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무서워진 날

by 두레네집 posted Mar 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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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그라인더 톱날이 손목에 박혔습니다.
손에는 아무런 아픔도 없이 뭉툭하다는 느낌.
바라보는 내 시선, 바로 뒤로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침착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기계를 꺼야 하는데...
기계가 자꾸 꺼지지를 않는 겁니다. 우우웅 소리만 내고.
침착. 침착. 속으로 되내이며 어떻게 코드를 뽑았습니다.
피가 뿡어져 나올까봐 살살 톱날을 들어냈는데,
한 방울 똑 떨어지더군요.
마누라 놀랠까봐 소리도 못지르고.
톱날에 낀 옷자락을 가위로 잘라내자 상처가 보였습니다.
속살이 벌겋고 무슨 줄 같은 것도 있고 징그러워 눈 돌려
대충 소독하고 붕대 빙빙 감고 병원에 갔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동맥도 신경도 건드리지 않고 살점만 날라갔다는군요.
겉에 입고 있던 츄리닝과 남방 소매자락 덕분이었습니다.
찢어져 나간 옷자락이 감사해서 한 손으로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있으니 마취하고 한 일곱 바늘 꼬맸습니다.
내 생전 살 위에 바늘로 꼬매기는 처음이었지요.
바로 위 2cm 위에서 톡톡 뛰는 맥박을 다른 손 끝으로 느끼면서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오늘은 그냥 하루종일 놀기로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들데요.
그냥 톱질만 할걸 괜히 편하자고 기계를 쓰다가 이리 됐구나 싶었습니다.
전기동력 없이 손 연장으로만 일하면 큰 사고는 없는 법인데,
농촌의 안전 사고가 대부분 기계조작에서 나옵니다. 상당부분 경운기와 모터를 사용하는 농기계 등입니다. 전기톱과 풀 깍는 예취기 등이지요.
다 사람 편하자고 나온 것들인데 잘못 놀리면 평생 후회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욕심없이 살자고 하면 손과 도구만 있으면 충분한 것을
시간을 계산하고 돈을 따져 보아 물량과 시간이 정비례한다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인간성을 뒤로 산정한 탓이지요.
낫과 톱과 삽과 망치와 내 힘이면 되는 일들을 기계로 바꾸니
기계로 바꾸면 사람이 기계의 속도대로 못따라가다 사고가 나곤 합니다.
사람을 바꾸든지, 아니면 기계 안에 마음을 넣든지
둘이 하나되는 균형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후자가 안되니 늘 사람이 당하는 법이지요.
산업 혁명 초기 기계를 모두 부수려고 했던 이들이
단지 기계의 생산성에 뒤쳐져 화가 난 물질의 소외자 이었겠는가 싶어집니다.
우리의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몸놀림을 생산성의 혁명으로 대치한 기계문명
문명은 진보하는 법이지만 그 문명의 진보가 정신의 발달이 아닌 자본의 증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아니 되는게 낫지 않는가 싶어지고...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말처럼 영원히 지속가능한 인간의 문명은
개발이 아니라 자연그대로에 붙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내가 러다이트도 아닌데 사고 후 이런 소리를 하나 봅니다.

갑자기 시간이 생겨 비디오를 보려고 하는데 안문재 선생님이 보내준 것 중에
마음을 가진 생명체로 진화하는 인조인간이라는 설명을 한
피닉스 라는 영화가 있어 지금 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제가 재미있어하는 공상과학 우주영화네요.
"오늘도 무사히" 간간히 버스 안 기사아저씨 머리위에 붙은
이쁜 아이의 기도하는 손이 머리 속으로 왔다갔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