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의 젊음들...

by 야생마 posted Jul 20,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두달정도 계속 포도밭에서 포도가지와 실갱이 하며 보내는데
이제 어느정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일정이 예상보다 빨라졌다.
사실 회사측에선 빨리 끝내고 또다른 포도밭 일을 맡았으면 했는데
일이 더디게 진행되어 그냥 맡은것만 마무리하고 끝낼것 같다.

여러나라의 젊은이들 열심히 땀흘리고 서로 정을 나누고
그런 모습들이 드넓은 대지에선 정말 귀엽고 모두가 사랑스럽다.
아침엔 꽤 춥고 밤중엔 거의 날마다 비가 내려 포도가지도 젖어있고
바닥도 미끄러운데 웃음 잃지않고 손놀림을 하는모습 대견하다.
커플들은 함께 한단락씩 작업을 하면 이상하게 시너지효과가 나타나서
훨씬 빠르고 지루하지 않게 일을 해낸다. 근데 TV를 손잡고 보는건..

숙소에선 자주 맥주파티가 열리고 커다란 웃음소리 끊이질 않는다.
이것저것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겨울엔 북적북적한게 좋다.
아쉬운 점은 어느곳이 돈을 더준다더라 하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녀석들이 간혹 있는데 내입장에선 그게 나쁘지 않다고 여기지만
회사 입장에선 또 사람을 구해야 하고 일을 가르쳐야 하니 난처해한다.
여기저기 부딪혀 보는게 젊은시절 나름 의미있지 않을까...
단지 그게 겨우 돈 몇푼 때문이라면 많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미니홈피에 동생이 올린 부모님 사진보며 그새 많이 늙으셨다고
훌쩍이는 아가씨 모습은 참 많이 애틋하다.
잠시 지나면 또 생글생글 웃으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일도 잘한다. 우리나라 아가씨들이 시골 어머니들의 그 부지런한
손놀림을 이어 받아서인지 일본 여인들보단 월등히 잘한다.

네덜란드 커플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서 며칠 지내다 나갈줄 알았는데
처음엔 신발 신은채 실내를 다니더니 지금은 젖가락질도 한다.
항상 잘 웃고 얘기를 즐겁게 잘 받아줘서 숙소에 생기가 넘친다.
우리 영화도 재밌단다. 일도 아주 잘한다. 우리말도 꽤 늘었다.

그리고, 두녀석이 있는데 아주 작정을 하고 중고차를 구입하더니
보통 5시면 일을 마치는데...헤드랜턴도 사서 일을 밤 8시경까지 한다.
하루 200뉴질랜드달러 정도 수입을 올린다.
나도 며칠동안 같이 어울려서 하루 250불(20만원정도) 벌기도 했는데
힘들어서 지금은 포기했다. 아무리 돈이 좋다해도...

그렇게 벌어서 12주 3000불 어학원 수강을 하고 생활을 하고 여행을 한다.
나라경제가 어려워지고 청년실업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렇게 먼나라에 와서 갚지게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고 멋지다.
3000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고 어학연수를 꼭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다 실력을 쌓고 취업과 사는데 큰 가치를 하게 될것이다.

젊음에겐 패기가 있고 굴복하지 않는 의지가 있어야지
취업을 위해 영혼을 판다는 것은 참 불쌍한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암튼, 우리나라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기쁘다.

숲의 경제학...요즘 읽다가 소강상태에 있는 책의 일부 내용인데
작가가 월든이란 호수가 있는 숲으로 들어가 통나무로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경제학적으로 정리를 한 내용이다.
포도밭 젊음의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대비를 자주 해보곤 한다.
어학연수에 여행에 친구를 사귀고 추억을 만들고 값진 경험을 쌓고...

또, 몸과 마음이 많이 건강해진다.
순수한 자연의 모습은 때때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일하다보면 외떨어진 농가의 검정개가 놀러와서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새들도 자주 보이는데 조그마한 박새같은 새가 유난히 꽁지가 긴데
좌우로 한번 흔들면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게 아니다.
나를 무서워 하지도 않는지 몇미터 근처에서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춤춘다.

그렇게 포도나무는 덥수룩한 가지를 털어내고
깊어가는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며 단정하게 자리를 잡는다.
비그친 이른아침 구름은 산아래까지 내려와 노닐다 태양이 깨우면 사라지고
일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드넒은 포도밭 너머 저 산 너머로
붉은 석양빛, 노을진 산등성이 너머가 이세상 그 어느것보다 아름답다.
내마음에도 조금씩 봄이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