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차꽃이 지고 있어서. . .

by moveon posted Nov 0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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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꽃

하늘이 좋은 나무로 하여금 귤나무와 같은 덕을 지니게 하였으니 태어난 천성을
바꾸지 아니하며, 남쪽나라에서만 자라도다.
달콤한 잎은 우박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흰꽃은 서리에 씻겨서 가을 경치를 빛나
게 하더라.
고야산에 사는 신선의 살결같이 희고 연부단금 같은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다.
차나무는 과로와 같은데 그 잎은 치자와 같고 꽃은 백장미와 같으며 꽃술은 금
같이  누른데 맑고 은은한 향기를 내더라.
이상이 초의의  東茶頌에 나오는 차꽃에 관한 감상이다.

차나무는 중국원산의 상록 관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영,호남의 남부 지방에서
만 자란다. 이른 봄 새의 혀같은 여린 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들고 가을에는 또
한번 아름다운 꽃으로 인해 그 품격있는 일생을 아름다이 엮어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이로움을 반드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국한한다면 그것은 매우
편협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나무나 식물의 아름다움은 꽃을 피운다는 점에
있다고 볼때 차나무 역시 아름다운 자신의 황금기를 가지되 다만 조락을 거듭하는
가을에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스산한 기운이 무르익을 즈음에 파아란 자신의 잎사이로 희고 청아한 모습을드러
내되 결코 요란하지 못하다. 다소곳이 아래로 고개를 떨군 모습은 그렇다고 그리
나약해 보이지 않는다. 탄력있는 육질의 꽃잎은 미백의 흰 빛으로 아련한 그리움
을 낳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새봄의 화려한 자신의 영락을 지켜보고 다른 꽃들이 모두 열매를 맺고 사라지려 할
즈음에 화려하지만 품격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입술을 연다.
이런 가을날이면 그 차나무 아래 찻자리를 열고 차꽃 한 자루씩 찻잔에 담아 1년을
마시는 기쁨을 어찌 茶人들의 손끝에서만 느낄 수 있으랴?
늘 가던 山寺의 은행 나무숲은 황금빛 은행잎이 불타오를 즈음 6백년이나 되었다
는 차나무 숲에서 점점 별하나의 꽃잎들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이미 그 별들이 지고 있다.

이 가을 벌써 나의 가슴 속으로 푸른 茶香과 은행나무 황금빛 바람들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올 가을은 누구와 함께 가야 할 것 같다.

문득 삼국지의 유비가 강남의 차를 구하기 위해 저자에 나섰다가[어머니를위해]
家寶였던 보검을 댓가로 내어놓고 차 한종지를 사왔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듣고
다시  바꾸어 왔다는 일화가 생각이 난다. 맛있는 차야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차맛이 아무려면 어떤가? 맛을 모른다면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라도
능히 그 가치가 있는 것을.. .
차꽃 차를 만들어 찻잔에 띄우고 홀연히 다시 계절을 피우는 그 멋도 취해 봄직
하지 않을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