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7절

by 나그네 posted Mar 13, 2017 Views 200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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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음보다 먼저 길들여지는 몸
제7절 가장 좋은 길은 ‘흙 산길’, 가장 나쁜 길은 ‘포장도로’

 

3월 15일(일, 6일 차) 삼화실 - 대축

인주의 부인이 끓여 주는 김치찌개로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 준

비해 온 멸치, 무,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로 끓인 김치찌개이다. 굳이 이

렇게까지 상세히 쓰는 이유는 이 친구가 육수에 대해 아주 여러 번 강조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대목 빠트리면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을 우려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어제 종점으로 원위치. 20여 km,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인주

는 창원에서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니 갈 길이 바쁘다. 진주에 온 순필이

도 진주 집으로 돌아가서 부인을 포섭(?)해 오늘 저녁 악양 본가로 우리

순례길 세 번째 기쁨조로 출현해야 하니 이 차편으로 진주까지 가는 것

이 최상이다. 탑승 인원은 인주의 부인을 포함해 모두 6명이다. 우리는

이미 법 따위는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 결심은 운전자이자 차주

인 인주의 몫이지만 시골에서 그것도 일요일 이른 아침은 위험부담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자기 부인이 남편 친구 셋과

몸을 맞대는 뒷자리에 앉게 될 가능성도 없다. 일단 아군(我軍) 피해 무(

無)! 몸무게가 70kg 후반인 남자 네 명이 뒷자리에 구겨 앉으니 많이 괴

롭다. 더구나 어제 저녁처럼 속도 차로 인한 멀미. 그리 상쾌하지 않은

출발이다.

“수고 해라.”

“고맙다.”

“저녁에 보자.”

 

어제 정돌이 모자(母子)와 헤어졌던 바로 그곳에서 신발 끈을 동여매고

길을 나서는데 머리가 시원하다. 모자(帽子)! 차 속에 벗어 둔 거다. 바

로 전화를 했고 차는 가던 길을 돌려 왔다. 역시 발달된 문명이 인간의

일상을 편하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행 기간 동안 L은 고글을 잃어

버렸고 나는 구례 신촌 민박에 근육 이완용 테이프를 두고 온 것 외에는

재산상의 손실이 없다. 이 정도면 준수하다.

 

오늘 구간 난이도는 「상」. 시작부터 가파르다. 500m고지 하나를 포함

해 봉우리 네 개는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 예외 없이 하루를 오르막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초반에 땀을 좀 흘리고 나면 몸이 적응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대부분 언제 처음 쉬느냐에 달렸다. 아무리 힘든 코스

라도 거의 100%를 소진하고 첫 휴식을 취하면 그 다음부터는 발걸음이

가볍다. 반면 힘들다고 초반에 빨리 쉬게 되면 하루가 아주 괴롭다. 역

설이다. 잘 걷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

 

서당 마을! 여기에서는 하동읍으로 갔다 오는 코스가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편도 7km에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니 왕복 5시간이면 거의 하루

다. 왜 굳이 이 구간을 둘레길에 포함시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물며

지리산 둘레길 전체를 관리하는 사단 법인 「숲길」의 주사무소는 하동읍

에 있다. 여하튼 첫날 호기 있게 선택했던 길게 돌아가는 벽송사 구간에

서 쓴맛을 본 터라 ‘갈 수 있는 모든 곳은 다 들러 골고루 구경하고 간다.’

는 수칙을 바로 폐기했었고 숲 속에서 목욕하는 선녀도 이미 포기한 바

있으니 하동읍을 들렀다 갈지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늘 앞서가던 우리의 첨병 L군은 오늘따라 발걸음이 빠르고 간격도 넓

다. 서당 마을에 들어서도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히 속도를 내 우계 저

수지까지 내달았건만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혹시 해서 전화를 하니 수화

기 건너편 낮은 저음이 사뭇 엄숙하다. 마을 회관 화장실이란다. 그럼

그렇지. 작년 여름 함께 지리산을 종주할 때는 변비 때문에 난리를 떨더

니 이번에는 아주 자주 화장실을 간다. 기침(起寢)해서 한 번 들르고 조

반(早飯) 후에 또 갔다가 오전 중 한 번 더 들러야 하루 분량을 처리하는

듯하다. 그런데 후반부부터는 이 증세도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꽤 큰 저수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이 참 평화롭다. 저 멀리 서너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여자네.” 내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뭐? 보이나?” L이 묻는다.

“세상사 모두 봐야 아나? 성별 구분은 촉(囑)으로 하는 거다.”

반응이 없다, 미련한 넘!

저수지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포장 임도다. 지겹다. 경사도 만만치 않

고 햇볕은 내리 쪼이고. 헉헉거리며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13일 동안

250km 정도를 걸으면서 자동차 전용 도로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모든 길은 다 경험해 봤다. – 웅석봉에 오르는 길은 정상적인 사

고로는 인간, 두 발 짐승이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굳이 선호도를 구

분하자면 포장도(아스팔트, 시멘트 불문)<비포장 임도<*농로<돌 산길<

흙 산길 순서다. 내리막 포장도로보다 차라리 오르막 산길이 낫다.

*농로가 순서에서 산길에 밀리는 이유는 그늘이 없기 때문이다.

 

괴목 마을, 신촌 마을을 지나는데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던 풍경이 새로

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크고 작은 돌들로 축대를 쌓아 만든 논. 남해에

서 본 다랑이 논처럼 방석 크기만한 논들은 아니지만 키보다 더 높은 돌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만들었다. 밭도 아닌 논. 물이 새지 않게 하기 위한

공정은 훨씬 복잡했으리라. 한두 곳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손이 갔을지

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역시 이 땅은 「땅」이 문제다. 산 사이사

이 좁은 공간에 밭을 갈고 논을 만들어 경작하며 살아왔다. 곡식을 경작

할 땅이 우선이니 가옥들은 늘 경작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언덕에 있

다. 지금도 연세 드신 분들은 아파트 화단에도, 도심 조그마한 후미진

빈 공간에도 여지없이 상추, 파, 고추를 심는다. 심지어 내가 사는 서울

에서 가장 번화한 주택가인 반포에 있는 아파트에도 그렇고 강남 고속

터미널 뒷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거의 DNA에 인자화되지 않았나 싶

다. 1993년 시카고에 있는 110층 건물 시어스 타워에 올랐을 때 어스름

녘 지평선까지 불이 켜져 있는 모습에 괜히 화가 났던 열등감도 결국은

DNA의 문제다. 이 땅은 「땅」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경작지 모

습은 여행 내내 어느 곳에서든 별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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