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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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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와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가 마주 자리합니다. 서주리 강변은 빈터와 밭들이 연이어 있어 군중들을 불러모으기에 안성마춤인 곳이지요.
이 서주리 강변에서 양민 학살의 엄청난 비극이 또 벌어지게 됩니다. 하늘도 땅도 얼어붙은 엄동설한의 대참극이었습니다.

1951년 2월7일(음력 정월 초이틀) 오전 11시, 주변 일대 주민 1천여명이 서주 강변 둔치에 집결하게 됩니다.
그날 아침, 산청군 금서면 화계, 화산, 주상, 자혜리, 그리고 함양군 유림면 지곡, 손곡 등의 마을에 경찰과 향토방위대원, 군인이 조를 짠 듯이 나타나서 모든 주민은 서주리 강변에 모일 것을 통지한 것이지요.

무슨 연설을 할 것이라고도 했고, 안 나가면 죽는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다들 겁에 질렸지만, 우리 국군과 경찰이 나오라는데 별일이야 있겠느냐며 집을 나섰다는 군요.
군인들은 남자와 여자를 먼저 구별해 앉히고, 이어 노년과 청장년, 어린이 3개 그룹으로 구분해서 앉혔습니다.

군경 2명이 한 조가 되어 여자와 청장년 그룹 쪽의 대열을 한 사람씩 짚어가며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남편 어디 갔어?"
"산에 갔지?"
"거짓말 마!"
심문 내용은 대강 그러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뽑힌 사람은 앞으로 나가 다른 대열에 앉혔다는 군요.
그러니까 죽일 사람은 앞으로 나가고, 안 죽일 사람은 그대로 앉혀두는 것이었지요.
남자들에 대한 심문 내용도 별 것이 없었고, 군경 가족인가 아닌가가 선별의 1차 기준이 되었답니다.
인상착의와 동물적 직관이 선별의 척도가 되기도 했어요.

위의 내용은 산청, 함양사건 유족회가 펴낸 '산청, 함양사건의 전말과 명예회복'(강희근  지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960년 5월18일자 국제신보는 사건 발발 10년째를 맞이하여 현지에 기자를 보내 '서주리 참극'의 당시 상황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합니다.
그 일부가 필자의 졸저 <지리산 반세기>에 실려 있는데, 요약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주 강변에 강제 집결한 주민들은 군인들이 차가운 모래바닥에 엎드리게 했어요.
주민들은 4~5시간을 그렇게 엎드려 떨었답니다.
"그 때의 엎드려 보낸 4시간은 40년을 지낸 것 같았다"
유림면 강두혁씨(59세)가 당시의 심정을 그렇게 술회했습니다.

서주 강변에서는 방곡에서의 몰살과는 달리 빨갱이 성분이 다분하다는 300여명의 주민을 따로 추려내고, 나머지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보냈어요.
강변에 남은 300여명은 그날 하오 6시께 강가 진흙 속에 쓰러진 채 영원히 일어날 줄을 몰랐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1960년 기사를 쓸 당시), 그 때 강변에서 빨갱이로 몰려 죽어간 사람들은 모두가 불쌍한 농민과 부녀자들이었다면서 마을 사람들은 원통한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국제신보 기사는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지적도 했습니다.
"아이를 업은 아낙네들이 빨갱이가 무엇인 줄 알며, 또한 사상이 이상할 수 있겠느냐! 서주 강변 양민들의 죽음은 너무나 억울했다."

  • ?
    오 해 봉 2005.11.24 00:30
    인근지리를 잘아는 빨치산 들로부터 피해를입은 토벌대의 너무나
    잔혹한 보복 이었군요,
    그릇된 첩보와 그당시 날리던 일본군 헌병 앞잡이출신 김창룡이네
    특무대의 월권행위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
    섬호정 2005.11.24 05:28
    비참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
    잊어서는 아니될 아픈 역사들을,
    지리산이 품어낸 파편같은 사화를,
    如山선생님에게서 늘 새로이 깨우칩니다
    바로 알고...정신을 일깨우는 글 고맙습니다
  • ?
    김용규 2005.11.24 17:34
    지나간 역사지만 엄청 큰 사건이었는데도 그 많은 매스컴에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왔습니다. 최화수님께서 여러 자료들을 집대성하시어 재 정리를 하여 주시니 저 역시 새롭게 사실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쪽 지방사람의 한사람으로서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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