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2월22~23일 지리산 (노고단~천왕봉)능선 종주기

by 군자봉 posted Feb 24, 2007 Views 4349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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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 계획은 매달 4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을 지리산종주를 하면서 건강관리가 목표였다.
1월은 개인사정으로 불가했는데 2월 초 동료 이선생이 방학동안 헬스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지리산종주를 자신하길래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구정이후 날짜를 잡으면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지리산대피소 시설예약을 하였다.
겨울철이라 손쉽게 기차와 숙소예약을 할 수 있었다.

나의 평상시 지리산 종주 계획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까지의 종주.
수원에서 23시18분 여수행 기차에 올랐다.
두눈을 감아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등산화를 풀어 최대한 발을 아끼었다.

2월22일 목요일
4시간만에 구례구에 도착하면서 많치않은 등산객들이 저마다 부풀은 베낭을 단단히 조여매고 택시정류장으로 간다.
예약된 단골택시를 타려는 순간 합승을 원하는 일행 2명이 있어 합승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종주가 끝나고 지금까지 한 식구가 되게 되었다.
사전에 고지한대로 식사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구례버스터미널 근처 해장국집에서 따끈따끈한 선지해장국을 먹었다.
택시는 4명을 태우고 빨간 불빛이 어렴풋이 보이는 노고단방향으로 향했다.
드디어 나의 사랑하는 첫 시발점 성삼재에 도착하였고 헤드랜턴을 끼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이르는 임도길을 걸어 올랐다. 04시40분
저아래 구례읍이 질서 정연하게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지리산 모퉁이를 돌고 돌아 1시간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왔다.
노고단운해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대신 하늘엔 수많이 별들이 내노라하고 발광을 하고 있지만 가는 길이 세석이라 열심히 걸었다.
노고단입구에 도착하면서 이곳이 천왕봉까지 이르는 25.5km의 능선 종주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전광판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곳을 머리속에 암기시켰다.
아직도 어둠이 쉬 가지 않은 06시에 좌우에 있는 노고단과 노고단 모조물을 멀리서 보면서 긴 장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해드랜턴을 미착용한 상태에서 첫번째 나의 엉덩방아찧기 시범을 보여준다.
어서 아이젠을 차야하는데 남들은 시쿤둥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의 능선 종주길에서 반야봉은 다른날로 연기시키면서 지리산 능선 종주길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에서 빈 수통에 물을 잔득 불어넣어 준다,.
성수기를 지나고 모두들 움크리고 있는지 나를 비켜가는 사람도 없고 앞지르기도 할 이유가 없듯이 그렇게 지리산 능선 종주기는 시작되고 있다.
임걸령에 도착하면서 남아있는 물병에 물은 잔뜩 넣어준다.
어느덧 우리일행은 합 6명이 된다.
연하천산장에 11시 조금 늦게 도착하여 준비해온 고사리탕을 먹고 힘을 기른다음 천왕봉방향으로 우회전을 한다.
점심먹고 벽소령으로 향한다.
오후 2시 수많은 시간을 벽소명월을 함께 했지만 세석까지 목적지를 정했기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벽소령대피소 맞은편 의자에 벌렁 누워 장단지를 풀어준다.
잠도 쏟아지지만 어서 세석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뿐
앞으로 4시간을 더가야 오늘의 숙박지인 알프스 동네골 세석산장이 보인다.
이번 지리산 능선 종주는 평상 온도보다 5도 높았고 특히 요즈음 포곤한 날씨가 연속되자 종주길은 상태가 아주 나빠서 빙판길에서는 아이젠을 탁부착을 연달아 하니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근육이 뭉치기도 할 것이다.
평상시 2만보이상을 걷는 나는 크게 문제가 될 우려가 없는 것이다.
대피소들은 이용객이 너무도 적어서 그런지 활기가 없어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세석에 이르는 동안 나는 일행들에게서 떨어져 가게 되어 제발 반야낙조가 이대로 연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도 했지만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고개아래로 내리 깐다.
19시20분이 되니 눈앞에 세석대피소가 어설피 보인다.
우리 일행 5명은 먼저 와 라면을 끓이고 밥을 해 놓는다. 우선 산장이용료를 내야겠기에 너무 늦었다는 관리인에게 핀잔을 먹으면서 담요를 인수받는다.
취사장에서 한바탕 모여 소주파티가 벌어지고 저녁향연은 9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지리산을 올때마다 젖갈이 잘 담긴 묵은 김치를 갖고 온다는 기인을 만난다. 정말 기가 막인 여수산 젖갈김치는 태어나서 처음 맛본 최고의 김치였다.
시간이 많이 경과되면서 커피타임도 갖는데 평소에 안먹던 커피한잔 때문에 곤히 잠들어야 할 세석산장에서의 하룻밤이 뜬눈으로 밤을 새게 된다.
어제도 기차에서 어설피게 잠들고 오늘도 이렇게 그 긴밤을 잠도 못이루는 손해보는 둣한 겨울잠이 되고 말았다. 만보계는 삼만보

