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 로드킬

by 한겨례 posted Apr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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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소리없는 얘기를 통역해보고 싶었어요”

30개월 동안 지리산 주변 120km 도로에서 촬영,
88고속도로, 벚꽃 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2차선 도로, 19번 4차선 산업도로..

10년 가까이 동물을 찍어온 황윤 감독 작품.

야외로 나가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너구리나 족제비 같은 야생 동물들의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야생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에 치어 사망한 것인데. 이를 일러 ‘로드킬’이라고 부른다.

최근 이 ‘로드킬’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상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에 도로가 생긴 이래 처음 실시된 ‘야생 동물 로드킬’ 연구 조사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를 제작한 황윤 감독은 한국에서는 드문 생태 다큐멘터리스트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인간과 야생 동물의 삶을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오고 있다.

인간과 야생 동물이 서로를 향한 경계를 허물고 본래의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황윤 감독. 그녀를 초대해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본 세상 이야기와, 그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과정 이야기를 4월 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들어봤다.


▶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어떤 작품인가요?

쉽게 얘기해서 우리가 편하게 다니기 위해 만들었던 도로에서 자동차와의 교통사고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말하는 작품입니다. 야생동물의 참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요. 이때까지 도로를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자, 이와 같은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고 있습니다.‘고발 다큐’와는 거리가 멀고, 어떤 평론가의 말에 의하면 ‘감성 다큐’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야생동물의 눈에 자동차가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면서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동차가 네 바퀴 달린 동물로 보일수도 있고, 눈에서 불을 뿜는 동물로 보일수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상상을 했죠.

▶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 땅의 야생동물이 보호해야할 대상이라기보다, 이제까지 우리가 그들에게 가했던 폭력을 철회하고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지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지구를 어머니로 생각했을 때, 야생동물은 다 형제이고, 자매이고,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 ‘2006년 고속도로에서 발생된 로드킬만 2960건이다’

30개월 동안 지리산 주변 120km 도로를 조사를 했어요. 88고속도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시는 벚꽃 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2차선 고속도로, 19번 4차선 산업도로 이렇게 3개... 그래서 나온 결과가 5760건이에요. 120km가 그 정도이면, 우리나라 전체 도로가 10만km거든요. 전체 도로의 0.1% 밖에 안 되는 곳이 그 정도인데, 전국적으로 따지면 얼마나 많은 숫자일지 상상하기 힘든 숫자가 되겠죠.

▶ 야생 살쾡이 ‘팔팔이’의 죽음 가슴 아파

야생 살쾡이 에피소드가 영화에 등장해요. 어느 날 최태형 씨가 조사를 하는 동안에 88고속도로에서 살쾡이 한 마리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죽지는 않고 숨을 쉬고 있지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누워있는 상태였거든요. 전라북도 남원이었는데 차에 실어서 순천 온누리 동물병원이라는 구조센터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2주 동안 치료를 하고 돌봐줘서 의식과 건강을 회복했죠. 그리고는 전남 구례로 다시 데려와서 적응훈련을 거쳐, 목에 발신기 달아 야생으로 돌려보냈어요. 그 후 그 친구가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지켜보았는데 너무 놀랍게도 30km 떨어진 남원으로 다시 돌아온 거에요. 지리산을 넘어 30km를 걸어서 말이죠. 나침반과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 자기가 맨 처음 사고를 당했던 그 지점으로 되돌아온 거였어요. 이 후는 영화의 결말이라 나중에 보시는 분들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요. 그 ‘팔팔이’가 다시 돌아가서는 같은 자리에서 또 다시 사고를 당합니다. 그때 관객 분들이 너무 많이 우세요.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어요. ‘팔팔이’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었던 점과 다시 도로위에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 로드킬에 대해 관계 당국에선 어떤 말을 하나요?

많은 분들이 대안으로 ‘생태 통로’라고 해서, 야생동물들이 지나가는 구름다리가 많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씀을 하세요. 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영화 찍으면서 느꼈어요. 로드킬을 당한 지점을 빨간 점으로 찍다보니까 그 점이 이어지면서 도로 노선이 되는 거예요. 그 말이 뭐냐면, 어떤 특정지점에서 로드킬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로 전체에서 일어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다가 다리를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더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행동 영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너구리같은 경우, 행동반경이 1km밖에 안 돼요. 그러므로 생태 통로가 겨우 1km 거리에 있다고 해도, 이 친구들한테는 너무 먼 거리가 되어 버리죠. 살쾡이는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아있는 고양이과 동물이에요. 예전에는 호랑이, 표범, 시라소니 등이 많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삵 하나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위치해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굉장히 중요한 동물인데 지금 로드킬로 굉장히 많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친구들도 행동반경이 3km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 거리 밖에 있는 생태 통로는 무의미해요.

▶ 우리나라가 국토 면적에 비해 도로가 많은 나라라면서요.

예. 그래서 더 이상의 도로가 과연 꼭 필요한가 이런 것에 대한 진지하고 시급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동물뿐만이 아니라, 4차선 도로 1km 만드는 데에 천억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그렇게 많은 도로가 꼭 있어야지만 과연 우리가 행복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 이 다큐멘터리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많이 우시고 놀라세요. 이 정도까지 몰랐다면서, 동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도 많이 하세요.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같이 살아가는 또 다른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앞으로 어떤 일들을 같이 하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하시고. 또 자동차에 야생동물 보호하자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그래서 많은 희망을 느껴요. 물론 상업영화의 홍보나 마케팅에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독립 영화 치고는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니, 이 관객들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우리나라 도로 공사나 국토 해양부 등에서의 반응은 어때요?

의미 있는 상영회가 하나 있었어요. 저희가 3월 27일에 개봉했는데, 개봉 다음날인 28일에 한국도로공사에서 이 영화를 초청해서 본사에서 상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참 뜻 깊었었죠. 더 의미 있는 것은 고속도로를 결정하고 계획하는 건설본부장님이 잘 보았다고 말씀해주시면서, 로드킬 저감대책을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도 하신 거였죠. 하지만, 우리나라 10km 도로 중 고속도로는 3천km정도에 불과한지라 나머지 국토해양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번 상영회를 계기로 해서 기획예산처나 국회, 청와대까지도 가서 꼭 한번 상영을 했으면 합니다.

▶ 연예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데?

예고편을 1분짜리를 만드는데, 동물들이 목소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방송인 김미화 씨와 영화배우 조재현 씨가 <어느 날 그 길에서>와 <작별>을 한편씩 맡으셔서 목소리 내레이션을 해주셨어요. 무보수로. 그래서 정말 감사드리죠. 그리고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멀리 이탈리아에 계신데, 어떻게 소문을 들으시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DVD 두개를 보내 드렸더니 응원하는 편지를 친필로 써 보내주셨어요. 이렇게 같이 공감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 또 어떤 작품을 더 하고 싶으세요?

어떤 잡지사에서 본인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어떻게 말하겠냐고 물어보셨었어요. 그때 제가 ‘생태적 감수성을 영화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 혹은 ‘동물의 마음을 통역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거든요.일이 힘들기만 하면 이 일을 오래 못해요. 보람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생명들에 대한 사랑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