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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골은 지리산 동부 중봉에서 써래봉-구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일명 황금능선이라 불리우는 자락에 기대어 있는 지계곡이다.

해발 일천인 국사봉에서 시작하여 골의 깊은 맛은 없으나 해발 일천오백인 써래봉에서 시작하는 장당골과 한 몸이 되어서도 제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천왕의 기운이 국사로 스며들어 내원에 더 많이 내려 앉자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원이란 수미산꼭대기에 있는 미륵불(또는 사바세계로 내려올 모든 부처와 보살)이 거처하는 곳이다. 굳이 연상하자면 빈곤과 학정에 시달리던 민초들의 피난처라는 의미의 지리산 깊은 골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여 내원사가 있어 내원골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기록으로 볼 때 이 골짜기에 절이 들어선 것은 1,300여년전 신라 태종 무열왕때 무량국사가 창건한 덕산사이다. 덕산면도 이 덕산사에서 유래했다.

창건 이후로 10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현재 12개의 절터가 흔적을 남겨 놓고 있는 걸 보면 한때 융성했던 절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5백 여년 전 화재 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959년 원경圓鏡스님에 의해 재건되어 내원사內院寺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된다.

다만 행정기관에서는 원지명을 따라 내원사內源寺로 표기하고 있다. 애초 스님이 덕산사를 재건했다면 몰라도 지명의 ‘내원內源’보다는 불교적 의미의 ‘내원內院’이 맞을 성 싶다.



내원사에는 석남암수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南巖藪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라는 긴 이름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원래 이 비로자나불은 내원사가 주인이 아니다. 일명 치밭목능선이라 불리는 줄기의 1,011봉우리 아래 석남사지에서 옮겨온 것인데, 600여년을 방치되어 오다가 평촌리 이모씨 형제에 의해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내원사에 봉해져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후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주민 조모씨에 의해 좌대와 광배가 발견된다. 이때서야 좌대 안에 봉안되어 있던 사리함과 토기항아리에 새겨진 문자가 해석되고 제작연대가 밝혀진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비로자나불은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와 함께 보물급으로 격상되고, 사리함은 국보로 지정을 받게 되었다. 나라의 보물이 물질적 가치로만 보여졌던 무지한 자들의 욕심 때문에 자칫 잃어버릴 뻔했던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아직도 그 절 터에 나뒹구는 석탑 잔해처럼...



대포리에서 금피정을 지나 내원사를 이르기 전에 조성되어 있는 내원야영장까지는 번듯한 2차선이 나있다.

현대적 시설이 가미된 야영장을 지나면 너른 주차장이 있고 장당골과 내원골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내원사가 있다. 명당의 전형인 배산임수자리다.

여기서 장당골은 우측의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데 최근 수달의 서식지와 공단에서 방생한 반달곰의 보호를 위하여 영구휴식년제로 지정해 놓고 차단기로 막아놓은 반면, 내원골은 좌측으로 제법 가파른 골짜기를 오른다.

당초 광산개발을 위하여 만들어진 도로였으나 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마을안길로 전락한 길이다. 콘크리트포장이 안내원까지 되어있어 차량이 무리없이 오를 수 있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규모있는 현대식 건물이 몇 채 들어서 있다.



이 길은 지금은 전혀 믿기지도 않지만 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요 근세까지만 해도 천왕봉을 오르는 통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덕산에서 애둘러 중산리까지 갈 필요가 없이 삼장면 소재지인 대포리에서 내원동을 지나 국수재를 넘으면 법계사가 산중턱에 있고, 여기서 천왕봉은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안내원은 국사봉에서 내리는 짧은 지능이 끝나는 곳에 있다. 올라왔던 좁은 계곡과는 달리 조그만 분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해발 약 600정도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화전으로 일구어진 논밭뙤기가 조금 보이고, 지능 양쪽으로 흐르는 골짜기는 삼국시대부터 절들이 자리하여 절터골이라 부른다.

아직도 남아있는 외탑이라는 지명이 그 내력을 알려 준다. 그러나 지리산 여느 골짜기처럼 수려하진 않다.



안내원은 지금이야 번듯한 건물들이 몇 채 들어서있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귀틀집 10여 채가 전부였다.

지금은 차단기 앞에 다 쓰러져가는 한 채가 전부여서 예전의 그 느낌은 사라져 버렸지만 이 곳은 아직도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오붓하고 정감있는 지리산 여느 산촌마을 같지 않고 왠지모를 쓸쓸함이 베어있음이 마을입구 정순덕과 관련된 표지판에 남아있다.



산중의 독가촌이 그렇지만 보잘 것 없는 터에 해발마저 높아 자급자족은 어차피 힘들었을 터였다.

그러니 이 깊은 산중을 찾아든 사람들은 범인은 아니었다.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현실정치에 직접 부딪치지 못하는 유생이거나, 어차피 어지럽고 힘든 현세의 호구지책보다는 후세에 안녕을 위하여 들어온 비결파들이었다.

때를 기다려 태평성대에 만인이 모두 평등한 세상, 불국정토의 도솔천을 꿈꾸던...



(계속)

  • ?
    우인 2009.08.05 09:49
    삼장면 소재지인 대포리에서 내원동을 지나 국수재를 넘으면 법계사가 산중턱에 있고, 여기서 천왕봉은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구름모자님~~ 그길을 지금도 갈수있는지... 꼭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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