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를 뜯으며

by 두레네집 posted Jul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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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로 비탈 심한 밤나무 밭 위를 오릅니다.
며칠 전부터 나물 뜯으러 가자며 보채던 두레엄마의 손에 등 떼밀려 올라갑니다.
정말 아기 손처럼 도로록 말린 부드러운 새순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말라 죽은 고사리 풀 섶을 두리번거리면 고개를 숙이며 뾰죽히 올라온 고사리.


고비 고비 생사의 고비마다
사람 살리려 고민한 하나님의 숨소리
이파리에 맺힌 그 이슬조차 달다.


세상에 더러운 것 보기 싫다고 산에 숨어 들어간 백이, 숙제가 따먹은 것이
그 깨끗한 고사리 아니겠습니까?
고사리는 절개 굳은 선비나 중생이 뜯어먹는 먹을거리로 전래되어왔습니다만
이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적 노동력으로 환산해 본 지금
그 나물을 하려면 사람의 손이 워낙 많이 가는 바람에
이제 국내산 고사리는 도시인들의 밥상에 오르기에는 굉장히 비싼 나물이 되었습니다. 그 순수 국산. 그것도 지리산 남쪽 사면의 자연 고사리를 따겠노라고
버벅거리며 올랐습니다.


그래도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나온 줄기인데 보통 가파른게 아닙니다.
숨을 헉헉거리며 행여 뱀 나올까봐 긴 장화를 신고 기어오르는 것을
동네 아주머니께서 보시곤 웃으십니다.
모든 것이 미숙한 저희가 하는 몸짓이 우습기도 하시겠지만
아마도 안쓰러운가 봅니다.


언젠가 학교 안마당에 잔뜩 난 풀을 보고
‘이게 고들빼기야’
하고 잘난 척 했었을 때 그리고 후에 그게 아니었구나 함을 알았을 때.
눈 뜬 장님의 머슥함에 부끄럽더군요.
우리가 살아오며 쌓아왔던 많은 지식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더 가치유무의 경중을 따지게 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 사는 저는 도시의 바보입니다.
산에 가도 무엇을 먹는지 몰라 지나치기 일쑤며,
남들이 열을 딸 때 저는 하나 둘을 따기 때문입니다.
만일 TV드라마에나 있을 “혹성탈출” 같은 문명의 종말이 있다면,
아니 당장 우리 조국이 6.25같은 남북 전쟁이 온다면
저 같은 도시의 얼간이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죽을 똥 쌀 것입니다.


산에 오르니 고사리를 따며 고상하게 보내려던 내 일정이 마구 엉클어졌습니다.
바로 취나물이 여기저기서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 옮기며 따면 두 발짝 뒤에 또 다른 나물이 나 여기 있다 하고,
고놈이 이쁘다 하며 따면 이번엔 세 발짝 거리에 나도 있소 하고 방긋거립니다.
그녀들의 유혹에 빠져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마누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디 있느냐고 골짜기로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앞 산에서 나물과 숨박꼭질을 했습니다.


제 생각인데, 그래서“취”나물이라 이름 지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네들의 유혹에 취한 듯,
한 발짝씩 산으로 깊숙이 발들이다 산 속에서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듯 헤맨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붙인게 아닌가 하는...


하지만 술도 못하는 나는
이 봄날 나물에 취함이 그지없이 좋았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