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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음보다 먼저 길들여지는 몸

제4절 군대 간 아들 전화에 목매는 아버지라는 존재

 

제대로 경로를 찾아 점심을 먹을 평촌으로 향한다. 식당 몇 곳은 아예

열지도 않았고 한두 군데 문은 열렸으나 준비가 안됐단다. 순간 긴장했

다. 전체 일정 관리는 내 몫이다. 당일 일정은 아침에 출발 전 내가 브리

핑한다. 날씨, 거리, 코스 특성, 예상 소요 시간, 경유지, 점심, 숙박지.

간혹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지 않으면 라면을 준비해야 한

다. 여차하면 끓여 사 먹어야 하니. 잘 모르는 곳이지만 면 소재지라면

의당 식당 한두 곳은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겨우 영업하는 곳 발견. 4

시간여를 걸어왔으니 상당히 시장하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주

머니 왈

“저 놈들 또 왔네.”

“아십니까?”

“늘 따라다니죠. 정돌이네서 주무셨습니까? 오늘은 어미도 따라 왔네.”

“네? 어미요?”

“예. 저 암놈이 어미입니다.” 이런! 아무리 개라지만 어미를 두고 수놈

둘이 싸움 나겠다고 조롱을 했으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한 거다.

“아주머니, 저 놈들도 뭐 좀 챙겨 주세요.”

“그러죠. 그런데 잔반이 별로 없는데…”

“돈 쳐 드릴 테니 좀 넉넉히 주세요.”

“네 어떤 손님은 갈비탕 사 먹여요, 자기들은 된장 먹고.”

“네… 알았습니다. 갈비탕 한 그릇 말아서 좀 먹이세요.”

“갈비탕은 없습니다. 알아서 할게요. 그런데 어미는 어디 갔지? 어미가

먼저 먹어야 쟤들이 먹는데…”

뜨아! 사람보다 낫다. 결국 개들한테 밥을 샀다. 물론 개가 사람한테 밥

을 살 수는 없겠으나 주인이 아닌 과객이 개한테 밥을 사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거다. 여하튼 난생 처음 개한테 밥을 샀다. 앞으로도 기회는 없

지 싶다. 우리도 정돌이 모자(母子)도 배불리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선다.

 

청암면 소재지 평촌을 지나 관점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횡천강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법 큰 돌들이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강둑을 걸으니

바람이 제법 분다. 기온이 조금만 높으면 이 바람이 한결 상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럿이 생활을 하다 보면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단체

가 버스로 이동하면 처음 앉은 자리가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가 된다든

지 아니면 강의실에서도 대부분 아무런 이유 없이 자리가 정해지고 또

고정된다. 우리의 경우 걸어가는 순서는 늘 정해져 있다. 이유는 없다.

아마 처음부터 그랬지 싶다. 잠자리도 정해져 있다. 방 구조에 따라 형

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J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가운데에서 잤다.

걸을 때는 항상 L이 선두다. 내가 가운데, 말미가 J다. 다만 누군가 입을

닫는 날이 되면 순서는 바뀐다. 입을 닫는 사람이 선두다. 가급적 간격

도 넓게 유지한다. 무의식 중에라도 말을 걸지 않기 위한 배려다. 다른

역할과 순서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민박에 도착하면 보통 L, J 그리

고 나의 순서로 씻는다. 아침 화장실 사용은 나, L, J순이다. 잠자리에

드는 순서는 L, J 그리고 나. 마지막 방 정리, 유실물 확인은 J의 몫이

다. 서로의 성격들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조화가 아닌가 싶다.

 

앞에서 걸어가던 L의 배낭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내가 훈련병한테

서도 전화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이후 이 친구는 전화벨 소리에 아

주 예민하다. 바로 달려와 내게 등을 내민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계속 바지가 처지고 손에 들고 다니기에는 거추장스러워 늘 전화기를

배낭에 넣고 다니니 배낭을 내려놓지 않는 한 자력으로 전화기를 꺼낼

수 없다. 유별난 친구다. 순간 아리따운 여인네의 원피스 지퍼나 브래지

어 고리를 푸는 기회라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

은 땀에 절어 냄새 나는 중년 남성의 배낭이다.

 

“응! 아들이구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끊어졌나? 아들 맞나?”

“응, 분명히 맞다. 잘못 들었나?”

순간 또 벨이 울린다. 아주 급하게 받는다.

 

“응. 그래 아버지다. 아픈데 없나? 우째 전화할 수 있나?

“…….”

“그래 잘했네. 나는 오늘 닷새째다. 별일 없지. 시간 얼마 남았다고?”

아주 환한 얼굴이다. 그간 여러 번 배낭을 들이밀며 전화기를 빨리 꺼내

달라고 성화를 부리다가 아들의 전화가 아니면 목소리는 확실히 낮고

약해졌는데… 그래서 그 동안 전화기 꺼내 주는 역할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는데 다행이다.

 

“잘 지낸다나?”

“응. 종합평가에 걔네 분대가 최고 점수를 받아 5분 전화하는 상을 받았

다네.”

아주 대견해 하는 눈치다. 그래 그게 아비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또

저놈이 아비가 되면 제 새끼한테 또 그렇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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