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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57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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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를 따라 동북쪽 10㎞ 거리에 해발 485미터의 여원치(女院峙)가 있어요.
운성대장군이 서있는 이곳에서부터 운봉고원이 드넓게 열립니다.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오르는 여원치는 영호남의 경계를 이루는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이곳 모산성(운봉성) 등지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답니다.

여원치에는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일반 여행객을 위하여 '여원'이란 원(여관)을 설치했다고 하는 군요.
여관 건물을 원우(院宇)라고 했는데, 암벽의 마애여래상 등으로 보아 사원을 개조했거나 전환하여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봅니다.
지난날 사람들이 걸어다닐 때 이 고개에는 어떤 사연들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요?

여원재 골은 운봉 사람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남원을 오가던 주통로였지요.
여원재 골이란 여원치에서 양가제(陽街堤)를 돌아 양가리 나뭇거리로 통하는 골짜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나뭇거리를 출발하여 여원재 골을 따라 오르면 양편에 깎아세운 듯한 기암괴석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엇보다 골짜기에 자연림이 울창하여 태고의 신비가 넘쳐납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 장군은 인월에 진을 치고 있는 아지발도 휘하의 강력한 왜구들을 격퇴하고자 제왕산(고남산)에 제단을 마련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7일간 밤낮으로 제사를 모시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전장에 나선 장수가 적들을 눈앞에 두고 왜 7일 주야를 이처럼 엉뚱한(?) 일을 벌인 것일까요?
그것은 여원치에서 만난 한 노파의 계시(가르침)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이성계 장군이 여원치에 닿았을 때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나 시야를 가렸다는 군요.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한 노파가 나타났어요.
비문에는 '도고(道姑)'라고 씌어 있는 이 노파는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 사전대비법 등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한 노파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군요.
그러자 아침햇살이 밝게 비치는 맑은 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운봉 사람들에 따르면, 이 노파는 산신(山神)이 아니라 왜구에 한(恨)을 품은 한 여인의 원신(怨神)이라고 합니다.
이 여인은 원래 경남 함양지방에 살던 미모 단정한 주부였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댔는데...
그러자 그녀는 칼로 적장의 손이 닿은 왼쪽 젖가슴을 베어내고 자결했다는 것이에요.

일설에는 그녀가 여원치 주막의 얌전한 주모(酒母)였는데, 왜구가 젖가슴을 만지며 방자한 행동을 하자 식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자살했다고도 합니다.
그 이후 운봉 주민들이 이 주모의 절개를 높이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제각을 지었다는 것이에요.
당시 주모가 목숨을 끊자 몸에서 물이 흘러 그 아래 마을 밭에서 풀이 쪽(藍)빛으로 변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남평리(藍坪里)가 되었다고 전해옵니다.

그러나 실제 그녀를 만났던 당사자인 이성계 장군은 지리산 산신령으로 생각했어요.
훗날 이성계는 백발 노파를 산신령으로 굳게 믿고 오래오래 기리기 위해 노파를 만났던 고개 석벽에 여신상(女神像)을 새기고 그 위에 산신각을 세워 보존했다는 군요.
그래서 지리산 산신령은 보통여자이며, 산신령이 사는 곳을 여원(女院)으로, 이 고개를 여원치로 부르게 됐다고도 합니다.

여원치 석벽의 여신상이 왼쪽 젖가슴이 없는 연유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렇지만 석벽의 여신상이 이성계가 만난 그 원신이었는지는 의문이 따르기도 합니다.
왜냐면 여신상을 마애여래불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 때문이지요.
세월은 흘러흘러 그 여신상의 흔적도 희미하게 마모돼 갑니다.
그렇지만 악랄한 왜구들을 섬멸코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과 기원만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더 뚜렷이 살아나 빛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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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규 2005.02.05 10:50
    최화수님을 통해서 지리산과 관련된 역사 전설 공부를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수 있게 되니까요. 여원치의 여신상 답사를 꼭 해 보아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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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2005.02.05 15:51
    여원치석벽의 여신상에는 그런 애달픈 이야기가 있었군요
    남평리로 지어진 연유도 들으면서 옛날 여인들의 높은절개 ...깊이
    생각해봅니다...여산선생님 감사합니다
  • ?
    섬호정 2005.02.06 17:18
    24번 국도를 달려가면 찾아볼 수 있는 남원 운봉지대 여원치의 설화와 남평골 여신상 이야기 잘 알게 됩니다. 구전으로 오는 수많은 임란때의 남해안 일화들로 역사의 뒤안길을 다시 새겨봅니다 늘 흥미있고 지역을 지켜주며 전해오는 야화 발굴 노고에 如山선생님께 또한 감사드립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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