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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79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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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세석고원에 초막을 짓고 살았던 전설적인 산악인 우천 허만수님을 찾은 부산의 산악인들. 1960년 1월 천왕봉 들머리 매봉마을(당시 7세대가 있었다)에서 부산의 산악인 김경렬님이 촬영했다. 오른쪽 두번째 검은 옷 차림이 우천 허만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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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 경남지부는 의사 교수 등 주로 40~50대의 사회지도층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국토구명(國土究明)’을 위한 학술조사나 학술탐사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바로 그 특징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일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50년대 말 부산지역에서는 20대의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산악회를 결성, 한산 경남지부가 당시까지 해왔던 것과는 달리 등산의 대중화와 등산의 영역 확대를 꾀함으로써 새로운 등산 기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58년 7월17일, 부산대학교 54학번의 동기인 이원락 이원호와 박경상 등이 주축이 된 ‘부산청년등산구락부’가 창립됐다.
‘본회는 등산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이룩하고 산악을 이해 연구하며 등산의 보급과 지도 장려를 꾀하고 나아가서 회원 서로의 친목과 자연애호정신을 길러 사회 문화발전에 보탬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이 모임의 목표로 설정했다.
이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기적인 등산 및 훈련, 등산을 위한 조사 탐색대의 파견, 강연회와 전시회 등 등산의 보급 및 지도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청년등산구락부 역시 창립 기념 산행으로 지리산 종주를 했다. 1958년 8월3일부터 1주일 동안에 걸쳐 지리산 주능선을 답파한 것이다.
1946년 2월 한국산악회 경남지부가 창립 기념 산행으로 지리산에 올랐던 것을 시작으로 부산에서 태동한 모든 산악단체의 창립 기념 산행은 한결같이 ‘지리산’이었다.
산악회 창립과 지리산 등정은 부산에선 어쩌면 불문율과도 같았다.
그것은 또한 부산 사람들의 지리산 사랑 증표이기도 하다.

부산청년등산구락부는 1960년 8월, 회의 이름에서 ‘청년’을 빼고 ‘부산등산구락부’로 바꾸면서 문호를 개방하였다.
1961년 4월에는 다시 부산산악회로 이름을 바꾸고 산악인들의 자연사랑을 몸소 실천하자는 운동으로 식목등산을 처음 시작했다.
또한 1962년에는 ‘시민안내등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산행으로 등산을 전혀 몰랐던 일반시민들을 산으로 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부산청년등산구락부가 태동한 날로부터 불과 2개월 뒤인 1958년 9월에는 소장파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대륙산악회의 전신인 ‘초장산악회’가 탄생한다.
이 해 9월19일 성산(成山)을 비롯하여 이명선 박선종 오봉구 이정연 허영호 김정수 김시조 등 소장파 산악인들이 지리산 등반에 나섰다.
24일까지 이어진 이 지리산 등반에서 이들은 산악회를 만들기로 하고, 산행을 끝낸 다음 부산 서구 초장동 3가 75번지 성산 대장 자택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초장산악회를 탄생시켰다.

이들이 산악회를 만든 데는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6.25동란으로 서울에서 피난 온 배재중학생 김학겸의 가족이 성산의 집에 세들어 산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찍 등산에 매료된 김학겸 등 동료 7명은 ‘삼천리 탐승회’를 만들어 부산 근교의 산을 올랐는데, 성산은 이 탐승회에서 등산을 배우게 된 것이다.
서울이 수복되자 1954년 그들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성산은 박선종 이명선 등과 산행을 거듭하면서 1958년에는 산친구가 12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8명이 지리산에 올라 산악회를 만든 것이다.

당시 이들이 내건 기치는 기존 산악회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등산인은 산길이든 암벽이든 만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하면 줄도 타고 암벽도 오를 줄 알아야 하며, 악천후에서 야영을 하는 기술도 익혀야 한다.’
바로 다음 해인 1959년에 들어서면서 이들은 이와 같은 창립정신을 ‘대륙적으로 대범하게 크게 넓혀 나가자’고 하여 산악회 이름을 ‘대륙산악회’로 고쳤다.

성산과 대륙산악회, 이들의 지리산 사랑은 참으로 각별했다.
성산은 지리산에서 갖가지 전설적인 기행과 기록을 남기게 되고, 그의 대륙산악회는 지리산 칠선계곡 루트 개척 등에서도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된다.
성산은 법계사 초막 등지에서 지리산 사랑의 남다른 경험도 한다.
“지리산이라면 성산, 성산이라면 지리산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부산 산악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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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eon 2009.12.31 18:11
    "등산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이룩하고 산악을 이해 연구하며 등산의 보급과 지도 장려를 꾀하고 나아가서 회원 서로의 친목과 자연애호정신을 길러 사회 문화발전에 보탬이 되게 한다" 현재의 우리들이 늘 다시 새겨봐야 하는 정신입니다.아!!그리고 혹시그래서 대륙폭포가 명명된 것인가요??? 그때 대륙산악회의 칠선계곡루트 개척 당시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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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9.12.31 18:30
    그렇습니다. 칠선계곡에는 대륙폭포, 동아폭포 등의 이름이 있는데, 칠선계곡 학술조사대에 대륙산악회, 동아대산악회원들이 참여한 것을 기려 그런 이름을 명명했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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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10.01.01 15:49
    경인년 새해 첫날 여산 선생님께 안부를 드립니다
    부산인들의 지리산 사랑속에 여산 최화수선생님의 깊은 애정은 더 큰 획을 긋고 있으시지요...꾸준히 지리산을 지키고 오브넷에서 애쓰는 진원님을 다독여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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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10.01.01 17:42
    섬호정 선생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변함없는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이 꾸준하게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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