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그 젊음으로 종주하다.

by 주례군 posted Nov 09, 2006 Views 4112 Replie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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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 오후 4시 종주를 마치고 귀가를 했습니다.
종주를 떠나기 전 오프넷에서 정보를 얻어 무사히 종주를 마치고 와
다른 산악인 선배님들께 재롱을 부릴 생각으로 글을 써 봅니다.
11/7~9

첫째날: 화엄사-노고단-반야봉-연하천 산장
둘째날: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
셋째날:장터목-천왕봉-중산리


어느날 우연히 잘 아는 분으로부터 지리산종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 친구로부터 한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우리 지리산 종주갈까?"
"콜.."

이렇게 시작된 지리산 종주.
친구와 일정을 잡아 보니 둘다 가능한 날짜가 7일부터9일 까지
였습니다. 문자가 왔었던 날이 그전주 2일정도 되니 일주일도 채
준비하지 않은 채 떠나게 되었습니다.

둘다 초등학교 소풍을 제외하곤 산행은 처음이었고 등산장비도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등산장비는 등산장갑하나ㅡ 그게
전부 였습니다. 친구는 아버지 등산 복에 등산장갑, 그리고 무려
15미리 작았던 등산화.ㅡ (이것이 후에 큰 일을 벌일 줄이야.)
친구와 저는 평소 여행을 할 때도 우리는 돈과 시간을 체력으로 대충
버틴다는 것이 평소 지론입니다. 산을 가본 경험은 없지만 자전거를
좋아하고 즐기는 지라 그간 제주도 자전거 일주, 전라도 자전거 일주
부산 일주등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산행기에서 봤던 베낭무게의 승부, 체력의 안배 등은 사실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어느정도 자신이 있던것도 사실 이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새벽에 출발하는 차가 없던 관계로 그 전날 오후 여섯시에 구례행 시외버스를 타고 아홉시가 조금넘어 구례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아침까지도 새벽에 학원을 가고 하루를 일과를 다 보내고 부랴부랴 왔던 터이라 매우 피곤해, 타지이지만 매우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 7시가 다되어 화엄사 입구에서 출 발 할 수 있었습니다.


물통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화엄사입구에 가서 알았습니다. 물통을 사러 내려갈까 하다가 친구와 결국 물없이 일단 가보자 하고 결론을 내리고는 화엄사 입구의 조그만 샘에서 물을 잔뜩 뱃속에 채워놓고 출발 했습니다. 화엄사를 오를 때쯤 올해 첫눈을 맞으며 부지런히 올랐습니다. 물과 함께 빠드린 것이 있다면 지도. 지도도 구하지 못해 결국 표지판을 보고 오르자 하고 또 결론을 내리고 올랐습니다. 세시간 반정도 오르니 노고단이 보이더군요 지리산 전체 종주 구간중 노고단오르는 마지막 급경사 삼킬로 정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노고단에 오르니 모든 세상이 이미 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눈이 오기전 이곳은 무슨 색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다음에 이쁜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함께 와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드디어 물을 사고 (물은 500ml작은 물 밖에
팔지 않더군요.) 산장에서 일하시는 분께
"여기서 연하천은 먼 가요?"
"산에는 산에 오를 수 있는 복장이 있습니다. 그런 복장으로는 올라
가지 못합니다"
하는 질책아닌 질책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럴 것도 그런것이 제가 입은 복장은 후드잠바 면바지 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말씀에 더욱
자극을 받고 속으로 꼭 종주하고 만다는 불꽃을 태우며 노고단 대피소를 떠났습니다.


연하천으로 가던 중 친구의 너무나 작은 등산화가 말썽을 피웠습니다
친구의 뒷꿈치가 까지고 앞꿈치 발톱을 압박 했습니다. 결국 친구 뒷꿈치에는 오십원짜리 만하게 발이 까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르막을 오르면 오히려 아프지 않은데 내리막을 가는 것을 더 힘들어 했습니다. 그렇게 고군분투 하며 가던중 반야봉 입구에 다달았습니다.
친구와 상의를 하던중 결국 올라보고 가기로 하고 반야봉으로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무지 춥더군요..ㅡㅡ;;


반야봉을 뒤로 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해 4시30분쯤 연하천 산장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예약을 하지 않아 비박을 걱정 하던 중 다행히 남은 자리를 배정받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연하천 산장은 취사장이 너무나 추워서 운동화에 덕지덕지 붙어 얼어있던 눈덩이 들이
더욱 저의 발을 얼려왔고 걸을 때 몰랐던 발 시려움이....운동화다 보니 방수가 전혀 안되었고 운동화는 이미 흠뻑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밥을 해먹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뒤에 알았지만 친구는 뒤꿈치가 침낭에 스칠 때 마다 잠에서 깻다고 하던군요..


