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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동천 '달빛초당'

 

 

 나는 항상 '작은 냇물 옆에 초당 하나 짓고 춘난 키우며 살고싶다'고 생각해왔다. 낮엔 물소리 속에 책 읽고, 밤엔 좌선하거나 묵향 맡으며 살면 좋겠다 싶었다. 재벌 비서로 20년 세월 보냈다. 한마디로 도시 인총은 지겹다. 그런데 벽사(碧沙) 김필곤 시인은 부인과 둘이 냇가에 손수 낮으막한 한 칸 초옥 만들고 살아, 보면 볼수록 부럽다.

 

 작년 동지에 '달빛 초당' 생각하며 '춘란(春蘭)'이란 시 한 편 썼다.

 

싸락눈 싸락싸락 나리는 봄에

춘난 잎 푸른 빛이 새삼 더 반가워라

지리산 높은 준령 흰구름 아득한데

은은한 난향은 오두막 찾아온다.

 

베개를 높이 베고 산가(山家)에 누었나니

천리 밖 세상사는 내 알 바 아니로다

창공에 달 밝고 물소리 그윽한 밤

그 누가 묵난(墨蘭) 하나 창문에 그렸던가.

 

 '춘분이면 집이 온통 춘 향기로 덮힙니다.' 시인은 이리 말했었다. 그 다음 해 춘분에 방문하여, 나는 인사 나누자말자, 마당가에 놓인 멍석만한 반석 위에 신발 벗고 올라가 앉았다. 대나무 홈통으로 끌어온 시원한 물 한 잔 마신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당 밑으로 흐르는 벽계천 물소리 맑고, 여기저기 피어난 꽃무릇 싱싱하다. 진달래는 봄을 먼저 느끼는 여인인가. 잎도 없이 허공에 먼저 던진 고혹적인 보라빛이 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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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로에 찻물부터 올리려는 시인 보고 나는 폭포부터 보자고했다. 산 위에 폭포가 세 개 있다. 차도 차지만, 폭포 볼 일 시급하다.  

 초옥은 집채만한 바위 밑에 있어, 산에 올라가려면 바위 위로 사다리 타고 올라간다. 바위 틈 곳곳에 춘란이 꽃대 올리고 있다. 홍화(紅花) 자화(紫花)는 보이는데, 귀하다는 희디 힌 소심(素心)은 어디 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전체가 난향에 덮힌 모습을 보니, 난 한 촉 분에 심어놓고 감상하는 도시인 취미가 옹졸하게 여겨진다.

 사다리 타고 바위 위에 올라서니, '자네 방장산에 왔는가?' 산이 내게 묻는데, 길은 바위 틈으로 이어졌고, 손바닥만한 땅뙤기에 춘란과 차나무 심어져 있다. 물소리에 귀 씻으며 은하폭포 올라가니, 물은 바위 휘감아 흐르고, 제1 제2 제3 선녀탕 소(沼)에 임자 없는 청옥의 물 넘치고, 근처 수십 그루 매화는 바람에 향기를 날리고 있어, 매화우(梅花雨) 날릴 때 밑에 앉으면 가히 선경이것다.

길다운 길 없는 차밭 사이 올라가는 길이 더한층 그윽하다. 신선이 좋아한다는 차나무다. 가을에 하얀 차꽃 피면 은은한 그 향기가 더욱 좋단다. 언제 여기 다시 찾아와 남자들은 폭포 아래서 탁족(濯足)하고, 선녀들은 폭포에서 옥구슬 떨어지는 맑은 물에 목욕했으면 싶다.

 

 산은 계곡 품고, 계곡은 물과 바위 품었다. 산 전체에 차나무와 춘란 많다. 땅은 차나무 키우고, 바위는 춘난 키운다. 바위 틈새마다 춘란이 꽃대 올리고 있다. 바위는 산봉오리처럼 큰 것도 있고 수십명 앉을 너럭바위도 있다.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은 폭포 이루고 담(潭)을 이룬다. 소나무는 바위 위에 분재처럼 자란 것도 있고, 푸른 소(沼)에 비스듬히 들어누운 것도 있다. 그가 노송 아래 달그림자 깔고 앉아 한정록(閑情綠)을 읽었던 곳이 어디일까. '안톤체홉'의 '벛꽃 동산' 생각나는 벽사시인의 '난(蘭)동산'이다.

여기 별유천지 구비구비 호미로 땅을 파고, 두 사람이 삼을 심었다. 반음반양(半陰半陽) 바위나 나무 아래에 신령한 묘삼이 심어지자 벽사(碧沙)는 그리 흥겨워 할 수 없다.  둘이 내려와 땀 씻고 지짐이 한 접시에 곡차 기울이니, 저녂 되자 인근 사찰의 법공스님과 부산의 여산(如山)선생, 부안의 솔메거사, 서울의 산유화여사가 도착한다.

 준비해온 득량만 낙지와 키조개에 시인이 내놓은  지리산 산채 보태니, 말 그대로 산해진미다. 달빛차로 시작한 자리는 두견화 띄운 동동주, 변산 복분자주, 진도 홍주로 이어졌고, 노래는 주인인 벽사선생부터 젊은 산유화여사까지 이어졌다. 밤 깊어 스님과 여산선생 돌아가고, 일행은 숙소에서 고로쇠물 마셔가며 새벽 3시까지 이야기 나누었다.

'산기운은 아침 저녁이 더욱 아름답다(山氣日夕佳)'는 도연명의 표현이 정확하다. 새벽에 일어나니, 밤새 물소리 들리던 계곡은 안개 속에 가려져 신비롭고, 터지려는 십리화개 벚꽃 봉오리는 이슬 머금어 촉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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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은하폭포 둘러보고 지리산오갈피나무 고로쇠나무 구경하면서 시인이 참선삼매(參禪三昧) 즐기는 바위에 올라보기도 했다. 내려와 서재에 앉으니, 남창(南窓) 앞에 차나무 푸르고, 경전으로 도배한 벽지는 눈가는 곳 모두가 성인(聖人)의 글귀다. 소장한 고서(古書)와 청록다완 구경하고 시인이 직접 덖어낸 '달빛차' 음미했다.

'흰구름에 차 한잔, 솔바람에 차 한잔.'

신문도 없고 TV도 없는 곳. 바야흐로 '달빛초당' 차회(茶會)는 물소리 난밭에 들어 난초꽃 피우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세계에서 물외한담(物外閑談)의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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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21.01.04 11:28

    한 20년 전인데, 그때 하해님도 계셨군요. 오해봉님과 허허바다님은 그날 모임에 안오셨던지?
    세월이 가고 사람도 늙어지니, 그때 만난 분이 알은체 해주니 눈물겹다고나 할까요?

    옛친구 만난 김에, 혹시 주소 알려주시면 그 당시 수필집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 한 권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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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21.01.06 01:18
    저는 참외 사서 가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
    그때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소환되면 아직도 잠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립니다.
    올해 달빛초당을 지나치는데 예전 그 자리엔 몇 층짜리 콘크리트 빌딩이 서 있더군요.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가 뭉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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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봉 2021.01.04 20:52
    참 오래된 옛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모였던 5분중에 허허바다님은 참석 했을겁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김현거사님을 모시고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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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21.01.07 08:53
    계곡 옆 오두막 없어지고 대신 빌딩이 서있어 운치가 사라지고 좀 허망했지만, 일부러 그 이유는 묻지 않았고,
    그러나 주인은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객을 반겼고, 부인은 춘난 몇 촉 꺽어와 달빛차에 띄워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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