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그리움-2(두레아빠 편)

by 두레네집 posted May 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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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가 결국 굵어지더니 이제는 어두운 밤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제법 굵은 여름 장마비 흉내를 냅니다.
도시의 비는 아무리 느껴보려 해도 예전에 맞던 시골비와 달리 멋이 없는 것 같습디다.
일단은 소리가 그렇지요.
혹시 시골집 특히 양철지붕 밑에 살던 이들에게 비오는 날은 우주의 연주회가 아닐런지 동의를 구해봅니다.
바람과 더불어 지붕을 후드드둑 두두리는 소리며,
간간히 나뭇 가지에 맺혀있다 떨어지는 소리는 텅텅 울리기까지 하고
처마 밑 홈통에 낙엽으로 막혀있던 물이 넘쳐날 때는 동당거리는 규칙적 리듬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트럼펫 소리를 내지릅니다.
그리곤 이 소리도 결국 규칙적 리듬에 합세하곤 하지요.
그런데 도시의 비소리는 촥촥 감기는 도로변 자동차 바퀴소리만 요란합니다.
불규칙한 빵빵거림과 끽 소리를 수반하고 상당히 잘들리는 소음으로 말입니다...
비오는 날 소리가 이렇게 잘 들리는 것은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대로 습기가 음파를 가까이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하지만
어쨓든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기분상 그러나 영판 다르군요.

소리는 둘째치고 시골서 비오는 날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웃기게도 오줌누는 일이었습니다.
시골집은 방에서 변소까지의 거리가 상당합니다.
비오는 날 오줌한번 누러 우산 받히고 급한 오줌 참으며 후다다닥 가는 변소길이 얼마나 귀찮은지 아시는 분이 있을런지...
특히나 저는 당뇨가 있어 자주 오줌을 마려워하는데, 거기다 날 궂은 날씨 서늘한 날은 그 시간대도 밭어 굉장히 귀잖습니다.
겨울날 화장실 가기 싫어 가까운 나무 밑에서 볼일을 해결했었는데,
이게 봄철이 되니 냄새가 나는 겁니다. 적당히 한군데 정해놓으면 시간이 지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법이지요. 겨우내 비도 안오니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래 귀잖아도 꼭 화장실로 가라고 애들한테도 그래놨으니 저도 그리해야 했지요.
수세식 시설이 없는 시골집 변소 볼 일의 애환이라면 애환인 셈입니다.

그런데 어느 비오는 날 정말 마당을 쓸려갈 정도로 비오는 날. 변소가려다가 문득
“야 이거 온 세상이 자동 세척기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냥 나무판자로 두들겨 만든 현관문 열고 문턱에 서서 볼일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도시 살 때 집안에 화장실에서 편하게 볼 일 보는 것보다 더 시원한 쾌감이 밀려옵니다.
세상에 누가 보면 어쩌나 할 필요도 없고 아무도 없는 내 집 마당에 내지르는 기분.
그 뒤론 비오는 날이면 종종 아니 거의 다 그렇게 일을 보니 두레도 질세라 따라합니다.
두 남자가 거시기 드러내고 오줌발 자랑하는 내지르기를 마당을 향해 발사합니다.
관객은 오직 처마밑에 비 피하려 숨어든 새들이나 있을려나...
오로지 비오는 날 불편한 것은 우리 집 여자들뿐입니다.
우리 집 개나 남자나 비오는 날은  모두 동물의 세계에 사는 셈입니다.
이건 비밀인데, 두레엄마도 모르는 비밀인데
어느 날인가는 방안에서 그냥 창문만 열고 창문위에서 볼일 본 적도 있었답니다.
그러니 비오는 날의 내게 즐거운 위안거리는 오줌누는 일인 셈입니다.
장마철 지리산에 부딪혀 한수내 협곡에 갇힌 비는 좌장창 쏟아지는데
두남자의 합류 소리도 화음에 보탬이 될려나 모르지요.

큰 거는 어쨌냐고요?
아니 이 사람들이 뭘 기대하는 거야 정말 개라고 여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