2월23일 금요일
덕분에 새벽부터 일어나 다른 일행을 위해 햇반을 준비하고 라면과 북어국을 끓여 놓는다.  기상시간이 6시인데 보다 늦게들 일어나 식사를 하라는 채근소리에 미안해 하면서 아침밥을 잘도 먹는다.
아침서리가 잔뜩끼인 세석의 아침은 온통 하얀 철쭉으로 장관을 이룬다.
7시30분 이미 촛대봉엔 둥근 해가 한참 떠올라 있고 천왕봉을 향해 간다.
2시간만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베낭을 취사장 한구석에 일렬로 놓고 수통을 매고 아이젠을 탈부착하면서 천왕봉으로 올랐다.
지리산의 유일한 민둥산 제석봉을 거쳐 10시30분 천왕봉에 올랐다.
노고단방향으로 유심히 보면서 하염없이 달려온 이곳까지의 그 긴 종주길이 꿈만 같았다,  내가 저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정말 시간과 거리를 초월할 수있다는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땀으로 얼룩졌던 등산모는 금새 불에 구운 오징어같이 말라 비틀어지고 등산장갑도 같은 처지이다.  나는 재빨리 아내에게 지금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된다는 천왕봉 비석을 끌어안고 있다고 사실 고백을 하고 강풍과 함께 몰아치는 천왕봉에서의 시간은 나를 더 여기에 붙잡어 놓치를 못한다.
항상 정상에서 오래 있기를 원한 나이지만 20분만에 천왕봉에서 하산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통천문을 거쳐 제석봉 바로 아래 장터목대피소에 내려와 라면으로 점심을 먹는다.
백무동으로 갈까 중산리로 갈까 점을 치다가 중산리가 남향으로 얼음길이 적다고 판단하여 중산리로 갈것을 합의 하였다.
하산 첫 1키로는 아이젠을 부착하는 것이 현명하고 그 이후는 얼음위에 솟구친 바위에 걸치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일행 6명중 3명은 이미 무릎에 통증이 와서 압박붕대로 동여매고 2일간 종주를 하게 된 것이다.
백년만에 찾아온 지구의 온실화가 이곳 지리산 종주길도 예외는 아니였다.
얼음으로 가득찬 종주길이 어느 순간에는 바위길로 변신하다가 또다시 얼음으로 바뀌기를 수없이 하기엔 이번 산행길은 약 20분씩 지연되는 것이다.
3시간 40분 만에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하였고 모두 입구에서 뒤늦게 도착하는 나를 환영해 주는 것이다. 불과 10분 사이에 다들 모였다.
이제 서울가는 길이 남아 있다.
백무동입구엔 서울가는 지리산버스가 있지만 중산리는 매표소에서 약 20분가 더 내려가야 버스터미널이 있고 이곳에서는 한시간마다 있는 버스시간덕분에 기다리는 버스시간속에 하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인연으로 카페동호회가 하나더 추가하게 된다.  모두 진주터미널까지 함께 가서 28인승 우등고속버스를 오후 7시20분 출발차를 타고 남서울터미널에 내리니 23시05분 전철 막판시간덕분에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3호선과 2호선 그리고 1호선으로 부천역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시 지리산으로 가는 그날을 기약하면서. 만보계는 이만보

시간
2월22일> 구례구역(03:22)→구례읍 버스터미널해장국식사(03:40/04:10)→성삼재(04:40)→노고단대피소(05:40)→노고단(06:00)→임걸령(07:00)→노루목(07:50)→(반야봉생략)→삼도봉(08:20)→화개재(08:50)→토끼봉(09:40)→연하천대피소(11:15) 점심식사후 출발 (12:10)→벽소령대피소(14:30/14:50)→선비샘(16:00)→칠선봉(17:50)→세석대피소(19:20)
2월23일> 세석대피소(07:10)→촛대봉(07:30)→장터목대피소(09:30)→제석봉(09:50)→천왕봉(10:30/10:50)→제석봉*(11:30)→장터목대피소(11:50)점심식사후 (12:50)→칼바위(15:50)→중산리 매표소(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