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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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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동북부 자락에 왕산(王山)이 있어요. 산청쪽 국도에서 쳐다보면 흡사 '유두'처럼 생긴 필봉산(일명 문필봉)과 나란히 솟아있는 해발 923미터의 육산입니다.
유평계곡의 숨겨진 마을 외곡리 뒤편 왕등재에서 4킬로미터 북쪽에 자리합니다.
지리산에서 임금 왕(王)자를 쓰는 봉우리 이름은 천왕봉과 왕시루봉, 그리고 이 왕산 뿐이 아닌가 합니다.
특별히 높지도, 빼어난 산세도 아니면서 어째서 감히 '왕산'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을까요?
이 산은 왕산으로 불릴만한 그 까닭을 갖고 있어요.

왕산의 북쪽 기슭에 특이한 돌무덤 1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한국식 피라미드(?)'라고 말해지기도 하지요.
전체 높이는 7.15미터, 최하단의 길이는 20.6미터, 또 전면의 4단 중앙에 너비와 높이 40센티, 길이 68센티미터의 감실이 있는데, 마치 뻥 뚫린 구멍과 같습니다.
이 감실은 원래 신주나 성체를 모셔두는 방이라고도 하고, 영혼이 쉬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지난날엔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 촛불을 밝히고 복을 구하는 기원을 하기도 했어요.

1980년대 초반 왕산 등산길에 이 이상한 돌무덤과 처음 마주쳤던 나는 기묘한 생각이 앞섰어요.
주변 풍경이 황량한 산기슭, 가파른 비탈을 그대로 이용하여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앙상한 모습...!
또한 그 앞의 표석에 새겨놓은 '傳仇衡王陵(전구형왕릉)'이 눈길을 끌었어요.
가락국 제10세 구형왕은 재위 11년만인 532년 신라에 나라를 그저 넘겨주어 '양왕(讓王)'으로도 불렸답니다.
이상한 돌무더기가 왕릉이란 것도 놀랍지만, '傳(전)구형왕릉'이란 또 무슨 뜻인지, 아리송했던 거지요.

'傳'이란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구형왕릉이란 전설이 전해온다는 뜻입니다.
가락국 마지막 왕릉 앞에 '傳'이란 글자를 달고 있는 것이 기막히지 않나요?
구형왕은 신라에 나라를 넘겨준 뒤 이곳 왕산 기슭의 태왕궁(太王宮), 일명 수정궁(水晶宮)으로 옮겨와 4년 동안 머물다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생인 구해(仇亥)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일본으로 건너가 왜국왕이 됐다는 이설이 있는 등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수정궁은 또 무엇일까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로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와 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요.
'서주리 양민학살'이 벌어졌던 그 비극의 땅입니다.
옛날 가야 왕실은 지리산록의 이곳을 이상적인 휴양처로 보았어요. 왕산 자락이 엄천강으로 흘러내리는 이곳에 별궁(別宮)을 세워두고 역대 왕이 수시로 머물다 가고는 한 것이지요.
가락국 500년 역사를 가꿔온 왕실의 별궁이 자리하고 있었다니 예사로울 수 없지요.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이 최후의 4년을 수정궁에서 살았으니 가락국 마지막 수도라고도 할 만합니다.
신라는 나라를 그저 넘겨준 구형왕을 수정궁에 살도록 배려했고, 그의 직계 후손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했어요.
구형왕의 아들 김무력과 손자 서현은 그 벼슬이 각간(角干)에 이르렀고,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장군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인 공헌을 합니다.
특히 무력은 하양공주와 결혼하고, 김유신의 동생은 무열왕과 결혼하는 등 신라 왕실과의 로맨스도 유명하지요.

전구형왕릉비 부근에는 화랑도 김유신이 증조부의 시릉살이를 하며 활을 쏘던 자리라고 하는 '김유신장군 사대비(射臺碑)'까지 있습니다.
이런 것 등으로 본다면 왕산 기슭에서의 가락국 마지막 왕궁 수정궁은 그 명맥을 제대로 이어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500년에 걸쳐 신화적이고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었던 가락국의 마지막 왕궁 수정궁과 그 주변 유적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고작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돌무덤 하나만을 덩그렇게 남겨놓았으니 정말 기막힌 노릇입니다.

지리산의 역사적인 자취들이 이처럼 지리멸렬하게 망실될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가락국의 신화적 탄생 무대인 김해 일원에는 그 유적들이 잘 보존돼 있지요.
신라나 백제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지리산에선 저 마한의 피난도성 '달의 궁전(月宮)'이나 가락국의 별궁 수정궁이 자리했던 곳은 그저 척박한 벌거숭이 산골땅만 남겨놓았을 뿐이네요.
전구형왕릉의 경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성역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옛 문물의 자취는 깡그리 사라지고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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