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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지리산 오두막 한 채를 꿈꾸다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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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동천 신흥마을에 '三神洞(삼신동)' 각자를 남긴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은 나의 중시조이십니다.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 명석한 두뇌로 신라인 최초의 중국관리가 됐었지요. 그이가 중국 땅에 떨쳤던 문명(文名)은 저 유명한 '격황소서(擊黃巢書)'가 대변합니다. 반군 두목을 문장으로 격침시킨 것입니다.

그이는 29세 때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신라 사회는 병들대로 병들어 붕괴 직전이었지요. 그이는 스스로 외직(外職)을 원하여 함양 등 변방 태수를 지냈습니다. 894년 고운은 시무책(時務策) 10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그의 개혁안은 부패 정권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요.

그이는 44세가 되던 효공왕 3년(899년) '청산맹약(靑山盟約)' 시(詩)를 남기고 산으로 떠났지요. '스님이여, 산 좋다 말씀마오. 이렇게 좋은 산을 낸들 어이 떠나겠소. 뒷날 내 자취 시험해보구려. 한번 들면 또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다.' 고운은 한번 들면 다시는 되돌아나오지 않겠다고 맹약하고 산으로 들어간 거지요.

실제로 그이는 '청산맹약' 시 이후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이는 먼저 가야산으로 들어갔지요. 홍류동 계곡 등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지요. 그 뒤로 가야산과 지리산을 오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아니, 그이는 지리산에서 신선이 되어 지금까지 1,000년 세월을 영생(永生)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옵니다.

고운은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지리산에 입산했던 것입니다. 그이의 입산 철학은 화개동천의 '세이암(洗耳岩)'이 짐작케 해줍니다. 그이에 비한다면 나는 너무나 한심한 것이었죠. 무슨 철학, 무슨 이치로 산에 들려고 하는가? 생각하기마저 부끄러운 노릇이었지요. 삼신동 각자가 새겨진 신흥마을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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