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를 찾아서,

by 슬기난 posted Dec 29, 2006 Views 3991 Replie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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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찾아서

o  산행일 - 2006.12.27   04:15~15:40
o  어디로 -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음정
o  누구랑 - 장똘뱅이, 웅재부, 슬기난

o 시간대별 산행 기록
o 04:15 - 실상사
o 05:25 - 도마마을
o 07:00 - 삼불사
o 07:25 - 문수암
o 08:15 - 상무주암
o 08:35 - 삼정산
o 09:55 - 영원사
o 11:15 - 점심 후 출발
o 12:00 - 도솔암
o 13:05 - 중북부 능선 도솔암 갈림길
o 14:05 - 작전도로 내려가는 갈림길
o 14:45 - 작전도로
o 15:40 - 음정 마을(산행종료)

지리산 주능선 삼각봉에서 실상사까지  함양 마천면과  남원 산내면의
경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며 북쪽으로 흘러내린 중북부능선에 넓은
지리산 속에 또 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삼정산이 우뚝 솟아있다.

천왕봉에서  하봉, 지리주능선과 서북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지리 최고의 전망대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남쪽자락에 위치한 영원사와 정상 바로 아래 상무주암과 문수암,
삼불사가  자리 잡아 산사의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삼정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견성골의 북쪽에 위치한 실상사에서
시작하여 7암자를 순례하는 산행에 두 사람이 기꺼이
동참하기로 하여 심야버스로 실상사에 내리니 미리 와 기다리고
계신 웅재부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매번 지리에 접근하는 시간이 새벽이라 캄캄한 어둠을
조금이나마 줄일 겸 주차장에 자리 펴 버너피우고 준비하는데
실상사 목탁소리가 고요한 새벽공기를 가른다.

졸졸 정답게 흘러가는 임천 물소리 벗 삼아 느긋하게 이른 아침을
마치고 일어나서도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해탈교
건너 보초를 서고 있는 석장승에게 목례를 하고 조용히 지나친다.

어둠속에 잠긴 실상사 앞을 지나 임도를 버리고 좌측 샛길로
들어설 때쯤 은은한 종소리가 밤길 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파고들고
한발 한발 무심히 오르막을 오른다.

이마에 땀이 맺힐 때쯤 다시 임도를 만나 잠시 진행하니 보이지도
않는데 약수암 백구가 먼저 알아차리고 인사를 한다.  
백구 소리에 부지런한 스님이 일어나셨겠지만 캄캄한 어둠속에
불쑥 들어서기도 실례라 다음을 기약하고 등산로를 따른다.

저 아래로 도마마을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참을 내리막
내려서니 역시 먼저 반기는 조그마한 개소리에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견성골
바로 옆의 칠선, 백무동,광대골, 뱀사골보다 규모도 작고
이름난 폭포나 경관이 있는것도 아닌데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미혹된 생각과 괴로움을 버리고 타고난
본래의 천성을 깨우치라는 뜻일까?

見性成佛,
불가에서는 타고난 본연의 천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는데 지난날 이 골짝에 많은 불자들이 몰려
수행을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으리라 짐작한다.

다리를 건너 좋은 길을 따르지 않고  견성골 우측으로  어두컴컴한
계곡을 잠시 오르다 계곡을 건너 계곡가의 작은 밭으로 올라서
제대로 된 길을 따른다.  

한동안 전주를 따라 오르다 문수암,삼불사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 후 오른쪽으로 제법 경사진 길을 땀을 흘리며 오르니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저만큼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조계종 직할 사찰인 삼불사이다. 비구니 스님이 수행중이신지
조용하기만 하고 잠시 둘러보고 문수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문수암에서 내려다 본 견성골

작은 지능선을 돌아 오르니 축대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문수암이 나타난다. 신발은 놓여 있지만 기척이 없어 조용히
배낭 내리고 지나온 계곡을 내려다본다.
천인굴 석간수는 얼어붙었고 절묘한 곳에 자리 잡은 해우소가
눈에 들어온다.


문수암 해우소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길을 이어 능선을 넘어서니 일찍이
보조국사(지눌),진각국사(혜심)가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대혼자(大昏子) 무기스님이 머물러 많은 일화가 전해지는
상무주암이 나타난다.

“禪은 고요한데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해와 달이 고른 곳에도 있지 않고 또한 생각을
깊이 갖고 분별을 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보조국사(지눌)가 상무주암에서 오래 동안 수도하였는데
大慧의 어록에서 위와 같은 문장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어름에 본래 머물 데는 없었는데
그 누가 이 집을 세웠네
지금은 오직 무기가 있어서
가기도 머물기도 거리낌이 없어라.“

장삼 하나로 30년을 버티며 지리산 일흔이 넘는 절을
찾아다니며 하루에 서너 말의 밥을 먹어 치우고 한자리에
앉으면 열흘이 넘어야 일어나며 한 절에서 머물 때마다
선시 한 수씩을 남긴 대혼자 무기스님이 남긴 선시이다.





