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3)

by 최화수 posted Feb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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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해주소서!"
                         (2월15일)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해주소서!"
덕천강변 '달집' 앞에서 나는 작은 소망을 기원한다.
대보름날 덕산 본동의 달집태우기!
달집 앞 제상의 돼지머리에 돈을 꿰놓고 절을 한다.
(이제부터 나도 '덕산 사람 되기' 연습이다!)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막걸리 떡 두부 고기도 푸짐하다.
마을유지 마을청년과 술잔을 주고 받고...!
서로서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글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소망한다.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해주소서!"
이웃사촌이란 친척보다 좋은 법이다.
인정을 담은 소쿠리를 토담 너머로 주고받고...
밤샘 얘기에도 또 할 얘기가 남아있는 이웃을!

대보름은 우리 민족의 '밝음 사상'을 반영한 명절이다. 달을 보고 농사를 짓는 우리에게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적극적 마을공동체 명절이었다.
덕산의 올해 대보름 달맞이 달집태우기에 마음먹고 참여했다.

"달집에 제가 불을 지핍니다!"

'지리산 오두막 한 채의 꿈'을 심어준 주성호님(대원사주차장 덕산상회)이 덕산 본동의 '달집태우기'를 주재한다고 했다. 그는 나더러 달집에 소원도 빌고, 덕산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라고 말했었다. 아주 바람직한 일이었다.

덕천강변에 엄청난 크기의 달집이 세워져 있었다. 대나무와 소나무, 잡나무와 짚 등을 차량 열대 분이나 실어날라 만들었다고 한다.
사물놀이 장단과 어깨춤이 푸짐한 음식들과 함께 명절 분위기를 북돋운다.

'소나무'님과 함께 구곡산 시산제를 끝낸 나는 이곳에서 '가인', '사니조아'님을 만났고, 주성호님의 안내로 달집에 인사도 올리고, 마을사람들과 술잔도 나누었다.
나이 든 사람, 젊은 사람...덕산 본동 주민들과 잠깐씩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뜻밖의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강변 주차장의 유조차에서 파이프로 달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유조차 옆에는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달집에 기름을 끼얹다니...!!!
달집 타는 모양으로 한해농사를 점친다는데, 유조차 기름이라면 만사휴의가 아닌가.
달집 불에 콩 볶아먹던 옛생각이 스치면서 나는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났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나와보니 달집 잔해가 유령처럼 불길에 일렁거린다.
하지만 사물놀이패도 주민들도 이미 어딘가로 가고 없다.
바로 옆 '천왕봉 나이트클럽'에선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일행과 작별하고 혼자 차를 몰고 귀로에 올랐다.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해주소서!"  

나의 이 작은 소망이 어쩐지 공허하게 생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