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던 터에 대한 그리움

by 두레네집 posted May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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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오전부터 많이도 내립니다.
오랜만에 우산을 들고 두레를 마중하러 가서 같이 왔습니다
녀석은 어느새 커서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저도 한걸음 하는데
그냥 뒤처져버리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참 많이 컷구나 생각되어지는 요즈음입니다.
언젠가부터 이레가 일본 만화영화인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싶다고
하더니 고등학교에 들어가 첫 번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많은 만화책과
함께 그 영화를 빌려왔습니다.
그러더니 밤에 혼자보대요. 물론 저희는 잤지요.
아침에 일어나 영화가 좋았었냐고 물으니 너무 좋았다며
엄마 아빠도 꼭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 어떤 게 좋았냐고 물으니 주인공 식구가 살던 곳이 토지의 송정학교랑
많이 비슷해서 옛날 송정학교에 살던 때가 많이 생각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도 보니 정말 분위기가 비슷해 저희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보게 되었지요.
‘그래 우리 집에도 우물이 있었어.’
‘옆에 계곡이 있어서 여름이면 그냥 거기서 살았었어.’
‘운동장에는 토토로가 살았던 나무보다는 많이 작지만
그래도 큰 나무가 있었지.‘
.
.
.

우리는 신나서 그 시절 이야기들을 추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이곳 구리지역으로 이사 올 때의 아차산 밑 한다리 마을에는 들어오는
초입에 그야말로 쓰러져가는 주의해서 봐야하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었고
그 뒤로는 좋은 전원주택들 사이로 아직도 개발이 안 된 옛날 집들과 너른 밭들이
동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있는 시골스런 정취를 간직하고 있던 시절이라 저희
식구들은 별 저항(?)없이 이곳에 자연스레 도시가 주는 위용에 주눅 들지 않고
스며들어 살게 되었지요.
저희가 이사 와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했던 말은
‘엄마, 자장면 좀 시켜 먹어보자, 정말 오나’
였습니다. 항상 자장면이 배달 오려면 배달 오는 사이 불어서 배달이 안 되는
지역에 살았던 아이들이라 그날 두레와 이레는 시키자 마자 나가서 기다리느라
들어오지도 않았지요.
그러더니
‘엄마 피자도 오나 시켜보자.’
‘엄마 나 혼자 지하철 타고 고모네 일산 좀 갔다 올게.’
‘엄마 혼자 할아버지 할머니께 갔다 올게.’
‘엄마 31아이스크림 가게가 이렇게 많냐.’
‘엄마 던킨 도너츠 가게도 많아.’
‘엄마 버스가 많아서 이제 시간에 안맞춰도 돼.’
하며 정신을 못 차리더니 급기야 저희에게 말하더군요.
‘엄마, 아빠 난 이담에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절대 시골에서 안키울거예요.’
그 말에 저희는 ‘일년 만 살아봐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할거다’
하며 기다리기로 했죠.
두레는 두레대로 나름대로의 도시의 학교에서의 신고식도 치르고,
이레는 이레대로 친구들을 사귀며 그런대로 잘커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러더니 일 년쯤 지나니 이레가 말하대요.
‘엄마, 아니야 아이들은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까지는 시골에서 살아도 돼.
나 이제 시골이 점점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전 그사이 일 년에 한 두번 정도는 꼭 다녀오곤 했는데,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말하면
엄마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부러워 하기 시작하데요.
전 토지 가면 여적지 우리학교다 하며 꼭 들러서는 모든 게 잘 있는지 떠나오던 해에 심었던 앵두나무는 잘 크고 있는지 잘 살피며 오곤 했지요.
올봄에도 매화가 피기 시작하니 주위에서 벌써 아시고 말씀하시더군요.
어서 다녀 오시라구. 매화 향을 맡아야 일 년을 잘 보낸다면서.
정말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매화 피는 초봄이 오면 저도 모르게
내 맘과 몸은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더라구요.
저녁 어스름하는 시간에 방문 틈으로 살며시 코 끝을 스치는 그 향기.
동네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바람결에 타고 오는 매화향기.
저희는 매화이야기며, 똑똑이, 또또, 여름이야기. 동네분들이야기,
그곳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이야기며 한동안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레도 방문 틈을 타고오는 그 향기를 기억하며 저랑 똑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더군요
작년 가을 함양에 일이 있어 갔다가 그곳 인월 근처에 있는 황토 찜찔방엘
갔습니다. 끝나고 나오니 어스름 저녁에 안개비가 오더군요.
그런데 그곳 공기를 맡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맞아 이맛이야 이거야 ’하며 익숙한 공기의 맛에 너무 반가워 한참을 혼자
숨을 쉬며 서있었습니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느낌. 어떻게 표현을 해야하나...........
요즘에는 이레가 부쩍 그곳을 그리워 합니다.
구례읍내의 목욕탕이며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던 중국집이야기며
한 두달에 한번 씩 가던 순천의 커다란 마트며..... 그 시절 이야기들.
순천을 지나며 팔마체육관이며 큰 마트며 익숙했던 그곳의 건물들을
볼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 건물들을 알까요?
그래서 작년 봄엔가는 구례읍내에 갔다가 혼자서 우리 식구들이 갔던
목욕탕에 혼자 갔었지요.
그대로더군요. 그 앞의 아주 작은 서점까지. 아주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구요.
추억을 느낄수 있는 곳을 많이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참 계단참의 앵두나무는 자리를 잘잡아서 아주 잘크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