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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429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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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의 원시림, 도벌꾼들이 나이테 200~300개의 거목들을 마구 베어내 함지박 등 목기를 만들어둔 현장. 이들은 도벌한 나무를 '목마로(木馬路)'와 '도벌 댐'이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산 아래로 일거에 운반했다.(1964년 김경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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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껍질과 호박, 무가리가 냇가의 반석에 널려 있는 길섶에 빨간 고추, 콩, 조, 도토리가 빼꼼한 틈도 없이 멍석을 덮고 있다. 무 잎사귀를 짚으로 엮어 돌담 울타리에 걸어놓았고, 담 밖의 나무시렁에는 곶감을 매달아 주렁주렁하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수확한 작물을 부지런히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 벼를 거둬들인 빈 논바닥에 우뚝우뚝 쌓인 짚가리를 보면 벼농사도 잘 된 것 같다. 그 언저리에 어미소와 흑염소가 네댓 마리씩 떼 지어 마른 풀을 뜯는다.’

1964년 11월29일 칠선계곡 입구 추성마을의 풍경이다. 칠선계곡 학술조사대 김경렬 옹의 명문장은 당시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2010년, 지금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서정적인 정감이 넘쳐흐른다. 지리산 자락에 기대고 있는 산간마을의 늦가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평화스럽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마을도 6.25전쟁 때 군사작전지구가 되어 30호 농가가 불태워졌던 곳이다. 의탄마을이 기대고 있는 산 위의 벽송사(碧松寺)도 빨치산과 군경토벌군의 격전 와중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7년의 전쟁터, 서로 죽이고 죽임당한 동족의 피로 아롱지고 포연탄우(砲煙彈雨)로 더럽혀졌던 산자락,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추성마을 사람들은 그 지긋지긋했던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아름다운 지리산에로의 환원(還元)을 힘써오고 있다.’(조사대장 김경렬 글)

1964년 당시는 온 국토를 초토화했던 6.25전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못한 시기여서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국민소득 100달러를 겨우 웃돌던 이런 시기에 지리산 학술조사대를 꾸려 장도에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 수송 등을 위해 군부대 지원까지 받았던 것을 보면 요즘의 해외고산 원정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칠선계곡 입구 베이스캠프에서 7㎞를 전진하여 캠프 1을 설치했는데, 오후 6시30분 기온이 영하 18.5도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표고 1600m까지 전진했던 본부반은 적당한 설영지를 찾지 못하여 다시 500m를 후퇴하여 목기막(木器幕)에서 잠을 잤다. 밤 7시경 기온이 영하 21도를 기록하는 등 워낙 추웠기 때문이다.

12월2일 흐리고 때때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통천문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다.
‘수해(樹海)를 헤쳐 간다. 눈과 낙엽과 구상나무 군락지 사이에 얽힌 잡목떨기를 뚫고 가는 동안, 배낭이 걸리고 옷이 찢어졌다. 꽁꽁 얼어 잠깐이나마 멈춰서면 땅에 붙어버릴 것 같은 신발을 생각해서 부득이 걷지 않을 수 없었다.’(조사대장 김경렬 글)

칠선계곡 학술조사대는 그러나 함지박과 같은 목기 제작을 위해 도벌꾼들이 200~300년생 아름드리 나무들을 마구 베어낸 참담한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이 조사대의 제1 등로 리더로 참여했던 성산 씨는 훗날 필자가 펴낸 <우리들의 산>지에 칠선계곡의 몰래 베어낸 나무를 운반하는 ‘목마로(木馬路)’와 기상천외한 ‘도벌 댐’에 관한 목격담을 기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칠선계곡은 그 지형이 너무나 험악하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먼저 굵은 기둥을 경사지게 세웠다. 그 위에다 경사지게 좀 작은 기둥으로 연결했다. 또 그 위에다 허벅지만한 통나무를 3미터 정도 길이로 잘라 착착 붙여서 목마로를 만들었다. 이 길을 만드는데 사용된 나무가 도대체 몇 만 그루이겠는가.’(성산 씨의 증언)

이 목마로보다 훨씬 더 용이한 방법으로 도벌한 목재들을 산 아래로 운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곧 ‘도벌 댐’이었다.
‘계곡 중에 제일 협소한 곳을 막아 간이 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속에다 마구 벤 나무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하나씩 계곡물에 흘러 내려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곡에 나무들을 쌓아올린다. 여름철 어느 날, 집중호우가 퍼부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댐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성산 씨의 증언)

성산 씨는 이 때의 엄청난 도벌과 충격적인 운반수단 등을 현장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지켜보고 지리산 도벌꾼을 고발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도벌꾼과 정면으로 맞섰다가 도끼를 앞세운 그들의 위협에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이의 지리산 사랑은 그러나 그럴수록. 마치 숯불이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일어나는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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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10.03.01 17:36
    2월 한달 동안 제가 이곳을 떠나 있어야 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달이나 글을 올리지 못하여 송구한 마음입니다.
    이달 3월부터는 잘해보자고 첫날 이렇게 설익은 글이라도 한 편 올립니다.
    이만큼 봄이 성큼 다가왔네요.
    오브넷 가족 모든 분에게도 희망과 축복이 가득한 봄날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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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10.03.04 12:26
    여산선생님 출장 잘다녀오셨군요
    성산님의 지리사랑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설레임 행복으로 가득하세요~~~

    캐나다엔 아직도 눈이 나리고 있답니다^^*
    우리의 은반의 여왕~~ 김연아선수의 모습에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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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10.03.04 15:54
    녜, 선경님, 이번 카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참 대단했습니다.
    현지의 우리 동포들이 열렬하게 성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 선경님
    생각이 났습니다.
    부산에는 그제에 이어 오늘도 봄비가 내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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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환 2010.03.05 14:06
    안녕하세요. 혹,기억하실지?. 김 용환 입니다.
    휴천면 문정리 엄천강 을 끼고 들어 앉은지 2년 째 됩니다.
    후연히,그리고 이렇게 뵙게되어 무척 반갑고 기쁜마음 전해 드립니다.
    마천 쪽으로 오시는길 있으시면 꼭 한번 불러주시길바랍니다.
    010-4326-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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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10.03.05 18:31
    김용환님, 최화수입니다. 마천에는 비교적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그곳에 갈 대때 전화로 연락하고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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