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을 찾아서

by 두레네집 posted Aug 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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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보기란 일년 중 몇 번이나 되는지...
한번도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사치스러운 헤아림일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추풍령의 밤하늘은 참으로 멋있습니다.
사실 도무지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로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서 이곳에서 볼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옥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제일 볼만한 것이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여름날 한 낮에 덥혀진 콘크리트 슬라브 옥상은 그 온기로 저녁나절에는 꽤 따뜻합니다.
서늘한 밤에 밑바닥은 따뜻하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내 스르르르 잠이 들곤 맙니다.
물론 한 두어 시간 후에는 촉촉이 내리기 시작하는 이슬로 인해
후들거리는 무릅을 감싸안으며 일어나지만서도요...

지난주에 매스콤에서 페르세우스 별자리  유성우가 장관이라고 나왔더군요.
무심코 들으면 꼭 불꽃놀이를 연상케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투였습니다.
어쨌든 그 말에 현혹된 우리 식구도 그날 밤 별똥을 보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아직 주위가 캄캄해지기전인데도 냉커피 타고 음료수 들고 올라갔습니다.
빛의 여운이 사라져가며 어둑해지는 창공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수다를 떨었습니다.
어릴 때 마당 가운데 모깃불 피우고 돗자리에 누워있던 기억도 들고
이레는 자꾸 엄마 아빠 어린 시절 이야기 해달라고 졸라대고
그 재촉에 약간의 뻥이 섞인 어린시절 영웅담도 떨어대면서 히히덕거렸습니다.
갑자기 이레가 "야 별똥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디, 어디" 집사람과 저는 눈을 치켜 뜨고 두리번거렸지만
벌써 사라진 유성이 나 여기있다 하고 반짝거릴리는 없겠지요?
첫 별은 침침해진 어른의 눈으로는 보지못하고 초롱한 애들의 눈에만 보이는가 봅니다.
이레가 세 개를 보는 동안 정말 우리는 하나도 못보았습니다.
밤새 멀뚱하게 하늘을 보는게 지리했는지 곧 이레는 숙제한다며 내려갔습니다.
본격적으로 깜깜해지니 옆에서 마누라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 저기 저기있다"
"어디 어디"
이 소리를 다섯 번 반복하는 동안 저는 하나도 못보았습니다.
눈이 나쁜 저로서는 은근히 약도 오르고 아마 마음의 눈도 어두웠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감격적으로 저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을 보았습니다.
기분이 꽤 좋아지며 괜히 모든 일에 희망이 솟아나는 것 같은 즐거움에 들뜨게 되더군요.
그리고는 두레엄마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별똥에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는 동화처럼 우리도 해보자"하고는
요즘 우리가 바라는게 뭐냐하고 이야기를 해보니
요즘 차가 없으니 불편하다. 그러니 차달라 하자, 올해 이곳에 이사와서 여름행사가 시원치않아서 다른 해보다 돈이 달릴 것 같다..등등.. 역시 돈이더군요.
갑자기 약간은 서글퍼졌습니다.
우리가 빌 소원이 많을텐데...
현실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니 아름다운 소원은 별로 없더군요.
원론적으로는 장황하게 우리가 이런것까지 별똥에게 말해야되냐?
우리도 동화속 주인공처럼 예쁜 이야기 하나하자 하고 좋은 얘기를 가득 했습니다.
그리고 재미로 한다는데 우리도 "돈 달라고 하자" 하고는 별똥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별똥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별님 필요해요 어쩌구하며..."
구시렁대는 소리를 지를 틈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가 "야 저기 있다"."나도 봤다","어디야" 하고는 그만이었습니다.
"여보야! 소원을 빌어야지"
"아 참 그래 그래"
이러기를 마누라는 16번이나 하고
눈이 나쁜 저는 5번하고는 시린 무릅을 손으로 비비다 내려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별을 보고 뭐 달라는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만
간만에 뜨뜻하게 달궈진 옥상의 따뜻함을 등으로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며 어린 마음으로 다시 돌아갔던 옛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곤 하늘의 별과 달리 땅에 사는 우리의 속내도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뛰어넘기 어려운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하늘의 섭리를 알기 원했던 고대인은
바람과 별과 물에 순응하여 만년을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였지만
하늘을 가려 별을 보지 못하는 문명인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미욱함으로 인해
새로운 천년의 도래조차 두려워 환경의 재앙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모든 근심과 염려는 하늘과 별 아래의 인간이었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극복하기 어려운 본래적인 삶의 문제였지만은
문명인인 우리는 살면 살수록 새로운 근심거리에 더욱 무게를 더해 가는 것만 같습니다.
내 조상도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염려를 하며 지냈지만
적어도 숨을 쉬며 마실 물을 걱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미래에는 전설이 될 것만 같은
마마, 호환의 공포는 사라졌으니 마찬가지가 아니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