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계곡길, 왜 이러는가?

by 최화수 posted Apr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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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지리산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으면서 한 말이다.

대원사계곡은 다른 계곡과 달리 ‘세신탕(洗身湯)’ ‘세심탕(洗心湯)’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청정하게 심신을 가다듬고 산으로 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 대원사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것도 같다.

지리산 깊은 산골, 우렁찬 옥류의 포말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대자연의 교향시를 들으며 계곡으로 접어들면 속진(俗塵)에 찌든 심신이 말끔하게 치유된다. 대원사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힐링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계곡에는 누구나 마음놓고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없다. 날카로운 벼랑과 굽이굽이 겹쳐지는 산자락으로 비좁은 자동차도로만 개설돼 있다. 그 찻길 옆의 낭떠러지 일부 구간에만 데크로드, 인도(人道)를 열어놓았을 뿐이다.

대원사 버스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린 사람들은 2㎞ 위쪽의 대원사는 물론, 유평마을과 삼거리마을, 중땀마을, 새재마을까지 찻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계곡을 끼고 이어진 이 찻길도 거의 대부분이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의 왕복1차로이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힐링 공간, 걸어가면서 깨우치고 얻는 것이 많을 이 대원사계곡에 보행자를 위한 산책로가 없다니 놀랍지 않은가. 근래 유행병처럼 번져나는 흔하디흔한 ‘둘레길’ ‘올레길’ ‘트레킹 코스’ 따위가 이곳에만은 없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뱀사골계곡과 비교가 된다. 뱀사골은 탐방안내소에서 요룡대 앞 와운교까지 자동차도로와 별도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탐승로를 따로 열어놓고 있다. 대원사계곡도 시외버스주차장에서 대원사, 또는 유평마을까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탐방로를 열어놓아야 옳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지금 대원사계곡은 찻길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걸어갈 수 있는 탐방로 대신, 차량들이 쌩쌩 가속도를 내어 달릴 있도록 찻길을 넓히고 있다. 차량 교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넉넉한 왕복 2차선이다.

도로 확장 공사가 자연을 얼마나 훼손할 것인지는 보나마나 뻔하다. 아름드리 소나무 등이 함부로 잘려나가고 벼랑을 파헤치며 굴러내린 바윗덩이가 나무들을 부러뜨리는 등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 앞에 그만 말문이 막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달궁계곡 상류 깊숙이 자리한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 20가구를 250억 원의 보상비를 지급하고 올해 안에 모두 이주시킨다고 한다. 반달곰을 비롯한 자연생태계 보존과 달궁계곡 오염원 차단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같은 지리산 국립공원구역인데 대원사계곡은 어째서 찻길만 확장하는가? 계곡 상류 곳곳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차를 몰고 찾아오는 탐승객들을 위해서인가? 자동차만 질주하면 생태계의 혼란과 오염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인가?

앞으로 자동차가 쌩쌩 내달리는 대원사계곡 길은 상상만 해도 무섭다. 국내의 손꼽히는 힐링 공간이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부터 위협당할 것이다.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소음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등 심신 건강을 해칠 터이다.

대원사계곡의 도로 확장 공사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흉물스럽게 파헤쳐놓은 자연훼손 현장 원상복구도 시급하다. 도로 확장 공사의 마무리에 앞서 계곡을 따라가는 생태탐방로나 산책로, 안전한 보행로와 쉼터 등을 먼저 개설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