악하게 하는 막가는 일을 벌리지 못하게 한것만 같습니다. 당시에 분이 안풀려 있을때에 어떤 책의 우화를 보았는데 그 내용은


"옛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4명의 왕자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각각의 자식들에게 1년중 한철에만 사과나무를 바라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첫째는 겨울철에, 둘째는 봄철에, 셋째는 여름에, 넷째는 가을에만 사과나무를 보고 1년 뒤에 자기가 본 사과나무의 모습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1년뒤에 왕자들이 모여 왕에게 자신들이 지켜본 사과나무의 실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앙상하고 볼품없고 황량한 나뭇가지는 불때어버려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생명력이 돋는 나무에 핀 화사한 꽃과 향기를 이야기했고, 셋째는 왕성한 초록의 무성하고 강한 기상을, 넷째는 풍성한 열매를 달고 있는 여유로움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나무라도 느끼는 사람에 따라 그 성품은 다르나 실은 그  모든 것이 한가지라는 비유일 것입니다. 저야 비리에 접한 부패공무원의 야비함과 딱딱함만을 보았지만은 그분도 돌아가면 한 떡을 나눠먹는 절친한 동료이며. 가족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일지도 모릅니다. 한철만 바라본 왕자처럼 저에게는 그분들의 사무적인 태도만을 접했을 것입니다. 그 책의 우화를 보고는 이것이 이 순간에 내 눈에 띤 것은 하늘이 저를 보고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이후 원통함이 삭혀지면서 할 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허다한 이들이 고향을 떠나 열심히 새로운 삶의 모습을 펼쳐가고 있는데, 저 또한 아름다운 고향이  생겼으니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내 삶을 살아가는게 당연한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에게 삶의 여유를 가르쳐준 곳, 그래서 그리움이 절로 일어나는 고향. 그곳에 가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이제는 저희에게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쌀, 감 고구마에 된장과 깻잎까지 든 택배를 몇 개나 받았습니다. 고향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떠났는데도 떠나지 못하게하는 좋은 기운이 넘쳐나는 보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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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3.11.13 09:38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두레아빠의 고운 심성에 지리산 산마을의 깊은 정이 자리할 수 있는 여유가 겹쳐진 때문이라 여깁니다.
    다친 발은 복합골절이 아니라면 4주 정도만 지나면 우선 할겁니다.
    행운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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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내 2003.11.13 20:18
    얼런 건재해 지셔가지고 추풍령 그 좋은곳의 많은 정을 몸소 느끼시길 바랍니다.. 여기 저기가 다 마음을 주면 고향이 되더군요.. 내려가는 길에 한번 필히 찿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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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3.11.14 09:53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우화입니다. 또 그걸 읽고 자신의 마음을 바로 추스리는 님도 가슴 속에 참 넓은 공간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구나 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괜히 엷은 미소가 입가에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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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득이 2003.11.19 10:08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면서 두레아빠의 선한 눈웃음이 떠오릅니다.
    쉬는 동안 맘 편히 가지세요. 무리하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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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막 2003.12.09 16:03
    ㅎㅎ~ 그 장면에서 페르시아의 사과나무를 받아들이셨군요. 장차 두레아빠의 복락이 무궁하리라 생각됩니다. 세상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레아빠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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