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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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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이 발명한 화포가 적 함선을 모조리 격침시킴으로써 왜구는 퇴로를 차단당했지요.
왜구는 일본땅으로 되돌아갈 방법이 없자 삼남지방을 휘젓고 다니며 악랄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상주, 영동, 옥천 등지에서 약탈을 자행한 왜구의 주력부대는 경산(지금의 성주)을 침략하고, 이어 사근내역(함양)에서 격전을 치렀는데, 이 전투에서 우리 군사 500명이 전사했다는 군요.

왜구는 다시 남원 운봉현을 방화하고 인월에 주둔하면서 장차 북상하겠다고 하여 조정을 놀라게 했답니다.
그래서 해주 등지에서 왜구 토벌에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고 변안열을 체찰사(體察使)에, 우인열 등을 원수로 삼아 지리산의 왜구 토벌에 내보내게 되었어요.

이성계 장군은 남원을 거쳐 여원치에 진을 칩니다.
그 다음 왜구 토벌 과정은 신의 계시를 따랐다고도 하지요.
여원치 북쪽 약 3킬로미터 거리에 투구를 쓴 듯한 괴이한 모양의 산이 있어요.
당시 제왕산(帝王山)이라 이름했다는데, 나중에 태조봉이라고도 했고, 지금은 고남산이라 부릅니다.

이성계는 이 제왕산으로 진군하여 동과 서에 각각 천하대장군 한쌍씩을 세워 잡귀를 쫓게 합니다.
그는 해발 850미터의 정상에 올라가 석축으로 제단을 쌓고 정화수를 떠다 7일 동안 밤낮으로 제사를 모시며 팔도 산신을 불러 전승을 기원합니다.
또한 밤에는 수천개의 허수아비를 만들에 세워 불과 5~6킬로미터 전방에 있는 왜구들에게 심리적인 위압을 가했답니다.

7일 제사를 지내는 동안 이성계는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용장을 적진 근처에 밀파했습니다.
기도를 끝낸 이성계는 주변의 지형지세를 살폈는데, 전방 4킬로미터의 황산(荒山)이 가장 눈에 띄었다는 군요. 해발 695미터의 바위산이기도 합니다.
이성계는 곧 황산에 진을 치고 황산계곡으로 적을 유인하여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이성계 장군은 화살을 쏘아 왜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벗깁니다.
아지발도는 "황산바람이 세다"며 입을 벌렸는데, 그 순간 퉁두란(이지란)의 화살이 왜장의 목구멍을 뚫어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했다는 군요.
왜구들은 풍지박산 패주하고, 이성계는 달을 끌어올려 놓고 왜구들을 섬멸했다지요.
이것이 곧 황산대첩이요, 달을 끌어당겨 놓고 싸웠다 하여 인월(引月)이란 지명이 생겨났다고도 합니다.

황산대첩에서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붉게 물들어 6, 7일간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남원~함양 국도변 황산계곡 피바위에 말발굽과 피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군요.
황산대첩에서 포획한 말이 1600여필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명만이 목숨만 끌어안고 지리산으로 도망을 갔다네요.

지리산으로 도망간 왜구 패잔병들은 엉뚱하게도 천왕봉에서 화풀이를 합니다.
성모석상(聖母石像)에 칼질을 한 것이지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왜구들은 다시 법계사로 내려가 이 절에 불을 지른 것이지요.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갔지만, 왜구의 잔인성을 천왕봉과 법계사가 지금도 일러주고 있는 셈이에요.

이성계가 황산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데는 '지리산 산신'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리산은 이성계의 등극을 반대하여 소지가 불타지 않아 '불복산(不伏山)'이란 명칭이 부여됐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리산신이 이성계를 도왔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성계 장군에게 황산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노파, 또는 도고(道姑)는 왜구에게 한을 품었던 원신(怨神)이었던가 봅니다.
아흔아홉 구비를 감돌아 오르는 여원치에는 지금까지 그녀의 전설이 얘기됩니다.
왼쪽 젖가슴이 없는 여신상도 그 전설을 따른 것이지요.

  • ?
    김용규 2005.01.29 09:11
    무슨 연유로 지리산 높은 곳에 성모석상이 세워졌는지 궁금합니다. 종교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기념물이었는지 말입니다.
  • ?
    최화수 2005.02.01 10:25
    김용규님, 천왕봉에 무슨 연유로 성모석상이 세워졌으며,
    이 성모석상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지...등에 관한
    글은 여기 쓰고 있는 저의 '지리산 통신'과 '지리산 산책'
    에 씌어 있습니다.

    '지리산 통신' 제6호(2002년 1월7일), 제7호(2002년 1월
    15일), 그리고 '지리산 산책' 제80호(2003년 10월16일)를
    보시면 성모석상과 관련된 이런 저런 사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오 해 봉 2005.02.01 23:29
    황산대첩에관한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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