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5.01.12 09:26

지리산 산행기

조회 수 5145 댓글 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지리산 산행기


<12월 24일>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중의 하나로 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졌는데 지리산 연봉中 최고 높은 봉우리가 해발 1915m 천왕봉이다.
지난 8월초 여름의 폭우 속에서 종주를 한 뒤 다시 찾은 2005년 올해의 마지막 산행이 될 천왕봉 등정은 산행코스를 한신계곡에서 출발하여 세석평전을 경유하여 장터목산장에서 일박을 하고는 천왕봉-중봉-치밭목산장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산행은 Paran이라는 포털 사이트의 ‘산사랑’이라는 등산동호회와 함께 가는 것인데 세속(世俗)의 먼지를 툭툭 털고 산과 자신에 침잠(沈潛)하면서 홀로이 산길을 걷는 것이 등산의 참 맛이라고는 하지만 여럿이서 담소하며 팀웍를 다지면서 산행하는 것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안전한 산행과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12월 24일 저녁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인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매표소에서 일행들을 만나 남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함께 가는 일행 중에는 처음 대하는 사람도 있고 초면이 아니라 하여도 만난 지 한두 번 정도이어서 아직 얼굴을 채 익히기 전이나 인터넷과 산이라는 매개체가 잘 어우러져서인지 그리 어색치는 않았고 스스럼없는 사이인 것처럼 행세하여도 서로간 흠이 되질 않았다.









<12월 25일>
아침밥을 남원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터미널주변 식당답게 그리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순두부백반을 먹고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이번 산행의 초입인 백무동매표소로 왔다.

한신계곡은 중국의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한신(韓信)장군이 피신해 온 곳이라 그리 불렀다는 설이 있고 항상 추운 계곡이어서 한신(寒新)계곡이라 불린다는 설이 있다.
10년 전쯤 지금은 거창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우 문상이와 그 아우의 선배인 한규씨 그리고 조카 영돈이,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는 어엿이 대학생이 되는 딸 영지랑 함께 치밭목산장에서 1박을 하고는 천왕봉을 등정하였다가 체력적인 문제가 생겨 지리산을 종주 산행하려던 계획을 중도포기하고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방향으로 하산했었는데 당시 하산할 때 바위비탈이 너무 가팔라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곳을 한신계곡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도 지리산 여러 코스 중 한신계곡은 힘든 코스로 기억하고 있다.

백무동 계곡을 들어서니 눈이 꽤나 쌓여있어 어쩔 줄을 몰라 펄쩍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금년 들어 눈 구경이 처음이고 천생(天生)이 눈을 좋아하는데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눈을 여기 지리산에서 만나니 무슨 횡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등산로는 잘 닦여있고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지만 눈이 온 곳 딛는 돌마다 녹다 얼어붙어 내딛는 발걸음마다 미끄러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는 낭패를 보기 십상인데 그렇다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채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리산을 푹 감싸 안은 백설의 세계를 감상하는 즐거움이란  이렇게 미끄러움을 조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제하고도 이문이 남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석산장 설경




이 계곡의 정상인 세석평전이 다가오는 모양인지 산이 점점 더 가팔라지고 헉헉하니 숨이 턱에 와 닿는다.
산행을 할 때 입으로 하지 말고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요령에 철저 하느라 걸음을 쉬엄쉬엄 조절해가며 코로 호흡하는데도 워낙 찬 공기라 그런지 힘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호흡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이렇게 가다 문득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그렇다.

이렇게 등산하다 심장마비로 쓰러져 아주 가버린다고 해서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행여나 그렇게 훌쩍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 생각을 해보나  딱히 “이것이다”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대로 훌쩍 그냥 가버려도 좀 아쉽기야 하겠지만 그리 한스러울 것 같진 않았다.

지금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 닥쳐오고 짧은 시간이나마 누군가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여 마지막 인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대상은 누가 될 것인가?
오직 한사람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이며, 두 사람에게 전화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 둘은 또한 누가 될까?
절체절명의 그 시간에 세 명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단념하고는 그 한명 혹은 두 명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사념(思念)을 해 보면서 터벅터벅 마지막 남은 산비탈 길을 걸어 올라갔다.

