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섬진나루>두레네이야기

두레네
/두레네(추풍령) /두레네(지리산) /두레네크리스마스이야기(지리산)

두레네 글방입니다.
2008.07.08 23:32

고사리를 뜯으며

조회 수 1557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집 뒤로 비탈 심한 밤나무 밭 위를 오릅니다.
며칠 전부터 나물 뜯으러 가자며 보채던 두레엄마의 손에 등 떼밀려 올라갑니다.
정말 아기 손처럼 도로록 말린 부드러운 새순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말라 죽은 고사리 풀 섶을 두리번거리면 고개를 숙이며 뾰죽히 올라온 고사리.


고비 고비 생사의 고비마다
사람 살리려 고민한 하나님의 숨소리
이파리에 맺힌 그 이슬조차 달다.


세상에 더러운 것 보기 싫다고 산에 숨어 들어간 백이, 숙제가 따먹은 것이
그 깨끗한 고사리 아니겠습니까?
고사리는 절개 굳은 선비나 중생이 뜯어먹는 먹을거리로 전래되어왔습니다만
이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적 노동력으로 환산해 본 지금
그 나물을 하려면 사람의 손이 워낙 많이 가는 바람에
이제 국내산 고사리는 도시인들의 밥상에 오르기에는 굉장히 비싼 나물이 되었습니다. 그 순수 국산. 그것도 지리산 남쪽 사면의 자연 고사리를 따겠노라고
버벅거리며 올랐습니다.


그래도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나온 줄기인데 보통 가파른게 아닙니다.
숨을 헉헉거리며 행여 뱀 나올까봐 긴 장화를 신고 기어오르는 것을
동네 아주머니께서 보시곤 웃으십니다.
모든 것이 미숙한 저희가 하는 몸짓이 우습기도 하시겠지만
아마도 안쓰러운가 봅니다.


언젠가 학교 안마당에 잔뜩 난 풀을 보고
‘이게 고들빼기야’
하고 잘난 척 했었을 때 그리고 후에 그게 아니었구나 함을 알았을 때.
눈 뜬 장님의 머슥함에 부끄럽더군요.
우리가 살아오며 쌓아왔던 많은 지식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더 가치유무의 경중을 따지게 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 사는 저는 도시의 바보입니다.
산에 가도 무엇을 먹는지 몰라 지나치기 일쑤며,
남들이 열을 딸 때 저는 하나 둘을 따기 때문입니다.
만일 TV드라마에나 있을 “혹성탈출” 같은 문명의 종말이 있다면,
아니 당장 우리 조국이 6.25같은 남북 전쟁이 온다면
저 같은 도시의 얼간이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죽을 똥 쌀 것입니다.


산에 오르니 고사리를 따며 고상하게 보내려던 내 일정이 마구 엉클어졌습니다.
바로 취나물이 여기저기서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 옮기며 따면 두 발짝 뒤에 또 다른 나물이 나 여기 있다 하고,
고놈이 이쁘다 하며 따면 이번엔 세 발짝 거리에 나도 있소 하고 방긋거립니다.
그녀들의 유혹에 빠져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마누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디 있느냐고 골짜기로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앞 산에서 나물과 숨박꼭질을 했습니다.


제 생각인데, 그래서“취”나물이라 이름 지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네들의 유혹에 취한 듯,
한 발짝씩 산으로 깊숙이 발들이다 산 속에서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듯 헤맨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붙인게 아닌가 하는...


하지만 술도 못하는 나는
이 봄날 나물에 취함이 그지없이 좋았더랍니다.
  • ?
    두레네집 2008.07.08 23:40
    최근 이런 저런 잡물을 정리하던 중에
    에전 지리산 이주 초기에 쓴 글들을 찾아냈습니다.
    읽다보니 사이트에 없어서 우선 올려봅니다.
  • ?
    부도옹 2008.07.09 12:41
    난 다시 내려가신 줄 알았습니다.
    네, 나물의 유혹에 빠져 한 발 한 발 산 깊숙이 발들이다 헤맨 기억을 가지고 있답니다. ^^*
  • ?
    자유부인 2008.07.09 13:11
    집 뒤로 비탈 심한 밤나무 밭......
    지금 집뒤는 비탈이 없는데~
    저도 이사 가신줄 알았습니다. ^***^
  • ?
    섬호정 2008.07.12 13:23
    긴 장화로 뱀을 경계한 모습, 고들배기로 착각한 운동장 잡풀..
    산 나물에 취한 그 초년생 귀농 생활 시절에서 두내외분의
    순박한 인상을 다시 떠올립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 붓던 어느해 가을 [지리산 음악제 첫해]의 야간
    운동장 무대를 지켜보던 날의 두레네집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1. 다시 낙엽을 찾아 나서다

    Date2011.10.27 By두레네집 Views1513
    Read More
  2. 물 게와 박달 게

    Date2008.09.23 By두레네집 Views2704
    Read More
  3. 도둑이야!

    Date2008.09.01 By두레네집 Views2132
    Read More
  4. 욕심낼만한 것을 찾다

    Date2008.08.21 By두레네집 Views2125
    Read More
  5. 살던 곳을 벗어나려는 일탈의 꿈

    Date2008.08.12 By두레네집 Views1864
    Read More
  6. 두레와 자전거

    Date2008.08.01 By두레네집 Views1621
    Read More
  7. 죽이지 마세요

    Date2008.07.31 By두레네집 Views1606
    Read More
  8. 천사 두레의 말씀

    Date2008.07.25 By두레네집 Views1739
    Read More
  9. 섬진강 빠가사리

    Date2008.07.19 By두레네집 Views1872
    Read More
  10. 다시 쓰는 나의 이야기

    Date2008.07.12 By두레네집 Views1526
    Read More
  11. 이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에게

    Date2008.07.11 By두레네집 Views1652
    Read More
  12. 고사리를 뜯으며

    Date2008.07.08 By두레네집 Views1557
    Read More
  13. 비오는 날의 그리움-2(두레아빠 편)

    Date2007.05.25 By두레네집 Views2765
    Read More
  14. 내 살던 터에 대한 그리움

    Date2007.05.17 By두레네집 Views2230
    Read More
  15. 회관 앞의 관광버스(두레엄마)

    Date2004.12.11 By두레네집 Views2551
    Read More
  16. 해 마다 얻어맞는 호두나무

    Date2004.09.14 By두레네집 Views3602
    Read More
  17. 백설왕자가 된 두레.

    Date2004.09.07 By두레네집 Views2102
    Read More
  18. 추풍령 고개마루를 찾아

    Date2004.08.31 By두레네집 Views2936
    Read More
  19. 태풍이 지나간 후

    Date2004.08.29 By두레네집 Views1711
    Read More
  20. 별똥별을 찾아서

    Date2004.08.22 By두레네집 Views161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