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1)

by 최화수 posted Aug 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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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말 신라 시대에 함양태수를 지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숲인 '상림(上林)'을 조성, 지금까지 천년을 '푸르른 전설'로 이어오게 하고 있습니다.
함양읍에 자리한 상림의 나무들은 대부분 낙엽수와 활엽수로 철따라 다른 빛깔을 드러내는데, 현재 남아있는 나무는 120여종 2만여 그루에 이릅니다.

최치원은 함양태수를 마지막으로 속세와의 인연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고 하지요. 함양 상림은 그가 신선이 되기 전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이는 숲을 조성하는 나무를 하루만에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가져왔고, 금호미 한 자루로 숲을 만드는 데도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이는 도술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인지 이 상림과 관련하여 그럴 듯한 전설도 전해옵니다.
최치원이 하루는 어머니를 모시고 상림을 찾았는데, 갑자기 뱀이 나타나는 바람에 어머니가 놀라게 됐다는 군요. 최치원은 즉석에서 주문을 외워 상림에 해충 한 마리 나타나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상림에는 해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지요(지리산 삼신동 세이암의 게 전설과도 비슷합니다).

15세기 조선시대 때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점畢齋 金宗直)은 엄천사에 '함양다원'이란 관영차밭을 조성했었지요(앞의 칼럼 '엄천사 차향' 참조).
하지만 그 이후 엄천사도 관영차밭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김종직은 함양 땅에 상림과 같은 숲 대신, 학사루(學士樓) 앞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떠났답니다.

김종직은 성종 원년(1470년) 임금에게 간곡한 청을 올렸습니다. 고향(경남 밀양) 가까이서 노모(老母)를 모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이의 효심이 받아들여져 이듬해 함양군수가 된 것이에요.
그는 1475년까지 5년 동안 함양군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함양군수로 부임한 다음해인 1472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는데, 저 유명한 지리산 기행록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지요.

1475년 김종직은 정3품 통훈대부로 승진하면서 다시 한양으로 가게 됩니다.
함양 땅을 떠나면서 그는 학사루 앞에 천년을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로부터 53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이가 심은 그 느티나무는 지금 높이 22미터, 가슴높이 둘레 7.3미터로 어린이 10여명이 감싸안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합니다. 천연기념물 407호로 지정돼 있어요.

함양 학사루의 이 느티나무는 김종직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함양군수로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김종직은 마흔이 넘어 얻은 다섯살 짜리 아들을 홍역으로 잃게 됐어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그는 다음과 같이 시 한 수에 담았습니다.

'내 사랑 뿌리치고 어찌 그리도 빨리 가느냐
다섯 해 생애가 번갯불 같구나.
어머님은 손자를 부르고 아내는 자식을 부르니
지금 이 순간 천지가 끝없이 아득하구나.'

김종직은 아들을 잃어버린 대신 느티나무 한 그루를 남겨 위안을 삼고자 했나 봅니다.
그이의 죽은 아들 이름은 목아(木兒)였어요.
태어날 때가 모두 목성(木星)과 관련이 있어서 지은 이름이라지만, 나무와의 인연을 운명적으로 타고 난 듯합니다.
목아, '나무 아이'의 짧은 생애는 아쉽게 끝났지만, 그 아들을 위한 진혼나무는 지금까지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나무는 판자 모양의 뿌리, 이른바 판근(板根)이라고 부르는 특수조직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나무의 뿌리목 가까이에 마치 두꺼운 책을 옆으로 세워서 나무를 받치고 있는 것 같은 보기 드문 모양새가 발달한 것이지요.
일부는 땅위로 나오고 나머지는 땅 속에 들어가서 옆으로 퍼짐으로써 나무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최치원이 즐겨 찾고 김종직 또한 곧잘 찾아 시를 짓고는 했다는  학사루.
하지만 유서 깊은 이 학사루가 김종직이 부관참시(剖棺斬屍)되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케 한 곳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