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평전 야영장' 어제와 오늘

by 최화수 posted Jul 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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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 야영장의 취사장 시설이 형편없이 망가진 채 흉물처럼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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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365일 등산길이 개방되는 곳들이 있다. 쌍계사~불일폭포 구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8경 가운데 하나인데다 ‘청학동설(靑鶴洞說)’ 등 얽혀 있는 이야기도 많은 명소이다. 그래서 사시사철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일폭포 입구의 꽤 편편한 곳을 ‘불일평전(佛日平田)’이라 부르는데, 30여 년째 ‘휴게소’란 이름의 오두막이 자리한다. 재작년에 타계한 털보 변규화 옹이 지켜온 이 오두막은 소설가 정비석 님이 일찍이 ‘봉명산방(鳳鳴山房)’이라 명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쌍계사에서 거의 3㎞ 거리에 있는 이 불일평전에는 오두막 밖에도 시설물이 몇 개 더 있다. 대형 취사장과 식수대, 그리고 제법 규모가 큰 화장실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날 밭을 일구었을 법한 편편한 땅을 텐트를 칠 수 있는 계단식 야영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야영장으로 가꿔놓은 곳에는 여러 개의 콘크리트 전주(電柱)에 외등까지 달아놓았다. 사실 지리산 깊은 산중인 이곳까지 전주가 올라온 것은 이 야영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야영객의 편의를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많은 돈을 들여 전기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불일평전 야영장을 위한 당국의 배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쌍계사에서 불일평전에 이르는 등산로 전 구간을 깔끔하게 정비를 했다. 하천에는 교량을 설치했고, 비탈길에는 돌계단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불일평전 야영장은 지난 80년대 한때 문전성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었다. 여름철에는 숙식 제공만 받고 야영장을 관리하는 청년 여러 명이 활동을 했고, 이 청년들의  ‘불일평전 자원봉사자 모임’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곳 야영장을 인연으로 한 최대 경사는 오두막 주인 변규화 님의 외아들 변성호 군이 광주에서 야영을 온 여대생과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한 것이었다.
불일평전 커플은 이 오두막에 기거하며 남매를 낳았는데,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불일평전 야영장의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취사장이 폐가처럼 황폐하고 취수대 등은 형편없이 망가진 채 버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불일야영장은 제 구실을 전혀 못하는 풀밭으로 버려져 있다. 야영을 기피하는 세태의 영향도 있겠고, 불일평전이 야영장으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황폐한 야영장 시설은 들여다보기조차 민망하다.

쌍계사 입구 화개천변에 요즘은 꽤나 이름이 나있는 ‘하동녹차센터’가 자리한다.
바로 그 자리가 지난 80년대는 청소년 야영장으로 조성된 곳이다. 화개천과 잇대어 만들었던 야영장시설은 그러나 폭우로 하천이 넘쳐나면서 유실되는 황당한 운명을 맞기도 했었다.

지리산에 많은 돈을 들여 시설물을 만들었다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수 년 전, 지리산 등산로 곳곳에 빨치산 관련 조형물과 시설물을 경쟁적으로 설치했었다. 해당 지역별로 군(郡)에서 수억 원씩 들였던 이 시설물이 지금은 어찌 돼 있는가?

실물 크기의 빨치산 인형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더 황당한 것은 ‘비트’니 ‘치료소’니 하며 설치해 놓은 것들이 지금은 무슨 유령처럼 남아있는 그 잔재들이다. 이렇게 금방 무용지물이 되는 것에 혈세를 쏟아 붓는 짓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참으로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