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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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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내골의 실질적인 오름은 여기서부터 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산비탕아래 조성해 놓은 밤나무 단지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얼마가지 않아 만나는 두물머리에서는 우측 와폭지대를 따라 오르게 된다. 유실수가 심어져 있는 탓에 산길은 어느정도 정비되어 있다.

지리의 곁가지에 붙은 제일 끝머리, 해발 1200m에서 내리는 지계곡이어서 그저 그렇겠지 하였다면 크게 후회 할 수 있다. 초입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일지 몰라도 깊이가 깊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골짜기를 사오십 분쯤 오르면 앙증스런 와폭 하나가 길을 막는다. 하긴 지리산에서나 있으니 철부지 어린애처럼 이름도 없이 촐싹거리고 있을 뿐이지, 여느 산 같았으면 건사한 이름 하나 얻어 뭇 풍류객들이 시 한 수라도 흩뿌렸을 만한 폭포이다.



높이 4~5m 자그마한 와폭이지만 지리산이기에 철부지 어린애 같아 더욱 반갑다




이곳을 지나면 계곡의 느낌이 약간 달라진다. 뭐랄까? 깊다는 느낌, 지리산 같다는 느낌, 인간의 등살에 놀란 짐승들만이 숨어살거나, 아님 그 속에서 태어나 사람구경하지 못한 짐승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또 하나의 두물머리를 만나면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여기서 환청幻聽을 듣는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 듯 두물머리를 지나쳤을 뿐인데 어디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가뭄으로 계곡물은 말라버린 지가 오래고, 낙엽의 속삭임도 분명아니었다.

가을을 설워하는 스산한 바람소리도 아니요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싯기는 소리도 아니었다. 분명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었다. 마치 숨바꼭질하다 들켜 키득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술래가 찾아오자 서로 더 깊이 몸을 숨기려는 장난질과도 같았다.

그런 느낌의 정점에 멀찍이 벽이 하나 보인다. 다가가 보니 폭포였다. 끊긴 물줄기가 더 이상 숨어있지 못하고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였다. 족히 2~30m는 넘어 보이는......

잠시 땀을 들인 후 벽을 타고 오른다. 사방이 온통 벽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 벽을 넘어서면 커다란 동굴이 하나 나온다.

신세계를 만나 듯 조심스레 그곳을 지나면 이번엔 그 보다 훨씬 더 큰 폭포가 앞을 막는다. 높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동굴을 빠져 나오면 높이를 알 수 없는 폭포가 가로 막는다




알 수 없는 게 지리산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도 한 몫했겠지만 지리의 지능 한 자락에 그어진 물줄기를 찾아 왔을 뿐인데 저 거대한 폭포는 무슨 연유로 여태 사람 눈에 띄지 않았으며, 앉아서도 지구촌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세상,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세상에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혼자만의 사색을 하고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폭포 앞에 서면 우선 그 높이에 기가 질린다. 오름길 역시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래에서 쳐다보아야하는 한계에다가 끝머리 부근은 넓은 통로가 있는 듯도 보이고 벽이 막고 있는 듯도 보인다.

이 거대한 폭포에서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좌측 사면으로 오를 일이다. 그래도 이곳은 듬성듬성 잡을 거리와 단을 이루는 바위턱이 있기 때문이다.

폭포를 그냥 쳐오를 요량이라면 처음엔 우측사면을 붙어 올라야 한다. 물길이 자릴 잡고 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요즘 같은 가뭄엔 슬랩 사면을 거슬러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단부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직벽이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좌측으로 이동하여 사면으로 붙어야 한다. 제일 마지막엔 짧은 벽을 올라야 하지만 고맙게도 고로수 파이프가 보조자일 역할을 대신한다.


폭포를 우회해도 이런 사면을 올라서야 한다



폭포를 마무리하면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길이 다시 나타난다. 서울대연습림이었던 관계로 듬성듬성 붉은 리본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로쇠채취꾼들의 발길이 더 잦았던 것 같다.

폭포를 끝으로 경사는 한결 수그러들고, 유심히 살펴보면 알탕알탕 길이 이어져 있다. 게다가 마지막 햇살을 즐기려는 단풍잎이 손님맞이를 준비해 놓은 듯 최고조에 달해있다.

늦가을 이 경치를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만이 알고, 우리만이 즐기고,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이런 풍광은 아무도 모르는 ‘큰물내’를 거슬러 저 커다란 동굴을 지나고, 철옹성 같은 성벽을 넘어서는 자에게만 향유할 수 있는 이런 느낌을 내 재주로 백분지 일이라도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평온하던 길이 경사가 급해지면서 고로쇠 파이프가 끝나면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미 정점이 보이고, 우측 지능이 성큼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올라서는 곳은 왕시루봉과 봉애산 능선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거기서 왕시루봉은 일척간의 거리나 마찬가지다.


한수내, 이 골짜기를 오르면서 느낀 내 감정은 무릇 사물은 겉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형상으로는 전혀 깊지 않을 것 같고, 큰 물 질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깊다’와 ‘크다’가 인간이 제도해 놓은 산술적 계산만으로는 답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아이가 혼자있을 때의 두려움과 엄마 품에 안겼을 때의 기쁨을 계량할 수 있을까? 이 골짜기는 들어서는 느낌과 들어서서의 느낌, 그리고 오르고 난후의 느낌이 다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들어서, 어떤 생각으로 오르고,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느낌은 그곳이 ‘큰물내’가 맞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듯 긴장의 연속이었고, 신세계를 만나 듯 어둠을 지나 철옹성을 넘었느니, 어찌 큰 물 지는 골짜기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리산의 참 계곡이었다.





- 구름모자 -





신세계로 들어가기 전 동굴 모습이다




  • ?
    moveon 2008.12.01 20:10
    지리산의 새로운 모습에 자꾸 놀라고 있습니다. 마른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잇군요. 건강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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