세석평전을 10여분 남짓  남기고는 무진 힘이 들었다.
이제껏 지리산을 타면서 이렇게 힘든 것이 처음인 듯싶다.
큰 산에 오면서 보다 세밀하게 컨디션조절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는 너무 쉽게 출발했나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온 인생살이가 언제 그리도 철저히 준비를 해오면 살아 왔던고!  어휴~~~





▲눈 쌓인 세석산장




세석산장에 도착하여 노고단 쪽에서 산을 타고 온 산사랑 맴버인 조광희, 하정욱군과 이번 산행에 조우하였다는 윤현숙양과 만나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오늘은 장터목에 가서 숙박을 할 것이어서 시간의 여유가 충분히 있는지라 다소 춥기는 하나 나름대로 방비를 하고는 세석산장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후 3시 30분 경이 되어서야 출발하였다.






▲세석산장에서 일행들과 함께


대개의 경우 세석에서 천왕봉방향으로 갈 때면 주로 세석에서 점심식사를 한다던가 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가는데 그럼에도 번번이 촛대봉이 왜 그리도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쉬엄쉬엄 촛대봉을 올라가려는데 아까 한신계곡에서 세석을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이 다시 온 몸에 몰려오며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확실히 이번 산행은 무리가 따른다.
산행코스를 무리하게 잡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중도포기 했을 것이다.

10여kg 가까운 무거운 배낭과 이미 정상을 훌쩍 넘은 비만인 나의 몸뚱이를 부둥켜 앉고 쉬엄쉬엄 세석에서 천왕봉으로 옮겨가는데 주변이 온통 백설에 쌓여 지리산 고봉(高峰)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하는데 그것이 육신의 힘든 것과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비몽사몽  꿈길과 같았다.

연하봉에 올라가는 즈음에 눈 앞 천왕봉 우측 상단으로 멀건 달이 초연히 떠있는데 하세(下世)를 내려다보는 품이 도도하기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 커다란 원이 휘영청 걸려 주변의 천왕봉, 제석봉 설경과 어울려 묘한 선경(仙境)을 연출하는데 음력으로 18일 조고(祖考) 제사일을 꼽아보며 오늘이 보름이 거의 다 되었는가 싶다.





▲산행중 만난 지리산 설경




그런데 정작 놀랍기는 연하봉 정상에 올라왔을 때이다.
힘들게 걸어온 방향을 돌아보니 반야봉을 배경으로 지리산 연봉의 주위로 파도치듯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듯 지리산보다 수천만 배 면적이 더 큰 구름들이 몰려 그 속에서  일몰(日沒)이 펼쳐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눈 쌓인 하얀 지리산 연봉의 굽이굽이 머리위로 수천 개의 지리산 연봉들을 또다시 펼쳐 놓은 듯 한데 그 수많은 지리산 연봉속으로 붉은 해가 떨어지면서 천지를 붉그스럼하게 물들이는 광경은 부처가 그 아름다운 몸을 현세에 나투시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등산의 힘듦을 잊어버리고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생살이의 고달픔도 잊어버리고 망연자실(茫然自失) 뭐라 표현할 길 없이 그저 넋을 잃고 말았다.  

이 거대한 자연의 위대한 조화와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것인가? '나로다' 하는 아집과 오만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내 오늘 이후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소한 일로 남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슴에 차곡차곡 채워놓은 타인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다 잊어버리리라. 다 용서하리라.”는 다짐을 하며 반야일몰(般若日沒)이 왜 지리산십경(智異山十景)의 하나가 되어 뭇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지를 알겠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배낭을 풀고 일행들과 저녁을 해결하고는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꿈결에 반야봉 아름다운 일몰(日沒)이 다시 펼쳐지고 내 몸이 두둥실 떠올라 그 심연(深淵)으로 들어가며 달콤한 잠으로 빠져 들어갔다.





▲선경을 연출하는 지리산 설경



<12월 26일>
다함없는 시간의 흐름과 끝이 없을 것 같은 공간으로서의 우주(宇宙)는 크고 넓음을 측량할 길이 없이 광활하기만 하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유추해 보는 크기로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하고 현대물리학에서는 우주전체의 구조를 150억 광년의 거리로 판단하고 있다.
우주의 크기에 비해서 사람이 존재는 너무나 미소하기만 한데 정작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의 작음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름 하루살이가 눈 내리는 겨울을 알 길 없는 무지(無知)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먼지 하나에도 온 우주를 머금고 있다고 믿는 우활(迂闊)한 생각에서인가?

