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마다 얻어맞는 호두나무

by 두레네집 posted Sep 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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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당 퉁탕!
양철지붕 위로 높이 솟은 나무에서 호두열매가 떨어집니다.
예전에 지리산 아래서 살 때는 감나무가 양철지붕 위로 있어 새벽잠을 놀라게 하더니
이곳에서는 호두나무가 바통을 체인지 했습니다.
잘못 지나다가 한 대 얻어맞으면 이마에 혹이 날지도 모르는 위력을 가졌습니다.
도시에서만 자라 호두열매가 나무에서 어떻게 열리는지를 모르는 이가 많더군요.
쉽게 설명하면 복숭아 과일 속에 씨앗이 있듯이
호두도 호두 열매 속에 있는 쭈글거린 씨앗입니다.
다만 복숭아는 과육을 먹고 씨는 버리지만 호두는 과육을 버리고 씨앗만 먹습니다.
호두의 경우 과육은 거의 없고 다람쥐도 먹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먹을만한 것은 아닌가봅니다.
은행열매도 과육은 흐믈어지도록 익혀 그 안의 씨만 먹듯이 호두도 과육을 삭힙니다.
사실 나무 위에서 잘 익은 호두는 껍질이 거의 벌어지며 떨어지지만
그때까지 익도록 내버려두면 사람 손에 오기 전에 모두 다람쥐나 청설모 심지어 들쥐나 까치까지도 달려들어 다 가져 가버리기 때문에 과육이 익어 벌어지기 전에 사람이 미리 따서 자루에 넣고 과육을 익혀버리는 것이 시골 농부들이 이 계절에 하는 일입니다.
다람쥐나 청설모가 달려들기 전에 나무둘레에 오르내리지 못하고 미끄러지도록 두루는 게 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나이롱 모기장을 둘러놓습니다.
누가 생각해 놓았는지 참 기발하지요?

지난주 중에 마을 길가에 심어놓은 호두나무를 터는 구)이장님이신 현씨 아저씨네를 보면서
아! 지금이 호두 터는 시기인가보다 하고 우리도 장대를 들고 나섰습니다.
열매를 수확할 목적을 가지고 심은 키 작은 호두나무와 달리
우리 집의 호두나무는 굉장히 키가 크고 높습니다.
사람이 나무가 더 이상 크지 않도록 성장점이 있는 주가지를 잘르지 않으면  
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수의 수확을 염두에 둔 나무는 주인의 손에 의해 묘목에서 이주심기를 할때에 주가지의 윗부분을 잘라 너무 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나무들은 학교의 조경수라서 그런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나무며 호두나무며 모두 하늘 향해 우리 키를 서너 배나 넘게 솟구쳐 있습니다.
도저히 장대가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것은 그냥 익도록 쳐다만 볼 수밖에 없고
우리 의도와 달리 결국 다람쥐 밥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 떨어진 호두를 얻으려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어 호두나무는 애꿎게 두들겨 맞습니다.
우지끈 잔가지가 부러지며 후두두득 호두알들이 떨어집니다.
나무도 약이 오르는지 혼자만 얻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어물쩡하게 바가지를 들고 서있던 두레엄마가 얻어 맞고는 바가지를 뒤집어씁니다.
어디로 호두가 튀었는지 아깝다고 배수구 구멍 사이로 들어갈까 틀어막습니다.
올해 호두 값이 겁나게 비싸다고 합니다. 우리 집이야 팔 것은 없고 우리 식구나 먹을 요량의 나무 두 그루가 있을 뿐입니다.
산자락에 붙은 다시 핀 호두나무에 가보니 역시나 올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싹트기도 버거웠으니 얻어맞을 여유는 확실히 없는가 봅니다.
내년 봄에는 가을에 맞을만큼 기력을 회복하도록 거름을 주어야겠지요.

열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이야기한다면 살구는 과육도 먹고 그 씨앗도 약용으로 씁니다. 복숭아 씨앗도 흔히들 버리지만 잘 말려 망치로 두드리면 톡 하고 깨지는데 그 안에는 꼭 아몬드 같이 생긴 씨가 나옵니다. 이것을 잘 말려 볶으면 맛이 좋습니다. 수박 씨도 물론이고 호박씨는 말 할 것도 없으며 해바라기 씨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저는 아직 실험을 안해보았는데 북미의 인디언들은 야생 나팔꽃의 씨앗도 약용으로 썼다는군요. 일종의 마취제로 썼다는데 아마도 마약의 일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마를 헤시시로 이용한 것도 인디언들의 치료법이었는데
이를 엉뚱한데에 오용한 이들의 쾌락적 관능심이 문제이겠지요.
하여간에 사람은 육식동물도 채식동물도 아닌 과육동물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다 그렇지만요.

우리가 먹는 곡식인 씨앗과 과육이 주 에너지원이고 야채와 고기는 보조 식품일 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주식과 보조식을 잘못 헤아려 건강을 해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채 고기는 주식이 아닌 영양균형을 위한 보조식이고 씨앗이 주에너지원이라는 것입니다.
옛말에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기로만 배를 채우는 사람, 다이어트 한다고 과일만 먹으려는 사람 등
사람으로서의 생체리듬을 벗어난 잘못된 습관으로 결국 질병을 피할 수 없는 방식일 뿐입니다. 한국인은 수 천년을 농경문화 하에 있었고 결국 우리 몸은 전형적인 농산물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며 그 특유의 소화기능을 유전적으로 발전시켜왔다고 합니다. 때문에 육식 위주의 서양인과 다른 먹거리 문화를 가진 셈입니다. 그럼에도 서구문화의 홍수같은 유입과 더불어 식단 차림은 우리 몸과는 다른 구조로 급작스레 바꾸어 버렸습니다.
경유로 가는 자동차에 휘발유를 집어넣어 고장난 것처럼 위험한 경우입니다.
전통식에서 멀어져 가는 한국 성인의 몸은 그 거리만큼 심하게 망가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름진 음식에 취약한 소화구조를 유전적으로 가진 우리들이 장시간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셈입니다(이는 당뇨에 무척이나 고생하는 우리 집안의 병이기도 합니다).
가을, 우리가 잊고 있는 음식을 더욱 더 생각나게 하는 계절입니다
물론 호두가 쌀이나 통밀 가루처럼 주곡은 아니지만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호두, 밤, 잣, 검은 콩 넣어 제 철인 가을에 먹을 수 있는 뜨끈한 찰밥 약식 한 덩이.
찬바람 들기 시작하는 이 계절 최고의 제 철 보양식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