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4)

by 최화수 posted Jul 1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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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경소리
마주보는 풍경이 풀어놓는 죽비소리
낮달이 내려와 초당에서 주워드네
寂念의 좌복 위에서 화두 잡고 生死 풀고

2, 구천계곡 찔레꽃
찔레꽃 하얀 춤사위
슬픔인가 無我인가

은하폭포 소식에
화답의 禪舞인가

문덕산 寂念 하나가
빈 초당에 충만하다'
      <오영희 / 달빛초당에서>

'하동송림' 카페를 열고 있는 '섬호정' 도명 오영희 시인.
지난해 가을 첫 시조집 <섬진강 소견>을 펴냈습니다.
거기에는 김필곤 시인의 '달빛초당'을 노래한 작품(위의 시조)도 수록돼 있어요.

오영희님은 '달빛초당에서' 적념(寂念), 무아(無我), 선무(禪舞)와 같은 말들을 떠올립니다.  '풍경이 풀어놓는 죽비소리', '낮달이 내려와 주워드네', '찔레꽃 하얀 춤사위'...이런 읊조림은 천상이나 선계와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네요.

요즘의 김필곤님 모습은 전형적인 산골사람입니다.
소박 질박 수수 순수...뭐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끝이 없지요.
그이는 시인 이전에 농부이고, 농부 이전에 차인이지요.
그의 그런 성품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달빛초당' 오두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소박하고 수수하며 꾸밈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일까요!
첫 걸음의 그 누구에게도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부터 먼저 안겨줍니다.
작은 흙집, 마루 한 편의 작은 정자, 숙성실과 반씩 자리를 나눈 황토방 서재가 한결같이 질박합니다.

너무 순수하여 감춘 것이 하나도 없는 碧沙 시인과 똑같아요.
아니, 아무 꾸밈도 없어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입니다.
꾸미지 않은 집, 치장하지 않은 집, 감춘 것도 없고, 내세운 것도 없지요.
그러기에 달빛이 임자가 되는 집입니다.
달빛이 한껏 쏟아져 넘쳐날 수 있는 집이지요.

지리산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집들은 돈 냄새를 풀풀 풍겨댑니다.
귀족의 성곽같은 집들은 칠불사 가는 길에 어지럽게 볼 수 있지요.
기존 흙집을 헐고 시멘트 덩어리로 '리모델링'한 집은 아무 마을에서나 흔하게 봅니다.
하지만 '달빛초당'만은 단순질박합니다.
'가난한 오두막집'을 재생시켜 놓은 듯하지요.

'달빛초당'은 왜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지 않고, 도로변에 자리한 것일까요?
나는 김필곤 시인에게 왜 현재의 자리에서 100미터, 아니 50미터라도 더 계곡 안으로 들어가 집을 짓지 않았느냐고 물었답니다.
"저 안으로 건축재를 운반할 돈이 없어서요."
그이는 돈 때문에 도로변에 주저앉았다고 실토하더군요.

하지만 '달빛초당'은 가난한 집이 결코 아닙니다.
먹고 또 먹고 또다시 먹어도 남을 청정수가 구폭동계곡을 타고 초당으로 흘러들지요.
초당 앞뒤뜰과 주변 일대는 온통 산나물과 야생화의 세상입니다.
취나물, 민들레, 돌미나리, 고사리...손만 내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어요.
"산청 처가에서 쌀가마니 얻어오고, 반찬은 뜰에서 즉석으로 구하고 하니까, 다른 아쉬움이 없어요."

김필곤님은 마음이 부자로 삽니다.
더 이상 갖고 싶은 것도 없답니다.
그이는 화개장터에라도 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는, 흔해빠진 자동차도 한 대 없어요.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아쉬움이 없으니까 불편하지도 않다네요.

"나는 이곳에 들어와서 신문도 TV도 보지 않고 살아요. 신문에 나오는 세상사 내가 어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하면서 그이는 완전한 자연인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의 각오를 한 모양입니다.
"나는 여기서도 집밖으로는 좀체 나가지 않습니다. 바깥에 나가 사람들과 시끄러워지는 것보다 그냥 달빛초당에서 지내는 것이 좋아서요."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어요.
'달빛초당'이라면 무엇 하러 바깥 나들이를 하겠는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왜 요란방정을 떨고 하랴.
아, 지리산에 사는 방법을 '달빛초당'에서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