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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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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네 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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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이 사이트를 통해 저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
저의 근황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요즘의 본심을 나타내는 것이라,
이를 저의 고백의 차원에서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저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는
최근 제가 아는 형에게 보낸 편지글로
저의 심정을 묻어가려 합니다.



1.

K 형
메일을 받고, 그리고 읽고는 잊혀져가는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한세상 태어나 일관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참 올 곶은 일이라 여기는 미덕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90년대 초에 저는 김광석의 노래를 참 즐겨들었습니다.
2000년 초반 두레를 나오고
나는 이제 내가 계획했던 나의 길을 가련다는 다짐을 가졌고,
나온 후에 한동안은 갈피를 못잡았습니다.

김 목사님을 만나고 그 분의 삶의 모습에 매료되어 7년여를
두레마을에서 살아왔지만 떠났다고 생각했음에도
그 기억이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난 베드로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함께 먹고 자고 쫓아다니다가
갑자가 그 분이 떠나간 이후 쓸쓸히 자기의 길로 돌아서던
요한복음 21장의 대목을 떠올립니다.
“에이 이제 고기나 잡으러 가련다.”

마치 그 대목이 김광석의 노래말 “거리에서”처럼
베드로의 고백일지도 모르며,
쓸쓸히 돌아선 한사람 저의 독백으로 들려진 것입니다.
(그의 노래를 인터넷에서 찾아 들으면 참 감성적으로 더 좋겠지만,
따붙이는 법을 몰라 그냥 보냅니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뭐라 말하려 해도 기억하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 와요

(후렴)-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 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께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가요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을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지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정열적으로 함께 살다 그 그리운 삶이 꿈결같이 허무하게 느껴진 사람.
그 사랑의 기억이 단지 추억으로만 남겨지고
점점 시간 속에 잊혀져가는 것이 아쉬워 눈물 흘리는 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영원의 세계로 가버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베드로의 답답함이
바로 깨닫지 못하고 쫓아다니기만 하는 저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그는 정의에 찬 남자였고 의리에 충정어린 이였지만
아직 주께서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성정에 충실한 눈물짓는 이였습니다.
나 역시 ‘성령을 믿는다’ 고백하나 깨달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

K형, 잠시 더 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내가 평생을 걸쳐 쫒아가는 일이 있다면
아마도 길(道)을 찾아 나선 일입니다.
난 나름대로 잘 무장된 감성과 이성을 훈련시켜왔으며
그 지혜안에서 나름의 믿음의 체계를 만들고
내가 믿는 예수의 확신을 고백해 왔습니다.

80년 학번이 모두 공감했을
민중 속에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의 삶을 쫓아다녔습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쫓아
생태환경을 지킴이 나의 길 중 걸어야 할 중요대목이라 여겼습니다.
넌더리나는 체제교육이 신물 나, 다른 대안교육체계를 꿈꾸며 보내왔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스터디바이블과 성경주석을 편집하는 일을 경험하고
월간목회에서도 근무하며 다시 났다는 목사님들도 만나며
내 생각에는 그래도 열심히 예수 도를 찾아가는구나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성령의 신비를 은혜로 깨닫고는
이전의 나는 내가 쌓은 허구에 찬 믿음의 한계에 놓였었음을....

저는 작년 11월 중국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신장수술이 85%의 성공률을 가진
장기이식 수술 중에는 그래도 최고로 안전하다는 부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전 실패했고
결국 신장은 물론 심장도 멈추고 폐에는 물이 차 모든 신체의 기능이 한때 멈추어
이른바 ‘죽었다’고 하는 임사경험을 하였습니다.
깨어나 보니 의사들이 어떻게 조치했는지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 나는 너무나 이 육신이 고통스러워 죽기를 간청했습니다.
옆에서 아내가 우리 아들과 딸을 기억하라며 격려하고
온 교우들이 기도하고 있다고 전해주어도 난 지치고 힘들어 차라리 죽기를 구했습니다.