다음날 나는 일행과 함께 이른 아침밥을 먹고는 서둘러 천왕봉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한의 겨울지리산에서 새벽에 일어나 길을 나서는 것이 여간한 결심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을 산사람들은 알리라. 하지만 이런 우리의 일상을 벗어난 도전을 저 광활한 우주는 우리를 가소로이 여기며 하나의 먼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리라.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보잘것없고 덧없는 것이라 하여도 아파트 소파에 편안히 앉아 텔레비전 리모컨을 부여잡고 졸고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이제 불혹(不惑)의 나이를 훌쩍 넘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눈앞에 바라보고 있는데 내 인생은 지금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며 이 겨울에 지리산에는 어떤 인연을 따라 와 있는가?
식탐(食貪)과 게으름으로 피둥피둥 살이 찐 체중의 감량을 위하여 여기 온 것인가?
겨울지리산등산이라는 오만함을 취하러 온 것인가? 설산(雪山)을 찾아 도를 구하러 가는 옛사람의 신념처럼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눈 쌓인 지리산을 다시는 내려가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마음이던가?

제석봉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거나 가파른 길이 아닌데다 어제 저녁 장터목산장에서 숙박하여 피로가 상당히 풀린 상태인데도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의 매서운 추위와 강풍으로 인하여 출발 10분 후부터 벌써 한 숨 한 숨 호흡조차 곤란하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것이 너무나 힘겨울 정도의 그런 삭막한 분위기였다.
사위(四圍)는 그저께 내린 눈으로 제석봉을 덮고 지리산을 덮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으니 그 때 나의 기분이 산소통을 짊어지고 네팔의 설산(雪山)을 올라가는 그런 분위기였다고 말하여도 그리 심한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오르는 제석봉 길에 드문드문 고사목이 보이면서 주변은 여명이 밝아오면서 아래로 연하봉과 연봉 저 멀리 반야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벽 찬 공기를 막기 위해서 옷을 두둑이 입었고 계속 오르막길을 걷느라 그렇게 추운 줄은 모르겠으나 워낙 찬바람이 세게 부는지라 두건을 푹 덮어쓰고도 귀가 시럽고 추운데다가 나의 육중한 몸으로도 바람에 휘청거릴 정도로 차운 바람이 세차기만 하다.


▲제석봉 오르는 길 중간에

이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설치는 이유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함인데 어제 저녁부터 맑지 않은 천기(天氣)인지라 그리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사실 밤중에 별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날씨가 좋아도 아침 해가 솟을 무렵이면 동녘으로 구름이 깔려있어 번번이 천왕봉 일출(日出)을 보지 못하곤 하였는데 오늘 같은 날씨에야 기대하는 것이 잘못이리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제석봉 오르는 길이 또 어제와 같이 숨을 쉬기가 어렵고
한걸음 한걸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다. 대개 전날의 등산이 힘들어도 하루 자고나면 가뿐하니 오전 내내 걸을만한데 확실히 이번 산행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듯싶다.
천왕봉일출은 삼대(三代)에 덕을 쌓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만큼 천왕봉일출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1년을 통틀어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20여일 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가끔 지리산을 찾으면서 천왕봉일출을 보리라 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지난 번 여러 차례 천왕봉을 찾아 일출을 보기를 희망하였지만 이제껏 한 번도 보지를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부(祖父)와 선친대(先親代)에서는 덕을 쌓았으나 내 대(代)에 이르러 덕을 쌓지 못하여 천왕봉일출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한탄하고는 하였다.
그런데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을 오르기 전 능선에 서니 동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 일출이 시작하려는 것이 아닌가. 뜻밖에도 천공(天空)이 맑기만 하여 일출을 대하기 적격의 아침이 아닐 수 없다.
내 대에서는 덕을 쌓지 못하여 천왕봉 일출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천왕봉일출의 장엄함을 바라보며 선대(先代)에 덕을 쌓음이 커서 이렇게 부덕(不德)한 후손이 천왕봉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황감(惶感)하기가 이를 데 없다.







▲천왕봉 일출



바위틈바구니로  겨우 한사람이 빠져 올라갈 정도로 나있는 통로를 거쳐 통천문(通天門)을 빠져나와 드디어 천왕봉정상에 서다. 천왕봉정상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등산객들이 구름처럼 많이 몰려있다 하여도 어쨌든 기념촬영은 하고 가야할 것이니 일행들은 태극기를 들고 펄럭이며 ‘이렇게 찍으면 k2봉인줄 알겠다!’ 하면서 연신 태극기를 휘날리며 좋아들 하는데 저마다 말들은 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힘이 들었는가 보다.
천왕봉을 내려와 실질적인 지리산의 제2봉이라 하는 중봉에서도 천왕봉의 설경(雪景)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촬영에 공을 들였다.






