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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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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현대정공 남성 산악인들의 '지리산 당일 100킬로미터 왕복 종주'와 마산 창원지역 여성 산악인들의 '지리산 당일 64킬로미터 종주' 기록은 두고두고 기억될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100킬로미터가 58킬로미터로, 64킬로미터도 38.5킬로미터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으니 허무하지 않은가. 여성 산악인들은 매표소 입구에서 출발했으니 천왕봉까지 6킬로미터로 계산해야 맞을 것 같다.

그 사이 지리산이 오그라들었는가? 실제로 지리산은 엄청나게 오그라들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저기에 도로를 내고, 시설물을 세우고 하느라 산길이 줄어들고, 산림도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리산 주능선 100리가 60리로 줄어든 것은 도로나 시설물 때문이 아니다. 원래의 이정표는 도보 측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을 지난 1997년 50미터 줄자로 다시 재어 1차 거리 수정이 이뤄졌던 것이다.

달라진 거리는 중산리~천왕봉~노고단~화엄사의 주능선 종주 코스만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줄어든 산길은 천왕봉~치밭목산장 구간으로 8킬로미터가 3.9킬로미터로 드러나 절반 이상을 까먹었다.
지리산의 모든 산길의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늘어난 곳들도 있다. 마천 음정부락~벽소령은 종래의 8.4킬로미터에서 10.3킬로미터로, 또 거림~세석산장은 8킬로미터에서 9.7킬로미터로 늘어났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지난해 12월 지리산 주능선을 네 차례에 걸쳐 다시 50미터 줄자로 실측한 결과 거리가 또 달라졌다.
천왕봉~노고단이 32.3킬로미터에서 6.8킬로미터가 줄어든 25.5킬로미터로 밝혀졌다. 벽소령~세석산장은 10킬로미터에서 6.3킬로미터로, 연하천산장~형제봉은 3.5킬로미터에서 2.1킬로미터로 줄어들었다.
다른 산길도 다시 또 잰다면 별수없이 마찬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바윗길 등 험난한 코스에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비뚤비뚤한 산길을 직선으로 다듬은 것도 거리를 줄이는데 일조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연하천산장~세석산장 구간의 험한 곳에 나무계단 10여 곳이 설치됐고, 연하봉 근처에는 길이 200미터 짜리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능선길을 300미터 가량 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주능선이 엄청나게 준 것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산길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며 왜 춤을 추는가?
지리산 주능선 등은 97년 1차 수정 발표 때도 50미터 줄자로 실측했고, 올해 1월에 2차 수정 발표를 한 것 역시 50미터 줄자로 실측을 했다. 같은 50미터 줄자를 이용하여 거리를 쟀는데, 이처럼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증언이 있다. 지리산이 아닌, 내설악의 두 장사(壯士)가 그 얘기의 주인공들이다.

필자는 지난 1994년 <컬러기행 설악산>이란 책을 펴냈다.
필자는 내설악 영시암 복원공사 현장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고 있던 이청룡 원주를 만났다. 그는 바로 이웃한 수렴동대피소 이경수 관리인과 함께 '내설악 5장사'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오세암과 봉정암 복원 공사를 할 때 용대리에서 40리, 60리 길인 두 암자까지 지게에 시멘트 3포대씩을 지고 그 험한 길을 오르내리며 날랐었다.

1974년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이 두 사람에게 산길의 거리를 재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두 장사는 시멘트 3포대씩을 지고 나르다 50미터 짜리 나일론 끈의 양쪽 끝을 잡고 산길을 오르내리게 됐다.
장사는 제대로 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나일론 끈이라니, 그들은 너무나 심심했다. 하도 심심하여 두 사람은 술이나 실컷 마셨다. 술기운이 아니고는 도무지 그 짓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찌 됐는가? 나일론 끝을 잡고 가다보니 술김에 어느 한쪽이 끈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그렇다면 돌아가서 다시 재야 한다. 그들은 과연 다시 쟀을까?
"에라이, 모르겠다. 대충대충 재고 넘기자!"
그들은 그렇게 대충대충 거리를 재어 순 엉터리 이정표를 작성했다고 필자에게 실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1994년 당시에도 내설악 일원의 이정표는 그들이 엉터리로 잰 그대로 사용하는 사실이었다.

50미터 줄자의 마각(?)을 짐작할만 하지 않은가!
산길을 오르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흔히 묻는 말이 있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 그에 대한 대답으로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그렇다. 산길은 50미터 줄자로 계산하는 산술적 거리는 의미가 없다. 마음가짐에 따라 그 산길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산길에서 세우는 기록을 위한 기록 또한 무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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