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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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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불경스럽고 실례가 되는 말입니다만, 나는 지리산이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산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넉넉한 지리산에서 일으켜 세웠던 수많은 역사의 탑들이 지리멸렬하게 무너지고 말았어요.
고대와 중세는 물론, 근세와 현대에 이르는 지리산 역사는 왜 지리멸렬하게 갈가리 찢기고 흩어져버렸는지가 미스터리입니다.
지리산 역사의 지리멸렬은 찬란한(?) 문화 파편들마저 남아 있는 것보다 사라진 것이 훨씬 더 많은 데서도 알 수 있어요.

허백당 성현은 지리산이 "원기가 발설되고 천기가 토했다가 머금었다 하도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지요.
지리산은 백두산, 묘향산, 오대산, 덕유산과 함께 5대 덕산(德山)이자 5대 토산(土山)으로 한반도 남단의 최고최대의 산이에요.
이 땅의 자생풍수를 연 도선(道詵)은 구례 지리산 기슭 일대를 완복지지(完福之地)라고 찬탄을 마지 않았어요. 금환낙지 등이 그러하지요.
'정감록' 등은 지리산에 재난도 질병도 없는 세상, 신선이 되어 천수를 누리는 청학동(靑鶴洞)이 있다 했어요.

청학동이 아니라도 지리산 자연세계는 대단하지요. 산이 높고, 물이 넉넉하고, 넓은 들판도 끼고 있는 이 산은 완벽하게 복을 갖춘 땅으로 볼 수 있어요.
도학자들의 예언을 따르면 지리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지리산의 역사는 정반대로 어쩌면 저주받은 땅처럼 끊임없는 재앙이 몰아쳤다고 하겠습니다.
임진란, 정유재란, 한국전쟁 등이 일어났을 때 이 땅에 참담한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만, 지리산만큼 엄청난 상처를 입은 곳도 드물거에요.

그 비극적인 사건들로 하여 지리산을 지리멸렬한 산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억3천만평의 광활한 산괴(山塊), 둘레 800리의 지리산 권역에서 우리 조상들이 일구어내고 빚어놓은 역사와 문화와 민속의 실체들이 하나같이 갈기갈기 찢겨 그 파편조차 남아있지 않은 때문이지요.
어쩌면 이렇게도 '지리멸렬'할 수가 있을까요?
이러한 현상은 국내의 다른 산들과도 또 다릅니다.
위대한 역사의 자취들마저 깡그리 망실하고 없는 산은 아마도 지리산뿐이 아닌가 합니다.

지리산이 '자연의 산'에서 '사람의 산'으로 개산(開山)한 역사부터 살펴볼까요.
지리산의 가장 오래 된 사실(史實)에 대한 기록은 BC 78년입니다. 2080년 이전의 일이군요.
서산대사가 지리산에서 20여년을 살 때 숱한 사기(寺記)와 고승들의 전기를 옛 기록을 곁들여 정리했어요.
서북능선 황령(黃嶺) 아래 있던 '황령암(黃嶺庵) 사기'에 지리산의 개산 역사가 담겨 있지요.
한나라 소제(昭帝) 3년에 마한(馬韓)의 왕이 달궁에 피난도성(避亂都城)인 '달의 궁전(月宮)'을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마한의 한 왕이 진한, 변한의 난을 피해 반야봉 아래 피난도성을 쌓을 때 황, 정 두 장수에게 일을 맡겨 감독케 하고, 도성이 완성된 뒤 고개 이름을 두 장수의 성(姓)을 따서 황령과 정령으로 불렀다. 도성은 그로부터 72년을 보전하였다]는 내용이에요.
달궁에 피난왕조가 들어오면서 지리산이 처음으로 인간 삶터로 개산했다는 것이지요.
달궁마을은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등산객조차 잘 찾지 않던 오지였어요.
그곳에 지리산 최초의 왕조가 들어서 72년간 유지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 기록을 찾아낸 이는 지리산 인문사적을 꾸준히 추적한 부산 산악인 김경렬님입니다.
그이는 달궁마을의 한 노인으로부터 1928년 홍수 때 왕궁터가 드러났다는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됐어요. 질그릇 시루와 접시들, 동경(銅鏡), 활촉 같은 쇠붙이가 헤쳐진 땅 속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김옹은 달궁마을 김수곤 이장을 따라 정령 토성 가까운 곳에서 마애조각상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선 "사냥꾼도 마한 임금의 성지(聖地)여서 사냥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 등도 듣게 됐답니다.

지리산 최고 오지 달궁이 지리산 최초의 피난도성 '달의 궁전(월궁)'이었다는 주장은 흥미롭습니다.
서북능선의 정령과 황령도 그럴 듯한 얘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72년간 유지됐다는 그 '달의 궁전'이 어떻게 하나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지가 미스터리입니다.
지리산의 이러한 미스터리는 또다른 왕궁 별궁인 '수정궁(水晶宮)'도 똑같은 양상이에요.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仇衡王)이 전설의 돌무덤 하나만 남겨놓은 채 지리멸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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