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지내시죠?

by 두레엄마 posted Sep 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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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이사온지가 한달이 되어갑니다.
이곳은 가을이 없다고 이곳 팀이 이야기 하더니
요즈음 계속 비가 오더니만 설겆이를 찬물로 오래하다보면
손이 조금 시려워집니다.
한 보름전 휴일 오후에 민서맘(??)과 산책을 하다가 보니
학교의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둘이 정신없이 주어담고 하느라 오후모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손가락이 까맣게 물들었습니다.
손가락의 지문이 까맣게된것은 괜찮은데 손톱의 속까지 까맣게
되어서 어디에서든지 손을 내놓기가 민망하더군요.
시골 살면서 일하는 건 괜찮은데 손톱밑에 풀물들이 들어서 꺼멀땐...
그래서 꼭 장갑을 끼고 해야지 하면서도 일을 보면 그냥
달려드는 품에 여지없이 손톱밑이 꺼멓게 되곤 했지요.
아직도 얼치기 시골사람입니다.

올 여름을 학교문제로 속을 끓이다가 정신없이 이사를 하고
이제사 쬐끔씩 정신을 차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쬐끔씩 정신을 차려가는데 우리집 컴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계속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의 속을 끓이고 있지요.
그 바람에 여러분들께 인사를 못드려서 사람의 도리를 못하고 있다는
맘에 조금 불편하지요.
아이들은 그런대로 적응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레는 학교에 간 날 바로 친구를 사귀어 친구집에 놀러갔다오더군요.
이사오기전 자기걱정은 말고 오빠나 걱정하라고 하더니만
그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두레는 추풍령 중학교의 웃음보따리 인듯합니다.
아이들마다 두레이름을 대고 물으면 웃기부터 하니 말입니다.
같은 반 친구의 말에 의하면 두레는 그간 선생님께 두번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아직 분간이 안되어서인지 선생님께 아저씨라고
불렀다네요. ^.^
또 한번은 선생님께 반말을 해서인데 두레보다는 두레의 말버릇을
고쳐주지못한 저희들의 잘못이지요.
아마도 선생님께도 호구조사를 했나봅니다.
두레를 만나는 분들은 누구나 피해갈수 없는 "공포의 호구조사"
"어디서 왔어? 어디 살아? 지하철 몇호선?" 아시지요?
학교의 아이들은 새로운 웃음을 주는 두레가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지 아직은 별 문제가 보이지 않는군요.

이곳은 아주 조용합니다.
밤이되어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잠이들면 아침까지 정말 조용하게
지내게됩니다,
두레아빠는 이사를 하게된 아쉬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색없이
식구들이 불편함이 없이 살수있도록 이곳저곳을 고치느라 구상과
실천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 아직도 마음 한 켠이 휑하니 이상합니다.
지리산 포탈의 "내마음의 고향 지리산" 이라는 말이 정말
가슴에 팍팍 들어오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좋아하는지 왜 마음의 고향의 고향이 되는지
이해가 됩니다.
떠나있게되니 더 그리워지고 언제나 그리워하며 돌아갈
마지막 안식처......
저희 집 사이트에서 아직 바뀌지 않은 저희의 옛집을 보면
잠시 옛시간이 지금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레의 표현처럼 그 곳에 대한 "상사병"이 생겼나봅니다.
(이레가 어느날 "엄마, 나 상사병 걸렸어요. 자꾸만 토지초등학교가
생각나고 송정분교가 보고싶어요." 하더군요.
그래 상사병이 아니라 향수병이라고 고쳐주었지만 어쩌면 그 표현이
더 정확할 것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작년엔가 깊은 가을에 피아골을 산책할 때 많이 피어있던
상사화를 보며 같이 갔던 사모님이 알려준 상사화와 그 전설이
생각이 나면서 그렇게 상사병이 깊어지기 전에 얼른 고향(??)에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가 언제나 소망했던 돌아갈 고향이 있고
그 곳에는 언제나 반겨줄 친정식구들(그곳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친정으로 생각하라고 하셨거든요.)이 있음에 감사하지요.
그곳을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때 언제든지 살다가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그 때는 힘받으러 오겠다는
저희의 말에 언제든지 오라며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씀들에
얼마나 위로와 힘을 받았는지요.
산아래에서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던지,
언제나 말없이 기다리며 힘든 몸을 이끌고 찿아오는 사람들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산.
왜 그랬냐며 묻지않는 산.
이제는 내 고향의 큰 산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