오늘도 역시 늦잠을 자서 오전 8시 30분이 넘어서 연하천을 출발 했습니다. 산행을 할 수록 산행에 페이스가 오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벽소령으로 가며 친구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짧디 짧은 23년 인생을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벽소령에 도착하니 너무나 좋은
시설에 어제 좀 무리해서 벽소령에서 잘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벽소령에서 물을 보충하려 했으나 수도꼭지가 얼어 500ml물통을 하나 더 사고 세석으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중간중간 로프도 타고 무지많은 계단도 오르고 산행 코스가 참으로 재밌었습니다. 산행 선배님께서 중간에 배낭을 다 풀고 주머니에서 삶은 계란 두개도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다음에 좀더 고수가 되어 오르면 초보 산행님들께 꼭 되 갚아 드리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세석에 닿아 또 물을 보충하고 화장실도 이용한 다음 다시 장터목으로 올랐습니다.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구름속에 파묻혀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 했습니다. 역시 이쁜여자친구와 함께라면... 생각은 또 들더군요. 한참 구름속에서 꿈속에서 정신 없게 다다르다 보니 장터목이 금방 나오더군요 장터목은 구름속이 아닌 구름위에 떠 있었습니다. 구름의 머리채를 사진으로 찍어오는 것도 낭만의 하나 였습니다. 장터목도 역시 예약을 하지 않아 뒤늦게 방 배정을 받고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장터목은 더욱 깨끗하고 넓어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장터목의 화장실에 들렀을 때 재미있는 문구가 참 많았습니다.

"장터목을 휘감은 구름이 놀아주지 않아...어쩌고..저쩌고."
운치있는 시 밑에 쓰였던 말은
"x이나 누라...."
씌익 웃고 옆에 보니
"우리나라 화장실중 가장 경치 좋은 곳"
또 그옆의 문구는
"세석에서 만난 아가씨와 사진속에서 함께 하지 못해 아쉽구나"
등 참 재미있는 낙서가 많더군요.
그렇게 편안한 장터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었습니다.

"참! 내일은 일출을 보기 힘들답니다 전국적으로 눈과 비가 온답니다"
하는 장터목 지기님의 말을 들으며....

아침 4시반에 기상을 해서 얼른 라면 두개를 끓여 먹었습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라면이여...허허."
그말을 들으니 참 라면을 많이 먹었구나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눈과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다 챙기고 출발을 하니 5시30분 이었습니다.
친구의 발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100원짜리 동전만한 상처가 뒤꿈치에 났습니다. 하지만 일출을 꼭 보아야 이번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발길을 재촉 했습니다. 일출 시간이던 6시50분의 정확히 1분전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모든 조건을 맞추었으니 이제 일출은 하늘에 맡긴다는 심정으로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천왕에 올라 해를 부르나니,
구름떼가 그 주인인 양 해를 끼고 도는 구나.
어디 색시 얼굴 한번만 보여달라 때를 써보니
새침을 떨며 놀리는 구나.
찬 바람에 간절함을 실어 구름뒤로 보내보니,
그제서야 구름을 태우는 구나.

정말 어렵서리 일출을 보곤 그 동안 종주를 했던 그 코스가 눈에 그려 졌습니다. 힘들지만 해냈다는 자신감이 온몸을 감 싸더군요.


그렇게 하산길에 올라 중산리로 내려올 떄 쯤 길을 잘 못 들어 자연사 생태지 인가 하는 곳으로 돌아 왔습니다. 3km정도 돌아 내려왔더군요. 포장된 도로가 꼬불꼬불 끝도 없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미 뒷꿈치의 고통으로 양손에 등산화를 들고 맨발로 터벅터벅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산길이라 방심했던 저희에게 산은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드디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반가운 분을 뵙습니다. 반야봉을 가는 길에서 뵙고 연하천에서 함께 묵고 장터목에서 역시 하루를 함께 묵었습니다. 상당히 산행
고수로 보였던 분인데 그분이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며 맞이 해 주셨습니다. 차 시간이 좀 남았던 터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과 도토리묵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그 많은 막걸리 보다 오늘 먹은 세잔의 막걸리가 왜이리도 달콤 하던지... 그 고수분은 김해에서 오신 분인데 지리산에서는 유명한 분이라 하십니다. 김해 산신령이라 불리신다는데
지리산 종주만 스무회 넘께 하신 분이 셨습니다.

차시간이 다되어 인사를 드리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지리산을 떠나는 아쉬움에 취한건지
장터목에서 마셨던 구름이 이제야 취기가 오르는지
곤히 잠이 들어 부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부산 주례의 집에 있지만
밤하늘을 보면 왠지 지리산의 별이 따라왔을 것만 같습니다.



긴 산행기 읽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지리산에는 나무가 있고 눈이 있고 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있었습니다.
산에서 배운 많은 것 중에 고마운 사람의 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프넷의 많은 산행 선배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