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7.23 15:56

'지리산 일기'(41)

조회 수 88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8> 비오는 날의 수채화(3)
                        (7월5일)

'꽃대궁 여린 꽃잎 분홍빛 그리움도
인연의 골짜기를 스쳐가는 바람일 뿐
기다림 내려놓지 못해 긴장하는 꽃이여.

억겁을 기다린들 볼 수 없는 제 꽃과 잎
꼿꼿하게 솟아올라 자존 지킨 꽃대로도
서러운 병은 깊어라 뿌리까지 검게 탄다'
                 <김언양 / 상사화에 붙여>

지리산 가는 길에 쌍재 '공수'님에게 전화를 냈다.
일하기에도 바쁠 '공수'님 내외를 시천으로 내려오게 했다.
너무너무 순수한 '공수'님, 그와 부창부수로 잘 어울리는 부인이다.

'초암'님은 초빙 교수와 함께 집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뒷산은 구름에 가렸지만, 마주 보이는 산들은 파란 숲을 드러내고 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빗물을 흠뻑 덮어쓴 산과 들과 마을...갓 그려낸 수채화 같다.
풍수지리학 교수님도 저 그림을 수채화로 보는 것일까?
'좌청룡 우백호'보다 나에게는 그냥 한 폭의 수채화가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교수'님과 거리를 멀리 했다.

나는 '공수'님을 이끌고 바로 옆 계곡으로 갔다.
'선녀탕', '옥녀탕' 하고 멋대로 불러본 곳에 하얀 포말이 회오리쳤다.
계곡 옆 둔덕에는 차나무, 감나무 묘목들이 싱싱하게 자란다.
취나물 고사리 채송화 등이 서로 어울려 장난치고 있는 듯하다.

"장마비로 쌍재는 더욱 푸르러졌겠네!"
"녜!"
사람 좋은 '공수'님 내외는 쌍재의 송림 향기와 같은 웃음을 짓는다.
이 귀농 부부는 날마다 밭일에 염소 돌보기로 얼마나 바쁠 것인가.
'공수'님 오두막을 둘러싸고 있는 쌍재, 왕산의 무성한 수림!
지난 6월 하순 그 숲에 밤새도록 엄청난 비가 쏟아지지 않던가.
그 날 밤 나는 거의 뜬눈으로 그 빗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초암'님은 손에 무엇을 들고 집터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었다.
가만 보니 수맥(水脈)을 찾는 봉침이다.
뒷산과 앞산, 하천 등을 일일이 살펴보고 수맥까지 찾아보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진지할 수 있는지ㅡ놀라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나는 풍수지리학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선율에 잠겨들고 있었다.
빗물이 그려낸 수채화에 '공수'님 오두막의 빗소리가 더해진다.
그러니까 그 소리가 들려왔다.
"산이 보이지 않아요!"
산속에서 산이 보이지 않는단다...그 전화 목소리가 문득 음악을 떠올려주었다.
아, 너무 아름다워 슬픈 음악! 너무 슬퍼 아름다운 음악!

'비오는 날의 수채화'-그 주인공은 산속에서 산이 안 보인다고 소리친 그이다.
지성, 낭만, 순수, 그리고 정열...!
보로딘(Alexander Borodin)의 현악4중주(string quartet) 2번, 특히 3악장이다.
보로딘의 직업은 화학교수였다. 음악은 취미로 했다는데,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곡을 쓸 수 있었을까?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여행 중에 미래의 아내 에카테리나 프로토포포바를 만난 때문인지도 모른다.
쇼팽, 리스트, 슈만을 경애한 피아니스트인 그녀의 지성이 보로딘에게 끝없는 음악적 영감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나도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얻고 싶다.
그이로부터 더 큰 감동과 감명, 기쁨을 얻고 싶다.

보로딘의 현악4중주 2번,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 겹쳐진다.
지성과 낭만, 순수와 정열...그런 그이 모습이 또한 겹쳐지는 것이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지리산 일기'(41) 최화수 2003.07.23 883
15 '지리산 일기'(42) 최화수 2003.08.01 1012
14 '지리산 일기'(43) 3 최화수 2003.08.06 1035
13 '지리산 일기'(44) 최화수 2003.08.11 1120
12 '지리산 일기'(45) 1 최화수 2003.08.18 1001
11 '지리산 일기'(46) 6 최화수 2003.08.20 922
10 '지리산 일기'(47) 3 최화수 2003.08.24 1070
9 '지리산 일기'(48) 2 최화수 2003.09.09 2681
8 '지리산 일기'(49) 2 최화수 2003.09.26 1215
7 '지리산 일기'(50) 2 최화수 2003.10.07 1254
6 '지리산 일기'(51) 5 최화수 2003.10.29 1262
5 '지리산 일기'(52) 4 최화수 2003.11.06 1146
4 '지리산 일기'(53) 3 최화수 2003.11.14 1180
3 '지리산 일기'(54) 2 최화수 2003.11.27 1226
2 '지리산 일기'(55) 1 최화수 2003.12.12 1332
1 '지리산 일기'(56) 5 최화수 2003.12.28 159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