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5074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산자락 걸쳐 입고
물소리도 걸쳐 입고

삼십 리 화개동천
봄 하늘도 걸쳐 입고

달빛 차 달빛초당의
차향기도 걸쳐 입고
......(후략)'
           <김필곤 / '산거일기' 중 '차향기도 걸쳐 입고'>

문덕산 구폭동천 '달빛초당'!
문덕산 구폭동천은 碧沙(벽사) 김필곤님의 신성한 영역으로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요.

하지만 반쯤은 숨은 듯이 자리하는 작은 오두막 '달빛초당'은 산책을 나왔던 신부님조차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정겨움이 넘쳐납니다.
이 오두막만은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어요. 다심(茶心)과 시정(詩情)이 넘치는 이라면 누구나 반갑게 맞이해준답니다.

김필곤님은 20여년에 걸친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7년여 전에 화개동천 문덕산 구폭동으로 입산했어요.
처음 들어올 때 심었던 차나무와 과수는 어느 사이 주인공의 키보다 더 훤칠하게 자라서 봄이면 '금싸라기 차싹'을 피워올리고, 가을이면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답니다.

김필곤님은 이곳에 찾아들 때 흰 오라기 하나 없던 검은 머리가 어느새 하얀 눈이 내린 '설령(雪嶺)'이 되었다며, 지난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이 골짜기에 오두막을 짓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차밭을 일궈내는 일이 어찌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손이 부르트도록 내외가 손수 오두막(달빛초당, 茶仙草堂)을 엮어서 낮이면 땀 흘리며 차밭을 가꾸고, 밤이면 둥근 달빛 아래서 시차일미(詩茶一味)를 마음껏 즐기며, 절반은 신선으로, 절반은 노동자로 문덕산을 일곱 해 동안 적시고 있다."(시인, 다도인 金明枝)

이제는 절반은 신선으로 산다고 하는 말이 맞습니다.
'금싸라기 차싹'과 주렁주렁 열리는 과일만으로도 신선세계이니, 노동의 그 엄청난 고단함도 흐르는 냇물에 씻어보낼 수 있을 거예요.

화엄사의 野松 스님은 간혹 이곳 달빛초당에 들러 벽로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산노루' 같은 碧沙 내외분과 물외한담(物外閒談)을 즐기다 가곤 한답니다.
스님은 '달빛초당'을 '차신선(茶神仙)의 도장(道場)'이라고 말합니다.
스님 역시 김인국 신부님처럼 정감이 넘치는 오두막 한 채의 그 분위기에 이끌려 그냥 들렀다가 인연을 맺었답니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 한 3킬로미터 쯤 오르면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의 청정한 계류가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문덕차산(文德茶山) 기슭에 오두막 한 채가 반쯤 숨어 있어서 그 정감있는 분위기에 은연중 이끌려 그냥 들렀더니 시와 차와 고서(古書)와 야생화를 좋아하는 산노루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碧沙라는 아호를 지닌 차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살고 있는 문덕차산에는 무지개폭포, 은하폭포 등 아홉 개의 폭포가 쏟아지는 구폭동천이 숨어 있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라 사시절 늘 피었다가 지고, 졌다가 다시 피는, 지천으로 자생하는 야생화와 함께 차향기로 풋풋한 벽로차밭이 오두막을 온통 감싸고 있어서 차신선의 도장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달빛초당'의 차향기를 특히 잊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인 경희대 이근수 교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달빛초당 뒤에 솟아 있는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내리며 차잎을 한참 따고 와서는 벽사천(碧沙川) 선녀폭포 물소리를 벗삼아 농주(農酒) 한 잔을 곁들여 저녁밥을 먹은 후, 달빛초당 다실인 허심당에서 달빛차를 끓여마실 때였다.
첫 잔에서 느낀 감미로운 맛이 다음 잔에서는 엷어지며 쌉쌀한 맛이 더해진다고 느꼈는데, 셋째 잔에서는 신맛이, 그리고 넷째 잔에서는 약간 짠 맛이 우러나다가 다시금 단맛이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운 맛이야 신맛과 짠맛 사이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그날 저녁 끓여 마신 달빛차에서 실로 오랜만에 말로만 들어오던 차의 오미(五味)를 비로소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달빛초당'에 대한 이 교수의 회고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통나무 장작을 후끈하게 지펴 놓은 출입금지의 숙성실에서 그토록 구성지고 감칠맛 나게 흘러나오는 차향기가 조그마한 오두막 달빛초당의 처마밑을 감돌고, 모란꽃 송이만큼 커다랗게 떠있는 문덕산 하늘의 별빛 아래서, 차를 마셔 맑아진 나의 심신을 다시금 얼근한 농주로 달래어 주던 달빛초당 주인의 그 토속적인 인정과 사람 맛이 봄햇살처럼 따사롭게 감겨오곤 한다."
  • ?
    김현거사 2003.07.07 21:03
    최선생님이 현대판 지리산 신선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는군요.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요?
  • ?
    솔메 2003.07.08 15:43
    지리산 화개동천에 또 하나의 仙景이 있었군요.
    갈수록 궁금하여집니다..
  • ?
    여신(麗蜃) 2003.11.21 03:35
    달빛초당에서 장작불 피워놓고 ...달빛차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시인과 함께 앉아있는 그 모습을 상상하니 나 스스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듯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72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7) 3 최화수 2005.02.17 5840
271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6) 1 최화수 2005.02.11 5459
270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5) 3 최화수 2005.02.02 5575
269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4) 3 최화수 2005.01.28 5371
268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3) 5 최화수 2005.01.23 5743
267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2) 4 최화수 2005.01.21 5930
266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승전비(1) 4 최화수 2005.01.12 5357
265 화전민 가옥 방화와 '독가촌' 3 최화수 2008.01.14 5142
264 화개동천 녹차 휴먼 드라마(5) 3 최화수 2003.08.18 5477
263 화개동천 녹차 휴먼 드라마(4) 1 최화수 2003.08.11 6682
262 화개동천 녹차 휴먼 드라마(3) 1 최화수 2003.08.06 5350
261 화개동천 녹차 휴먼 드라마(2) 최화수 2003.08.01 5097
260 화개동천 녹차 휴먼 드라마(1) 2 최화수 2003.07.23 5200
259 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5) 7 최화수 2003.07.16 5638
258 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4) 6 최화수 2003.07.11 5413
» 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3) 3 최화수 2003.07.07 5074
256 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2) 1 최화수 2003.07.04 5036
255 화개동천 '달빛초당(茶仙草堂)'(1) 7 최화수 2003.06.27 5523
254 한 그루 나무 그냥 지나칠소냐! 최화수 2002.07.26 5584
253 학사루(學士樓)와 느티나무(3) 3 최화수 2004.08.10 60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