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72)

by 최화수 posted Nov 26,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32>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토담집(2)

불일폭포는 쌍계사를 거쳐 오르게 돼 있다. 하지만 목압마을에서 국사암을 거쳐 오르는 것이 더 빠르다. 국사암 사하촌인 목압마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 화개천에 교량조차 없었다. 큰 자연석의 징검다리로 건너다니고는 했다. 이 마을은 진감국사가 나무 기러기를 날렸더니 보금자리 삼아 앉은 곳이라는 좋은 전설도 지니고 있다.

쌍계사와 국사암 사이에 위치한 작고 한적한 목압마을도 근래 급작스런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마을 앞 화개천에 묵직한 시멘트 다리가 걸리고 포장도로가 마을 안까지 들어섰다. 무엇보다 괴물처럼 거대한 모텔이 들어서면서 잇달아 음식점이 늘어났다. 사하촌의 정취가 상업시설물들에 의해 잠식된 것이다. 전통 한촌의 매력도 사라졌다.

하지만 변규화님은 이 마을에 오히려 시대를 역으로 거슬러올라 정겨운 옛 토담집을 자신의 손으로 한뼘한뼘 쌓아 지어낸 것이다. 그이는 따로 하는 일이 없으니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다면서, 굳이 다른 인부의 손도 빌리지 않고 오직 혼자서 그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아들 주성호씨 가족의 보금자리를 위한 '어버이의 사랑'의 결과이리라.

불일평전 오두막에 함께 기거하던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목압마을 새 집에 이사시킨 변규화님은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불일평전에 아들 가족이 함께 있으면 변규화님은 더 좋겠지만, 자신보다 아들 가족의 안정을 바라는 부정(父情)이 앞섰던 것이다. 목압마을의 이쁜 토담집은 '아버지 사랑의 집'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토담집이 몇 해 가지 않아 빈집으로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불일평전 2세로 언제까지나 지리산을 지키겠다던 주성호씨 내외가 서울로 직장을 얻어 옮겨간 때문이었다. 물론 변규화님이 그토록 이뻐하던 손자 손녀도 함께 서울로 옮겨갔다. 하지만 변규화님은 아들 가족이 서울로 간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변성호씨 내외는 서울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훌쩍 자란 손자 손녀도 서울의 학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고 있단다. 자신이 애쓰고 땀흘려 지은 그 토담집이 비록 빈집으로 있더라도 아들 가족이 행복하면 그게 더 좋다는 어버이의 정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물론 변성호씨 가족은 언젠가 다시 지리산에 돌아올 것이다.



Articles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