지리 주능에 걸린 구름

아침 해가 올라 올 시간이지만 지리 상봉에 걸린 심술궂은 구름이
떡 버티고 훼방을 놓는 바람에 미련을 털고 발걸음을 옮긴다.
삼각고지까지 올랐다가 중북부 능선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지만
일정이 어찌 될지 몰라 일단 삼정산으로 올라 조망을 하고
가기로 하고 오른다.


삼정산

볼 끝에 닿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고 사방을 둘러보며
지리 계곡과 능선을 헤아려 본다.
잠시 휴식 겸 간식을 들며 지리 이야기로 꽃피우다가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데 발자국 흔적이 갑자기 없어지며 작은 바위지대를 지나
나타나는 벼랑을 우회하여 상무주암에서 돌아 나오는 길을 만나
눈이 쌓여 미끄러운 능선을 잠시 따른다.

영원사 이정표 있는 갈림길에서 능선을 버리고 내리막
내려서는데 산죽비트 안내판이 이곳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영원사

영원스님이 입산한지 얼마 안 돼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수행하였으나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옮기려고
내려오다가 한 노인이 낚싯대를 드리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고
있기에 이상해서 물어보니

“여기서 8년을 낚시질 했는데 2년만 더 있으면 큰 고기가 낚일 것이다“
하고는 표연히 사라져 놀란 영원스님이 다시 토굴로 돌아가 정진한 끝에
득도하여 영원사를 세우게 되었다 한다.

지난날 대가람이었던 영원사가 공비토벌 때 전소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다가 1973년 김대일 스님이 이곳에 공부하러 왔다가
지금의 사찰을 복구하였다.

유서 깊은 사찰임에도 재난 탓인지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과
염송설화30권을 쓴 각운대사의 필단사리3층 석탑, 조실스님들의
부도만이 남아있다.


아침을 일찍 먹은지라 찬바람을 피해 영원사 입구 다리 밑에
자리를 펴고 오붓한 점심시간을 가진다.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고 페타이어 박힌 길옆을 내려서
계곡을 건너 잠시 오르니 산죽을 베어내 널찍한 산길을
오르는데 일행 한사람이 컨디션이 난조이다.

며칠 전 지리종주를 한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무리를 한 것 같아
쉬엄쉬엄 도솔암까지 올라 결정을 하기로 한다.


도솔암 가는 길


도솔암

운무가 감싸기 시작한 적막이 가득한 도솔암에는 가지런히
신발이 두 켤레 놓여있고 수행에 방해가 될세라 조용히 마당을
가로질러 물병에 물을 담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소담스럽다.




도솔암에서

도솔암 아래 삼거리에서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며 혼자
하산하겠다는 일행과 잠시 의논 끝에 음정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능선을 향해 오르는데 초입 리본 외에는 흔적도 없어져
그냥 발 닿는 대로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많이 녹기는 하였지만 길도 없는 너덜지대를 빠져가며
오르려니 발목에 들어오는 눈 때문에 스패츠를 할까 하였지만
그렇게 춥지 않고 귀찮음 때문에 그냥 오른다.

잡목이 없는 곳으로 오르다보니 작은 짐승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행태를 보인다.
발자국을 남기며 간간히 배설물을 흘리고 다닌 것 외에는,,,^^*

눈보라 구름에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워 어디까지 올라야
능선에 도착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고 한동안 진을 빼며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지능을 만난다.

잠시 길이 북쪽으로 크게 돌아나가 잘못 가는 것이 아닌가하며
따라가니 도솔암으로 바로 치고 내려가는 능선을 막아놓은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고 발자국이 로프를 넘어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세찬 바람과 간간히 날리는 눈보라치는 능선에 올라서서
삼각봉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쉬이 나타날 줄 알았던
음정 갈림길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세찬 눈보라에 삽시간에 나뭇가지에 설화가 그려지고
산죽을 헤치며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고 진이 빠질 때 쯤
나타나는 갈림길 이정표가 왜  이리 반가운지,,
눈 속에 배낭 내리고 잠시 간식을 들며 어디로 진행 할지
의논 끝에 시간은 넉넉하지만 그냥 내려서기로 한다.

도솔암에서 헤어진 일행이 잘 내려갔는지 전화를 하니
작전도로 바리케이트 못 미친 지점이라며 실상사가서
차량 회수해 올 테니 예정대로 좀 더 진행하다가
내려오라고 부추긴다. ^^*

얼어붙은 급경사 내리막 안전하게 아이젠 착용하고 내려서고
작전도로 만나 내려가는데 차를 세우며 공단 직원이
미끄러운 내리막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한다.

얼마전에 “수구리”(???) 한 번 하고 산행 마감했다는
님들의 일화를 떠올리며 웃음이 나온다.


벽소령 가는 길

음정마을까지 마중 나온 님과 다시 해후하고 내려오는데
버스시간이 멀어 걸어 내려오는 부산. 광양에서 온 두 산객을
태우고 함양으로 나오는데 오도재를 넘다보니 전에 못 보던
지리산 제일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