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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9.12.23 19:00

벽소월야(2)

조회 수 2457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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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를 보충한 후 삼정방향으로 내려섰습니다. 소금장수길 입구 헬리포트가 가장 좋을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판단이 옳았습니다. 주능을 벗어나 조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하늘이 뻥 뚫린 너른 공간이어서 벽소의 푸른碧 밤宵을 즐기기에는 그만이었던 것입니다. 차선이 최선이었던 것이지요.

인간사 이런 일 허다하지만 사람들은 늘 불평불만 투성이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아니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습성 때문입니다. 방금 잡힌 황금잉어보다는 조금 전 놓쳐버린 피라미새끼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심사와 마찬가지이지요.


B형

성찬을 즐긴 후 자리를 폈습니다. 벽소의 월야를 즐기기 위함이었지요.

벽소월야碧霄月夜, 명칭이 그럴 듯하여 옛 시인의 정취가 떠오르는 그런 성어成語지만 1972년 연하반煙霞伴을 이끌었던 우종수 선생님이 열 개의 장소를 정의하고 명명했으니 불과 반세기도 채 되지 않은 용어입니다.

그렇다해서 십경의 의미마저 얕다는 예기는 아닙니다. 다만 어느 산객들 입을 오르내리면서 옛 선비들의 싯구에서 추려낸 그럴듯한 문장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까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오늘밤 잠자리 선택은 정말 옳았습니다. 저 많은 별들이 다 내 차지가 될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올라 황홀할 지경입니다.

산란하는 불빛에 숨어버린 별이라도 있을까봐 이마불마저 꺼버렸습니다. 누가보면 욕심사납다 할지 몰라도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B형과 함께한 그날의 추억에 동화되는 것이요, 지금 누리는 적요 속의 자유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밤에 어울리는 경치치고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가 또 있을까요? 도심의 휘황한 내온이 이만할까요? 하늘로 솟구쳐 산개하는 폭죽이 이만 할까요?

도심을 기웃거리는 혹자는 그렇다 할지 몰라도 내갠 전혀 관심 밖의 일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순간의 쾌락에 휘둘리면 후에 허무가 더 깊게 밀려오기 때문이지요.

어둠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때론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하고, 이 못난 허물을 덮어주기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게도 하지요. 어머니, 친구, 연인... 하다못해 오늘아침 우연히 스쳐 지나간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이 어둠속에 비단옷을 입었으면 어쩔 것이며, 황금목걸이를 걸었으면 어디에 쓸 것이며, 양귀비같은 미색을 가졌으면 또 뭐할 겝니까?

지금 있는 저 별과 달과 살랑대는 바람과 조그맣게 속삭이는 나뭇잎 구르는 소리, 그리고 함께 나눌 술 한 잔이면 그만이지요.


B형

그날 밤도 달이 참 많았었습니다. 장천을 흐르는 달이 만월이었으니, 술병에 이지러진 달도, 술잔에 녹아든 달도, 눈동자 속에서 껌뻑거리던 달도, 가슴속에서 울렁거리던 달도 모두 푸른 만월이었습니다.

우리에 인생은 고달프다 푸념도 했었지요, 시류를 잘못타고 태어났다 한탄도 했었지요, 개탄스런 정치판에 욕지거리를 해대고, 사랑의 열병에서 헤메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그 시절이 그렇게 허무하고, 심각하고, 감당이 되지 않아 절망 속을 살아온 것 같으면서도, 탈피의 고통이나 계기를 삼을만한 뚜렷한 자각증상도 없이 현재에 와있는 것을 보면 한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뿐만아니라 양키촌에서 흘러나온 플레이보이지를 훔쳐보거나, 켄트KENT 담배를 단속반 몰래 숨어 피던 생각을 하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무엇일까요? 지금 이렇게 초연할 수 있는 원동력이...

그렇습니다. 하늘 내川를 흐르던 그 은하수가 우리 젊음의 분화구에서 흘러 내려온 욕구였다면, 새벽을 가르며 떨어지는 별똥별은 아쉬움은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해야하는 우리 삶의 나이테겠지요.

이제는 개혁보다는 변화에,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희구하는 마음을 두루고 있는 테두리처럼......

하늘에서 별이 떨어집니다.


새벽에 뇨기를 느껴 눈을 떳을 때는 구름사이로 달이 흐릅니다.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는 SF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달과 구름의 숨바꼭질이 치열합니다.

저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이 어둠의 끝이 말해 줄 겁니다. 요란해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느지기 아침을 먹고 하산지점을 궁리합니다.

오늘은 내려서면 그만이니 도솔암을 택했습니다.

주능을 걸어 삼각고지에서 숨을 돌린 후 영원능을 걸어갑니다. 사람이 없는 지리산길은 적막하기만 합니다.

별바위봉을 지나서 도솔암 지능선을 차고 내립니다.

산모롱이를 돌아드니 본당과 요사채 사이로 나옵니다.

스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시절 동계에 후배들과 칠암자를 오르면서 두 번이나 신세를 진 일이 있었는데 여름휴가에 꼭 놀러오라는 스님의 당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후 서너 번 그곳을 찾았었지만 안거중이어서 뵙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도 인연은 닿지 않을 모양입니다.


예서 영원사 골짜기까지는 한달음입니다. 길은 지게라도 지고 오를만치 넓게 닦여져 있고 말입니다.

오랜만에 산중에서 깊은 잠을 뉜 날이었나 봅니다. 이틀간의 걸음에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고, 하늘이 더 파랗게 보입니다. 부자바위가 키발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잘 가라는 듯 말이죠.

다시 산에서 함께 뉠 날을 기다립니다. 추억을 회상하며 우리 세대의 추억을 다시 새겨 봅시다.


음정에서

- 구름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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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eon 2009.12.23 23:04
    별이 흐르는 벽소능선에서의 하룻밤이 참 다른 세상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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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2009.12.24 09:32
    자연은 사람을 맑게하는 뛰어난 힘을 갖은듯 합니다.
    특히 캄캄한 하늘에서 빛을 내는 별은 특히 그렇구요.
    젊어서 하늘의 별이되신 김광석(빛나나는 돌 그래서 별이래요)님의 노래가 듣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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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난 2009.12.24 19:52
    언젠가 천왕봉 홀로 비박하며 올려다 보던 밤하늘
    총총하던 별들이 생각납니다.
    걸은 발걸음 눈에 선하고 조용한 벽소 월야의 모습에
    빠진 구름모자님의 모습 또한 선명하게 전해져 옵니다.
    오랜만의 좋은 글 차분히 읽고 즐거움에 잠겨봅니다.
  • ?
    선경 2009.12.31 18:05
    한편의 단편소설을 대하듯~~
    추억을 회상하며 빛나는 별빛과~~구름사이로 흐르는달빛~~
    우리세대의 추억이
    벽소 월야 속으로
    흐르고~~시간 또한 흘러서~~삶의 나이테로~~
    구름모자님의 산행기의 묘한마력속으로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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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2010.01.02 12:02
    아 ! 그립습니다. 저도 한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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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eon 2010.01.02 15:04
    회색님 이런 노래 있죠???""그리고 추억이 있는한 당신은 ~~~~"
    그랬었던 한때가 있는 한 회색님은 늘 산과 함께 이신거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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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2010.01.03 10:31
    산불조심 하이시더
    모든 산을 가슴에 품고사는 사람은
    산에 들든지 산에 들지 안든지 다 산사람입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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