▲치밭목산장에서




이제는 하산을 할 일만 남았다.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여러 법정등산로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치밭목산장을 거쳐 대원사코스를 택하였는데 이 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서 소요시간이 긴 것을 제외하면 등산로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 급직하(急直下)하는 중산리나 백무동에 비해서 한층 운치가 있어 좋다.
그래서 지리산의 수려한 여러 계곡코스들 중에서도 의신마을에서 출발하는 대성계곡과 함께 대원사코스를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이다.

치밭목산장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치밭목 산장지기 민병태씨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기에 '국립공원 안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투로 내가 살짝 핀잔을 줬더니 ‘담배까지 피우지 않으면 여기서 속 터져 죽는다.’며 엄살을 하더니 그러고는 ‘언제 나에게 담배 한 갑 사줬느냐’며 퉁명스럽게 받는 것이 영판 경상도 사나이다.
치밭목산장에서 우리는 즐겁게 점심을 하면서 담소를 하고 사진도 찍고 하며 시간을 보내다 하산을 시작하며 짧은 지리산의 산행을 마감하였다.






▲눈 쌓인 치밭목산장




이번 지리산 산행의 일행으로는 처음 서울에서 함께 출발한 사람으로 변관수,김남식,김휘순,오선숙,정선이,박인석 그리고 나와 함께 이렇게 일곱 사람이고 백무동에서 만나 합류한 대구사람 김동일과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종주하면서 세석산장에서 합류한 조광희, 하정욱을 합쳐 전체 열 명이다.
그리고 윤현숙, 이은희는 조광희, 하정욱과 함께 화엄사에서 만나 세석까지 산행을 함께 하여 왔고 세석산장에서는 합류한 우리 일행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내내 같은 코스를 탔으며 또한 산사랑에도 가입한다 하였으니 같은 일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체 일행 중에서 특히 변관수씨는 본관이 합천초계인 초계정씨(草溪鄭氏)이고, 일행중 여성들과 나같은 중년의 아저씨들을 배려하느라 묵묵히 무거운 배낭을 져준 조광희,김남식,하정욱군의 배려에 고마왔고 자기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산행 길에서 일행의 사진을 찍느라 박인석씨가 특별히 수고했다 하겠다.

이번의 산행 길은 참으로 즐거웠다. 이번 산행에 출발하기 전 요즘 내 어려운 형편에도 신발하나는 좋은 것을 사야 한다는 고집으로 무리해서 새로 장만한 ‘잠발란’ 등산화까지 신고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을 밟느라 발이 호사를 했다.
거기에다  반야봉일몰, 천왕봉일출을 보느라 눈이 호사를 했으니 이제는 죽어 눈을 감아도 내 인생의 짧은 자취에 별달리 남길만한 것은 없으나 또한 그리 손해를 본 것도 아니지 싶다.

서기 2005년 12월 26~27일 양일간의 지리산 산행의 장쾌(壯快)한 감흥을 길이 간직하고자 이렇게 기록에 남긴다.

<끝>







  • ?
    허허바다 2005.01.12 11:00
    중후한 멋이 넘치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지리의 숨결이 가까이 다가왔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
    신후 2005.01.12 14:26
    "산행기" 지천명 넘기신 분이 쓰신것처럼
    느껴집니다.노고 많으셨네요.
    사진 안 나오는데 제pc에서만 안 나오는건지요?
  • ?
    아낙네 2005.01.12 15:40
    겨울산행이라 힘든 부분도 많으셨을텐데
    오르신 길 차분하게 다가옵니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 엄습해 올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그림은 점점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지요
    흰 눈이 보고 싶은 것인지.. 지리가 보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는 마음 지리가 교통정리 해줄테지요 .. ^^*
  • ?
    슬기난 2005.01.12 19:09
    본문에 2005년 마지막이라 하여 신년초에 무슨일인가 하여 궁금했었는데 오타여서 안심이!!!
    "천지간의 물건에는 각각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이라도 가져서는 아니 되지만 오직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닿으면 빛이 되네, 가져도 금하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의 끝없는 갈무리로다."-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서
    춘하추동 다양하고 장엄한 지리의 어우러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 밑지는것 같습니다. ㅎㅎㅎ

  • ?
    적벽부 2005.01.12 22:12
    글을 올릴 때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는지
    오타를 수정을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

    사진이 안 보인다 하길래 내 컴에서만 보이는가 싶어 사무실에서 올린 글을 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 잘 보이는데 어떤 영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pc를 기본만 만지는 수준이라서......

