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by 두레네집 posted Aug 0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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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미인의 눈썹처럼 가녀린 달이 걸려있는 섬진강가에 나와 있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달빛과 그 불빛이 어우러진 강물은 물비늘 반짝이며 흘러가는가 봅니다.
아내와 강변에 나와 앉아있는 이 밤은 나에게 우울한 날이자
어찌보면 새로룬 기회에 도전해보리라는 다짐을 갖는 밤입니다.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윤동주 시인의 독백을 가슴속에 벼리며 살고자 했습니다.
간도 용정중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의 시비를 읽고 또읽고 그의 체취가 남아있을런지도 모를 재래식 화장실까지 기웃거렸던 애틋함을 가졌었지요.
내 하는 일이 순리에 어그러지지 않게 되기를 늘 소망했었습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나 이제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제 마음은 늘 이곳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산하에 있고자했으나
이제 이산 기슭과 강 언저리를 떠나야하는가 봅니다.
대학시절 그렇게 불렀던 양성우 시인의 싯귀가 오늘처럼 가슴절절한 날도 드믄 것 같습니다
잡고싶지만 잡히지않고 떠나는 애인처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순리적인 방법으로 있고자했으나
저의 뜻과는 다른 결과물을 안고 말았답니다.


몇 다리만 건너면 "빽"과 연결되는 한국사회에 왜 저라고 그리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인터넷과 언론에 알려 이슈화하려고 싶은 무리수를 왜 저라고 모를까요?
내 의지대로 하고자하여 제가 그 동안 손가락질해왔던 방법을 하기엔 제 마음이 허락치 않았고. 그렇게 살기 싫어 이 곳에 왔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여기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사정을 들으시고 끊임없이 애를 써준 이장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과 방송PD,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시려고 연락주신 지인들의 조언에 감사하면서도
그리 안한 고집스런 제 미련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만큼은 정말 한번 깨끗한 순리대로 일을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돈 얼마하는 푼돈에 자신의 인격을 파는 싸구려 교육청 공무원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은 저도 실상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속내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명절 떡값, 휴가비 심지어 전별금까지도 은근히 요구하거나 자기 직분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겁박하려는 작태에 강력히 항의하고 반발했으면 속이나 시원했을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약자의 입장에서 당하기만 했으니 기가 찰 따름입니다.

그분들은 정말 서류상으로 흠없이 깨끗한 분들이시며, 강물에 박은 말뚝처럼 지난날 구두로한 잘될 것이라는 말을 기억치 못했고 속절없이 사람만 믿은 저만 치밀하지 못한 사람임이 판명되어 버렸습니다. 때마다 돈 안준다고 자길 무시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우리 딸 이레 앞에서도 겁박하던 이는 지금 다른 부서로 갔다는군요? 그래도 저는 저런 공무원은 저러다 말겠지, 조금 특이한 사람이구나 했는데 후임자도 별 다를바없이 거짓말만 하더군요. 저한테는 한번도 찾아온 일도 없으면서 제가 학교 재임대의사가 없다고 보고했다는군요.
제가 그 전임자에게 그렇게 재임대의사를 밝히고 이곳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제 주민등록이 있고 실제 사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지 않았다고 생각해 연락도 안하고 말입니다.
아쉽게도 그 두 분들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구례지역 출신이라는군요.


그냥 남들처럼 그렇고 그렇게 적당히 어울려 살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냥 돈 몇푼 주고 잘 지냈으면 될걸 가지고 쓸데없이 그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너같은 놈들 돈 줄바엔 불우이웃이나 돕지"하는 오기로 무시해 쓸데없이 소인배들에게 밉살맞은 놈으로 낙인찍힌 것도 어찌보면 참 지혜롭지 못한 처사인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푼도 안준것도 아닙니다. 첫해에 화장실도 없는 학교에 살 수가 없어 나무로 된 화장실이라도 지어야겠다며 돈 20만원이나 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때 담당자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화장실도 못짓게 하고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돈 20만원에 똥간이라! 참 자조적인 기억으로 오랫동안 제가 씁슬해했던 뇌물입니다.
그런 뇌물을 제가 주었으니 저도 나쁜놈이지요?(ㅎㅎ)


예수님도 세상에서는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저는 세상에 살면서 지혜자들을 경멸한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여겨지는군요.


지리산과
백운산은
섬진깅으로 나뉘고 다만
나루가 있어 사랑을 잇는다


저는 내가 살던 송정리 나루터를 지섬백라라 스스로 이름짓고 부르던 그 터에
자리잡은 바위로 내려앉아 한없이 손을 씻었습니다.
제가 몇 년동안 알았던 더러운 이들의 이름을 씻고 청정하게 살지못하고 늘 조바심냈던 여리고 못난 마음을 씻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론 걸맞지 않는 터를 욕심부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시절 저희 가족을 품어주고
그 동안 상처받았던 마음을 부드럽게 치유시킨 이 터를 사랑합니다.
사는 곳이 어디든 이제 삶의 여유를 알게 해준 이 산하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제껏 조용히 옆에 있던 아내가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어디 가서 힘들고 우울할 때 꼭 이곳을 찾아올꺼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고마운 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