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그곳에 가니...

by 풍경 posted May 14, 2009 Views 3059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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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쓰려다,



아가야,
네 할아버지는 꽃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단다. 특히나 달 밝은 밤이면 뒷방문은 열어놓고 꽃이 잠자는 난(蘭)을 보면서 홀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네 할아버지는 꽃을, 절대 방안으로 불러 들이지 않고 다만 할아버지의 방문만 열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자연(自然)을 '그냥'에 비유하셨고, 네 집이 자연의 한 자리에 알맞게 자리트는 것을 참 좋은 집이라 하셨기에, 큰 무엇으로 깍거나 다듬으려 하시지 않으셨다. 네 할아버지의 친구분께서 아홉칸의 집을 짓고도 그 집이 한 칸으로 보이고, 계곡 옆에 자리잡았지만 물과 함께 집이 흐른다하여 크게 좋아하시고서는 간간히 놀러 가셔셔 시음(詩吟)을 통해 '지음(知音)'을 가꾸어셧다.



아가야,
자연은 푸르름이며, 초록빛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이 자연을 인위적으로 다듬으려 하며, 이를 녹색성장이라 한다. 티비에선 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녹색'만이 대안인 듯 먼저 해야 한다고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저 들판에 풀 한 포기를 보거라,
저 계곡에 흘러내린 물을 보거라.
제 스스로 피고지고, 제 홀로 바다에 이르는데... 그 어디에 사람이 들어 함부로 하더냐.

녹색은 자연이며, 개발과 성장과는 다른 언어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무수한 언어가 재배열되어 가고 있으며, 그 언어를 음미하기 전에 티비에서 다른 그림을 들려주고, 개발논리자들은 돈을 더 벌자고 소리친다.



아가야, 녹색이 개발의 논리에 구속되어 인위적으로 다듬어지는데, 그것이 '돈이 된다면 좋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우리시대가 네게 남겨 줄 유산이 될까 나는 슬프구나.



4대 강을 정비한다며, 자전거 도로를 낸다며... 모두가 우습구나. 물이 언제 제 아닌 흐른적이 있더냐. 놔두면 바다에 닿고, 그 물을 따라 고기가 거슬러 올로 올터인데... 자전거 도로를 낸다면, 분명 두 바퀴가가 잘 다니게 흙길을 아스팔트로 다지겠지. 그리하여 풀이 자랄 집 마저 빼앗버리고 자전거 도로를 힘겹게 가로질러 옆집 친구네에 가는 지렁이와 개구리를 무참히... 생각하니 슬프지는구나.



어제는 지리산에 갔다왔더랬다. 봄소풍 마냥 올랐지만 내심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행여나, 만분지일이나 더 이상 내 두 다리로 엘레지 꽃을 보며, 지리산바꽃을 보며 오르는 것이 아니어라, 기계바구니에 몸을 싫고 오르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에 급히 올랐더랬다.

이미 산중턱까지 시멘트 포장을 하여 차를 올리고서는,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쇠말뚝을 밖아 기계바구니에 사람을 싫어 천왕봉에 나리려고 하는구나. 이것 또한 녹색 성장으로 이미지화 될까 두렵다. 녹색 성장이 10여 년 전, '세계화' '세계화' 외쳤던 것처럼, 무비판적 맹신적 종교가 될까 걱정스럽구나.



아가에. 네가 커서 네 둘 발로 오르지 아니하고, 기계에 오르는 길을 남겨둘까 나는 진정 두렵구나.
정작 우리가 네게 남겨주는 것은 죽어버린 길 위에 함부로 내달리는 기계 밖에 없는건지....



아가야, 내가 어미의 산 위에서 잠시나마 내가 소리치는 것은 내 미약한 소리가 세상 고샅고샅 까지 쏘아다니면서 잠자는 이에게 메아리 쳤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자연은 아스팔트도 아니고, 동물원도 아닌, 커다란 어머님이시다.



아가야, 행여나 네가 길을 걷을 때, 더 편안하고 더 빨리 가려하지 말고, 물과 같이 흘러라.
행여나 네가 산을 오려려거든, 더 편안하고 더 빨리 오려려 하지 말고 바람처럼 올라야 하느니라.

아가야, 너를 키우고, 너를 보살피고, 너를 감싸주고, 네 쉴 곳을 주는 이는 시멘트가 아닌 흙이며, 자연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를 오래도록 자연에 두고 싶은데... 천박한 자본에 사로잡힌 이들에 의해 내가 똑바로 서지 못하고 길들여질까 두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