    슬기난님 허허바다님 그리고 여러분들과 술한잔 하면서 청풍명월을 노래한다면 금생에서의 보너스이겠습니다. ^^
  • ?
    별유천지 2005.01.15 19:31
    不惑의 끝자락 이시나
    마치 耳順의 너그러움을 보는 듯 합니다
    같은 지리를 보고 , 같은 느낌을 가지나
    표현은 저의 것과 달리 가슴에 저며 오네요
    얄팍한 지리의 겉모습만 보고
    모든것을 뇌까린 지난날이 부끄럽네요
    감히 쓰고있는 닉네임까지도..

  • ?
    정진도 2005.01.20 23:48
    사진은 보이지 않으나 청산유수 같은 글쏨씨며 무정설법 같기도한
    내적인 성찰하며 또 옛 두류록에나 나옴직한 유려한 필체로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언제 산에서 한번 뵙게 되길 기대합니다.
  • ?
    김현거사 2005.01.21 11:24
    가만있자!
    적벽부님이 추연선생 손자분되시는 변호사님 아니신가요?
    추연선생님 천왕봉 등반기 감명깊게 읽고 책도 구해서 다른 글들도 읽었는데,그 할아버지의 손자가 쓴 천왕봉 등반기라!
    감회 새롭군요.
  • ?
    적벽부 2005.01.21 16:32
    김현거사님 반갑습니다.
    권문상 변호사도 여기 홈페이지에 자주 놀러오는 지리산 메니아이지요.
    저는 권변의 형됩니다. ^^

    ..........
    10년 전쯤 지금은 거창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우 문상이와 ..... 본 기행문중에서
  • ?
    진로 2005.01.24 13:34
    무거운 듯하면서 강직한 어조의 산행기라 숙연하게 읽어
    내려왔습니다. 비록 사진이 안 보여도 느끼는 마음이야 어찌 다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좋은 산행하시어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오 해 봉 2005.02.02 22:19
    권문상 변호사님이 책을보내 주셔서 감명깊게 잘읽었답니다,
    祖孫의 천왕봉 등정기를 두번째 읽었군요,
    사진이 보였드라면 하는아쉬움이 듭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지리산 산행기, 느낌글, 답사글을 올려주세요. 운영자 2002.05.22 10004
1161 막내와 2박3일 13 오 해 봉 2002.10.27 9347
1160 지리산을 다녀와서...(초행자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2 소원성취 2002.07.13 7455
1159 태극종주 41 file 오 해 봉 2006.10.18 7450
1158 가동윤과 김민철 정상에오르다~~!!!! 6 가동윤 2006.08.24 6499
1157 8월 9일, 10일 1박 2일 백무동에서 뱀사골까지.... 2 깊은산 2001.10.01 6270
1156 화엄사 - 대원사 왕복종주. 26 file 오 해 봉 2006.08.20 6168
1155 지리산 황금능선 답사기 21 슬기난 2004.11.18 5845
1154 지리산 첫 종주를 준비하며.. 7 file 찬바람 2007.06.15 5764
1153 외로운 겨울 종주 (6) 19 허허바다 2004.02.04 5731
1152 지리산에서 보낸 편지3(불무장등산행기) 3 이개호 2001.12.03 5697
1151 지리산 - 덕유산 22 file 오 해 봉 2007.07.24 5611
1150 적벽부가 떠오른 지리산 종주 5 우계명 2001.09.11 5602
1149 지리산 종주 15 전은선 2006.05.06 5425
1148 1박 2일 지리산 종주기 황호성 2001.09.11 5391
1147 외로운 겨울 종주 (1) 10 허허바다 2004.01.31 5247
1146 지리산 종주 여행기 19 김이정 2006.01.25 5221
» 지리산 산행기 11 적벽부 2005.01.12 5145
1144 7암자 순례 19 file 오 해 봉 2007.01.28 5125
1143 그 곳은 꿈결이었다, 지리의 남부능선! 13 이 영진 2003.07.01 511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9 Next
/ 5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