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큰 '그이의 빈 자리'

by 최화수 posted May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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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규화 옹이 거의 30년을 지켜온 불일오두막 '봉명산방'과 오두막 앞의 돌탁자는 옛 모습 그대로, 달라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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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불일폭포를 찾는 길에 '봉명산방‘(불일오두막)에 들렀다.
오두막을 지키는 사람은 어딘가로 출타하고 없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낯선 사람 주위를 바쁘게 맴돌고는 했다.
아주 작고 깜찍한 애완견 혼자 주인도 없는 휴게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째선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변규화 옹이 타계한 이후 불일평전을 찾는 일이 아무래도 뜸해졌다.
오두막을 지키는 사람도 그 사이 몇 차례 바뀌었다.
처음에는 아는 이였으나 이제는 누가 지키는지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다.
왠지 적막감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문득 해맑은 웃음의 변규화 옹이 그립게 생각되었다.

불일평전에는 아직도 변규화 옹의 체취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이가 애써 쌓은 소망탑(素望塔)이며, 오두막 앞의 반도지(半島池)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뿐인가, 마당의 ‘돌탁자’ 따위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휴게소 안의 나무탁자에서 탐방객들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지난날과 같다.

그렇지만 달라진 것이 왜 없겠는가.
타계한 변규화 옹의 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비어 있다.
그이의 해박한 ‘지리산 이야기’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더불어 “이래라, 저래라” 하던 그이의 간섭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배낭을 벗어두고 가시오!”
불일폭포로 들어가는 탐방객에게 그이는 어김없이 배낭을 맡겨두고 가라고 했다.
아름다운 폭포 주위에서 식사나 음식물을 들지 못하도록 불일휴게소에 배낭을 벗어두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이는 불일휴게소를 지키는 것보다 ‘불일폭포 지킴이’에 더 충실했다.

그이는 탐방객들을 간섭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틈이 나는 대로 직접 쓰레기를 줍는 등 폭포 주변을 말끔하게 청소했다.
자연의 아름다운 세계 그대로 보존하려는 환경의식이 투철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하동군청에서 지리산 환경보존에 기여한 공을 기려 큰 상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변규화 옹은 음식물 따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만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탐방객들이 함부로 뱉어내는 소음까지 다스렸다.
잘못 된 말과 행동은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주었다.
지난날의 지리산 유명 산장 관리인들과 달리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타이르는 스타일이었다.

수염이 온통 뒤덮고 있는 얼굴이면서도 그이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30년 가까운 오랜 세월 그이는 ‘수염’의 권위로 불일평전을 지켜왔다.
덥수룩한 수염이 나이를 가려주었고, ‘산사람’으로서의 위엄도 안겨주었다.
“수염 덕분에 나는 ‘고무줄 나이’라요”라던 그이의 말이 생각난다.
‘수염의 권위’로 사람들을 타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 12월 하순의 일요일 아침, 지금부터 꼭 30년 전이다.
발목까지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불일폭포를 찾았던 나는 갈근차 한 잔을 사이에 놓고 그이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 이후 얼마나 자주 봉명산방(불일오두막)에 올라 ‘불로주(不老酒)’ 잔을 나누었던가.
너무나도 생생한 그 기억들이 이제는 ‘전설속의 이야기’로 까마득하게 흘러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