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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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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읍에 함양군청이 있지요. 그 군청과 나란히 함양초등학교가 자리하는데, 이 초등학교 건물을 압도하듯이 서 있는 것이 바로 그 느티나무입니다.
함양군수 김종직은 늦게 낳은 아들을 잃어버린 다음해인 1475년, 정3품 정훈대부로 승진하여 함양을 떠납니다.
그이는 함양 땅을 떠나면서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아들 목아(木兒)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나무를 심었던 것이지요.

함양초등학교 자리는 원래 지방 관아 동헌이 있던 곳입니다. 최치원의 대관림(상림) 공적을 기려 지은 학사루는 이 동헌 앞에 있었고, 김종직은 학사루 앞에 아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느티나무를 심었던 것이에요.
오랜 세월이 지나 지방관아가 허물어진 자리에 함양초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최치원, 김종직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학사루는 학교 맞은편 2차선 도로 너머에 옮겨지었답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만은 원래 그 자리에 그냥 두었지요.
어린 아들을 위한 나무였으니, 초등학교에 서있는 것도 좋겠네요.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 또는 '좌안동 우안의(安義)'라는 말이 예부터 전해 왔어요.
함양이나 안의는 크게 보면 같은 고을입니다. 함양군 또는 안의현에 함께 소속되었으니까요.
지난날 안동과 어깨를 겨루는 곳으로 함양과 안의를 들었습니다.
선비들의 문향이 빛났고, 사대부들의 정자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웠던 곳이지요.
조선시대 사림파(士林派)의 종조(宗祖) 점필재 김종직은 함양 동헌 앞 학사루에 당시 관찰사로 있던 유자광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버럭 화를 냈다지요.
"어찌하여 소인배의 글이 학사루에 걸려 있느냐. 당장 철거토록 하라!"

바로 유자광의 시판 철거 사건이 저 끔찍한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발단이 되었으니...세상 일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지요.
연산군 4년(1498년) 김일손 등 신진사류들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勳舊派, 조선 세조 때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여 형성된 정치세력)에 의해 화를 당합니다. 성종 때부터 중앙에 등용되어 관계에 나온 사림파의 중심인물은 김종직이었고, 임금의 신임을 얻은 그는 제자들을 많이 등용했던 거에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마침내 무오사화의 비극을 불러들인 것이지요.

1498년 실록청(實錄廳)이 개설되어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됐는데, 당상관(堂上官)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기초한 사초(史草)에 삽입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았다고 비방한 것이라고 하여, 이것을 문제삼아 유자광과 함께 연산군에게 고해바쳤습니다.
그리하여 김일손을 비롯한 많은 사림이 화를 입었고, 그들의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가 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복수의 칼을 들고 만행을 자행한 이가 바로 학사루에서 시판이 철거된 유자광이었으니...비극이 아닐 수 없네요.

연산군 4년 7월이었습니다. 한양에서 내달은 금부도사가 청도 운계의 김일손(金馹孫)의 집에 황급히 당도했어요. 그런데 김일손은 그곳에 없었지요.
그이는 함양의 남계로 내려와서 청계정사를 세우고 후진을 가르치며 정여창(鄭汝昌, 1495~1498년 안의현감을 지냄)과 매일처럼 만나 학문을 논하며 연산군의 횡포와 간신배가 들끓는 조정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금도부사가 다시 함양의 청계정사로 들이닥쳐 김일손에게 체포하러 왔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김일손은 미소 띤 얼굴에 아주 태연했다는 군요.

옆에 있던 정여창이 말했습니다.
"사림들에게 화가 시작되려는 모양이군."
"나는 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자네는 도(道)를 위하여 자애(自愛)하게."
김일손이 정여창에게 한 말입니다.
"여러 말 말자. 나도 또한 뒤를 좇아가리라."
두 사람은 조용한 표정이었는데, 의(義)를 따름이 이러했다고 '탁영집 별책'에 그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당시 김일손은 35세, 정여창은 48세였습니다.
김일손의 지리산 탐승록인 '속 두류록'은 26세의 한창 나이에 씌어졌습니다. 지리산 탐승에 동행했던 정여창은 그 때 나이 39세였어지요. 김일손 정여창의 재능과 학문, 인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만합니다.
김일손은 형처럼 정여창을 따랐고, 김종직 문하에서 같이 배운 동문답게 농담도 주고 받았다는 군요. 그들은 죽음의 길에서도 이렇게 서로를 아꼈답니다.
김일손을 기리는 청계서원과 정여창을 기리는 남계서원이 함양 땅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김일손은 무오사화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 함양 출신으로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한 뒤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종성으로 귀양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 ?
    허허바다 2004.08.10 18:43
    목숨앞에서 저 의연함...
    그로써 목숨을 건 정치...
    그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 ?
    오 해 봉 2004.08.12 00:59
    함양초등학교에 지금도 그 느티나무가 있군요,
    가슴이찡하고 마음아픈 이야기이네요.
  • ?
    솔메 2004.08.12 09:38
    함양, 안의에 녹아있는 기개있던 士林의 향기가
    여산님의 글 속에서 짙게 우러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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