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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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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입니다.
정월 초하룻날 설날은 세수(歲首), 원일(元日), 신원(新元)이라고도 하지요. 우리 겨레의 전통 명절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신명나는 민속놀이도 펼칩니다.
하지만 근신, 조심하는 날이라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일컫습니다. 세장(歲粧)을 하고 차례를 올리고, 어른들께 하례를 하고, 성묘도 갑니다.
세찬(歲饌) 세주(歲酒)와 함께 덕담(德談)도 나누고, 액과 병을 물리치는 갖가지 의식도 벌이지요.
이 모두에는 축복의 한해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지요.

설 명절에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흘 동안의 황금 연휴여서 심설산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지요.
차례고 하례고 다 팽개쳐놓고 지리산으로 달려간 이들도 적지 않나 봅니다.
하지만, 설 명절에 지리산에 안기는 이들은 산행을 즐기기에 앞서 소주 한 잔 부어놓고 잠깐 묵례라도 올리는 절차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설 명절의 저 끔찍한 지리산의 비극을 어찌 잊어도 되겠습니까! 지리산을 즐겨 찾는 산악인일수록 설 명절 비극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어야 하겠지요.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긴 1951년 2월8일입니다. 설날 바로 다음날, 정월 초이튿날이었지요.
지리산 북쪽 산자락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 일대 마을 주민들이 빨치산 토벌군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됐어요.
토벌군은 이른바 '견벽청야 작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견벽청야란 꼭 확보해야 할 전략 거점은 벽을 쌓듯이 견고하게 지키고, 포기할 지역은 인력과 물자를 모조리 철수시킨 뒤 이용 가능한 모든 것들을 없앰으로써 적에게 발을 붙일 수 없는 빈 들판을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설 명절 기분으로 떡국을 먹던 산청군 금서면 가현부락에 1개 중대의 군대가 마을 뒤 오롱재를 넘어서면서 50여호의 마을을 포위했다.
1951년 정월 초이튿날 이른 아침 때였다. 군인들은 피난을 가야 한다면서 마을 앞 계곡 넓은 터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오라고 했다.
군인들이 이끄는대로 집에서 나와 몰려선 주민들을 향해 군인들의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전후 좌우 팔방에서 마구 쏘아댔다.
80대 노인에서부터 갓 태어난 핏덩어리 아기까지 160여명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삼켰다.

가현부락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80여 가구의 방곡리에도 같은 시각인 아침 8시께 11사단 9연대 1개 중대가 마을을 포위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개울 빈터에 모이라고 했다.
그런 뒤 갑자기 180여 주민들에게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총성이 멎자 이번에는 마을의 80여 초가집들이 일시에 불길에 휩싸였다.
방곡에서는 160여명이 그 자리서 죽고 일가족이 몰살된 집도 7가구나 됐다.
연고 없는 송장들이 나뒹굴고 주인 없는 들개들이 해골을 물고 다녔다.]

위의 글은 사건 발생 9년 뒤인 1960년 5월18일자 '국제신보'의 현지르포의 일부분입니다.
마을 주민 가운데 배팔문씨는 오른쪽 어깨와 왼쪽 다리 두 곳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는데, 자기 위에 시체가 덮이는 바람에 살아났어요.
하지만 그의 가족 15명 가운데 11명이 살해되고 겨우 4명이 목숨을 건졌답니다.
왼쪽 허벅지에 총알을 맞고도 살아난 우창순 노인은 9명의 가족을 모두 잃었어요.
괴뢰군에 끌려갔다 유엔군 포로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오주한씨는 5명 가족 모두 죽고 없었답니다.

마을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한 현장에선 눈물겨운 삽화도 있었답니다.
시체더미 속에서 한 사나이가 몸을 털고 일어나더니 피범벅이 되어 꿈틀거리는 한 젊은 여자를 업고 50리 길을 달려 생초면 장터병원에 눕혔어요.
다음날 아침 여인이 눈을 뜨자 그는 "대한민국 사람 다 죽었다. 우리만 살아 있다"고 말했답니다.
왼편 어깨와 오른편 손 관통상 수술을 끝낸 27세의 그녀 이름은 이음전이었지요.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남편 오인덕, 네살 아들이 같은 장소에 끌려가 죄다 죽고 말았어요.

여순병란 다음해 같은 마을 청년 40명이 국군의 탄약 운반 일을 해주러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들은 노역을 끝낸 뒤 산청읍 새동 공동묘지로 끌려가서 3연대 박모대위가 총살시켰다고 합니다.
이 사실들은 훗날 양민학살 국회진상조사단에 의해 밝혀졌어요.
설 명절의 지리산 비극은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와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가 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바로 그 강변에서 엄청난 양민학살 만행이 역시 정월 초이튿날에 자행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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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2.02.09 19:39
    DAUM 칼럼 문화/예술 섹션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 제144호 '묘지 땅 1평만 사주세요'에 관련 글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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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사랑 2002.02.15 16:24
    정말 가슴 아프군요.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 그런 끔찍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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