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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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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2004.07.07 21:50

터주대감의 입술

조회 수 165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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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은 다른게 없다는 신토불이 이야기는
국산 식품 애용을 주창해온 농협의 대표적인 이미지메이킹 작업의 성공작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먹는 것과 달리 전혀 엉뚱한 데에서 이 신토불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아마도 요 몇 년간 시골에 있으면서 몸으로 체득한
어찌보면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모기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된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충북 옥천의 금강으로 흘러드는 어느 냇가에 텐트를 치고 수련회를 갔었는데,
그 곳 모기가 얼마나 극성인지 저녁때에도 물 속에서 나오기가 싫었을 정도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면 안물렸거든요. 팔이 드러나면 팔뚝으로 새까맣게 달려드는데
어찌나 지독한지 당시 고등학생이면 누구나 갖고 있던 교련복을 뚫고 물 정도였습니다.
밤새 모기에 시달리다 낮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으니 그 곳에서의 3일 야영이 밤마다 모깃불 밝히고 어쩔 수 없이 깨어 있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수련회였습니다.
모기가 많아서인지 개구리도 많았고 덩달아 개구리 먹으려는 뱀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기는 세계 어느 지역에나 서식하고있으니 서울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간 안물렸을리 없는데 아마도 태어나 그때처럼 밖에서 오지게 물렸던 적도 없던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둔감한 편이라서 잠자리에 모기가 앵앵거려도 한 두 마리쯤이야 먹어야 얼마나 먹겠냐. 몇 번 먹다 배부르면 말겠지 하고 그냥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두레엄마는 밤새 두드려 잡아야 잠을 자는 형입니다.
저야 간편하게 모기약 휘익 치고 그냥 자지만,
모기약 냄새 싫어하는 두레엄마는 문 닫고 짝짝 손바닥 부딪치며 다잡은 다음에 자니
모른 채 하고 자는 저를 보고 투덜거릴 밖에요.
그런데 매일 낮에 모기에 물려 긁어대는 것은 정작 저입니다.
저는 내가 당뇨환자라 피가 달콤하니
모기들이 더 덤벼대는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지리산 송정분교에 살 때에 저는 우리 집 모기가 별로 독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물리긴 물리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 여름철에 묵고 가신 분 중에 몇 분은 이곳 모기 지독하다고들 그러더군요. 저야 이상하다 그랬지요.

그 해 9월에 제주도 서귀포의 선배님 집에 놀러갔습니다.
몇 일 묵었는데 제주도 모기 지독하데요.
얼마나 가려운지 첫 날과 그 이튿날 두레엄마는 밤새 짝짝거렸습니다.
다음날 이 동네 모기 대단하다고 그랬더니 집주인 왈
"아니 모기가 있어, 이상하다 우리 집에 모기 없는데, 있어도 하나도 안 독한데..."

지리산으로 민서네가 놀러왔습니다. 하루를 자고 난 후
"형네 동네 섬진강 모기 대단해요 대단해" 그러더군요.
저는 당연히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랬죠.

제가 이번에는 민서네 추풍령(지금은 우리가 사는 곳)에 놀러갔습니다.
"야 니네 동네 모기 무지하게 독하다 야" 제가 그러자
민서아빠는 아닌데 우리 동네 모기 별로 없는데 그러더군요.
사실 이곳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다른 곳보다는 모기가 별로 없는 지역이긴 합니다.
작년에 이곳에 처음 이사와서 그래도 한 달은 모기에 시달렸습니다.
9월이 넘어 가을 바람이 불자 모기가 사라지더군요.
그리고 이제 해를 넘겨 다시 모기가 출몰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분명히 작년에 굉장히 가려운 독한 놈이라고 여겼었는데
올해 분명 물렸는데 하나도 안가렵습니다. 아직 철이 일러 그러나...

그러면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그래 이게 신토불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거의 일년 넘게 저는 이 동네 물을 먹었습니다.
이 동네 물 먹고 자란 장구벌레 엄마들하고 물 동창이 된 셈입니다.
이 동네 공기를 같이 들이 마셨고 같은 산하의 풍경을 마주한 셈입니다.
모기와 저는 한 동네에서 자라 생태적으로 공유할 체질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올해도 분명히 이 지역의 이방인들은 이 곳 모기 타령을 할 것입니다.
아니 전국의 산하에 발을 들여놓는 낯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입니다.
"야 이 동네 모기 지독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 동네 모기 탓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이 아니면 당연한 것입니다.

옛부터 낯선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풍토병에 걸렸습니다.
풍토병의 병균이 왜 그 지역 사람에게는 안 걸리고
문명이 진보하고 의료 기술이 앞선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만 골라 걸렸을까요?
터주대감의 심술일까요?
그 땅과 그곳의 사람은 다를 수가 없는 자연스런 일체인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그 곳 대감님의 키스를 두려워한다면
자기 동네를 떠나지 않는게 좋을 듯 합니다.

  • ?
    허허바다 2004.07.07 22:38
    음... 이글을 안사람에겐 보여 주면 안되겠습니다.
    안 그래도 여름에 발걸음 떼는 것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건 또 좋은 구실거릴 하나 쥐어 주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 신기하죠? 물 동창이라... 허! ㅎㅎㅎ
  • ?
    부도옹 2004.07.08 02:52
    ^^* 이미 피를 나눈(!) 형제라 점점 무뎌지는건 아닐까요? ㅎㅎ
    먹거리가 아닌 것에서 신토불이를 생각하니 재미 있습니다.
  • ?
    슬기난 2004.07.29 20:54
    밤에 손뼉소리에 잠을 깨는것은 저하고 일맥상통하는데가 있군요.
    한수내 모임에서 두레네식구들의 체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왔었는데 밤새도록 박수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한번 들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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