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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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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조회 수 160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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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대 국민학교 다닐 때 운동장 담벼락 밑 양지녘에서 "묵찌빠"라고 부르던
일종의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부르던 초입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감자에 싹이 났다 잎이 났다"

하고는 주먹을 내밀며 "묵"이라고 있는 힘껏 상대방이 깜짝 놀라게 소리를 지르던 놀이 말입니다.


올 초에 감자값이 무척 비싸 두레가 좋아하는 감자를 제대로 사먹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에 날이 푸근하던 날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종자 값도 무척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더군요.
아마도 작년에 비가 자주 오며 감자농사가 흉년이 든 탓이라고 봅니다.
어렵사리 강원도에 사는 친구가 옆집 할머니가 심다 남은 종자라며 보내주어 감사히 심었지요.
그날따라 식구들이 일이 많아 모두 외출한 사이에
택배로 받아 내친김에 혼자 심었습니다.
고랑을 따라 한 뼘 깊이로 파고  팔꿈치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이들은 농사의 파종시기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심으면 나온다고 여깁니다. 저도 식물은 땅에 뿌리만 박히면 자라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지요.
시골에서 살고 싶어도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번도 농사짓는 것을 어깨너머로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책방에 가서 원예에 관한 책들을 구해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 무턱되는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흙에 대한 그리움, 전원에서의 삶이라는 인간본연의 자연주의 철학을 아무리 들어도
농사일에 대한 막연함을 갖고서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시를 떠난지 어느새 햇수로 십년째 접어듭니다.
농사를 알아보겠다고 공동체에서 산적도 있었으니 꽤 오래된 셈입니다.
그러면서 흙을 접하며 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내리게 된 결론이 있습니다.

아! 나는 농사일로 사람들에게 보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못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체질도 약골이고 육체노동에 길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흙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즐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땀 흘린 뒤의 보람찬 하루에 대한 뿌듯함을 좋아하지만
하루를 그리 일하면 다음날에 여지없이 몸살을 앓곤 하는 체력으로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현살상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그리움을 찾아 나선 저에게는 좌절이라고 보는게 좋을 것입니다.
시골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름대로 준비해왔던 모든 것들이 경제적으로 뒤를 받치지 못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위안을 받는 온갖 즐거움으로 인해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는 유혹을 넘어섰을 뿐입니다.
그 즐거움이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운동장에서 개들과 노는 것과
비오기 전날의 와글거리는 개구리울음과
물골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더 잘 흘러가도록 삽질하는 것과
콩밭 사이로 어른거리는 까치 세끼들에게 돌 던지는 것을 포함해서
고추가 미끈하게 가지 사이에 달리는 것을 만지작거리는 촉감으로
성적 유희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심은 감자밭 고랑 사이를 오늘도 걷습니다.
풀은 마누라가 진종일 무릎이 닳도록 꿇어 앉아 호미로 매었기에 매끈합니다.
고랑사이로 걸으며 어느덧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무성해진 틈새로 잡초를 뽑으며
하얀 감자꽃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심은 감자이기에 다른 작물보다도 무척이나 애착이 가는 밭고랑입니다.
두레엄마는 학교 뒤 밭에 천 주나 되는 고추를 심었지만,
그래서 더 손길이 필요한 널따란 일터이지만
그래도 저는 고추밭보다 감자밭을 더 자주 내려옵니다.

어줍지 않은 농사 흉내를 내도 확실한 것은
저는 농사로 돈을 남겨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한자 파자(漢字破字)를 하며
발견한 나름대로의 진리가 생각납니다.
농(農)이란 흐를 곡(曲)에 별 진(辰)으로 별의 흐름, 즉 우주의 흐름에 맡기는 일입니다.
농사일이 사람이 하고 싶다고 자기 의지대로 주관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이 차는 철 따라 지으며
황도가 흐르는 계절에 따라 심으며,
비가 오며, 바람이 부는대로,
해라고 불리우는 별이 비쳐주는 흐름에 따라 맡길 일입니다.

엣사람들이 그랬다지요 농사중의 최고는 자식농사라고...
적절히 시기에 맞추어 사는 일이고
환란과 근심이 있는 대로 충분히 흔들릴 것이며
때론 병충해가 심하더라도 과하게 약을 주면 병이 도지는 법입니다.

고랑사이의 감자가 꽃이 피어도 마냥 좋아하지는 않을랍니다.
다만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두레와 이레가 크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넘치게 베풀 웃거름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 ?
    김현거사 2004.05.24 13:14
    고추 천주면 보통일 아니것네요.나도 텃밭에 스무그루 쯤 가꾸는데,요것도 비닐 멀칭 해주고 담배물로 소독해주고 풀매고 하는 일이 어렵던데...
  • ?
    부도옹 2004.05.24 23:27
    두레아빠의 차분한 이야기가 마음을 가라앉혀줍니다.
    요즘 바쁜 시간들을 보내시는 듯 합니다.
    가족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 ?
    두레 2004.05.25 09:49
    언젠가 책에서 읽은 태평농법이 생각납니다.
    교육의 비결은 교육하지 않는 데 있다는 엘렌케이의 말도 생각나네요.
    밭농사든 자식농사든 그 나름의 흐름과 이치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감자도 고추도 두레와 이레도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나기를
    바래봅니다. ^^
  • ?
    오 해 봉 2004.05.25 16:25
    전화도 못드리고 미안한마음 뿐입니다.
    고추.감자.채소등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송정분교모임등 아쉬움만 드네요.
  • ?
    詩사랑 2004.05.26 15:26
    저도 농사일을 좀 배우고 싶은데...
    아직은 상황이 그렇질 못하지만 앞으로 꼭 두레 이레 부모님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역시 공동체에 들어가서 농사일을 배우는 것이 가장 나을는지..
  • ?
    햄버거아저씨 2004.05.26 19:25
    아이고 고추도 마니 심었군요
    그리고 작년에는 금자라고한 감자도 심으시고요
    하~얀 감자꽃이 필무렵에나 갈수 있으려나=======
  • ?
    솔메 2004.05.27 16:35
    흙에 묻는 농사는 天理에 맏겨두고
    농사중에 자식농사가 으뜸이라고 여기며 살아갑시다.
  • ?
    슬기난 2004.05.28 18:44
    씨뿌려 무럭무럭 커가는 파란 새싹들을 쳐다보느라면 나중에 그것들의
    경제적인 값어치를 떠나 마음이 뿌듯해오지요.농사일도 손에 못이 박히고 이골이 나면 그럭저럭 견딜만합니다.
  • ?
    산사춘 2004.07.02 23:46
    저두 빌라에 사는지라 마당은 없지만 창가에 방울토마토랑
    고추 몇 그루 화분에 심었는데 모종때부터 물주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아주 솔솔하더군요.
    지금은 빨간토마토랑 파란고추가 아주 이쁘고 탐스럽게 열렸답니다.
    재미로 심었지만 키우다보니 정이들어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두레네는 그 많은 자식들 나중에 어떡하시려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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