난 작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귀중함보다는
죽기를 간구하는 믿음 없는 목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목사가 되었어도 내가 잘 세워놓고 고백해온 믿음대로 살고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처럼 그 안에서 자고한 나였습니다.
성령을 고백하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치 못한
성령체험 없는 목사였습니다.

깨어난 이후 줄곧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꼼짝없이 중환자실 침대에 사지를 묶여 체내 산소 공급을 강제 호흡기에 맡겨져
겨우 연명하며 고통에 시달리고는 계속 하나님께 더 좋은 곳 가기만을 고집했습니다.
어느덧 호흡기가 떼어지고 스스로 숨쉴만한 정도가 되자
갑자기 지난날의 모든 것이 필름처럼 돌려졌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줄줄 흐르고 너무도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그간 잘못 살아왔음을 어디다 말할 곳도 없고...며칠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지 모릅니다.
누가 찾아와서 말만 걸어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 이게 바로 회개의 영이 내게 임한 것이로구나! 생각되었습니다.

회개의 영이 임하고
저는 정말 하늘을 보았습니다. 3일간 여기 아닌 다른 세계를 보았습니다.
무익하나마 부득불 말할 수밖에 없다는 바울의 심정처럼
셋째하늘에 대한 이야기(고후12장1절)를 불필요한 고백인 것처럼 말하던 바울.
저도 역시 그 곳을 본 후 할 일이 많다고 여겼습니다.
내가 일어나면 ‘내가 본 바요 만진 바요 들은바’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하여야하는가를 묻던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세월만 헤아린 미련한 자였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저를 직접 찾아오셨을 뿐입니다.
내가 이전에 믿어왔던 이성의 체제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내가 감성과 이성에 의해 비쳐보았던 어렴풋한 그분이
보일 듯 보이지 않던 청동기시대의 거울에 계신 흐릿한 그분이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 또렷했습니다(고전13:12).
마침내 내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내가 “마침내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롬6:22).

과거 두레마을에 있을 때 달걀을 병아리로 깨나게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미닭 품에 있으면 손쉬운 일을
인위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깨우자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름을 꼬박 알을 지켜보며 온도계로 재보고
적절한 열이 식으랴 보온밥통에 전구를 켜주고,
이리저리 알을 굴려 골고루 온도가 미치도록 정성드려 지켜보아야 하는 일입니다.
알이 깨나도록 자기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물론입니다.
마침내 한 생명이 알을 깨고 소리를 냅니다.
새로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김 목사님은 ‘나’ 라는 알에서 깨어나게 하신 분이라 여깁니다.
‘이놈 언제나 알에서 깨어나나’ 지켜봐 온 분이십니다.
길게 15년간이나 지켜보아오며 훈계와 제가 알지 못하는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신 분임을 제가 알에서 깨어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깨어난 후 나의 “스승을 주께 하듯 하라”는 성서의 말씀이 생각나
목사님을 다시 뵈었는데 그냥 눈물만 줄줄 흘렀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라”던 그 이야기가 남에게만 한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내 문제만 집착해 살아오던 내가
다른 이의 영혼을 안타까워 하는 영이 임한 감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렇게 깨어나게 그간 지켜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눈으로 먼저
그리고는 눈물밥을 삼키며 울먹거리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이제 알았냐? 그럼 됐다. 하나님 일 열심히 해라”
제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빙긋이 웃어주시며 어깨만 두드려 주십니다.
대부분의 세상의 질서 같으면 너는 내게 속해 이 일을 하라고 할 터인데
이제 알았으니 너는 네 할 일을 하라는
마치 우리가 어려서 보아온 무협지의 아련한 선사나 할 이야기로
“너는 이제 네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에는 있을 법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제 화두로 주었을 때
나는 내게 좋은 스승 주신 이가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처럼 내 業인 고기나 잡으러가야지 하던 저였습니다.
주를 다시 만나 뵈고 이전엔 물속에 빠져가던 두려운 베드로가
겉옷만 두르고 물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던 담대한 이가 되었고
마침내 성령께서 임하고는 주의 양을 치러 목숨을 들고 가는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제가 30대 때에 당뇨로 인해 잠시 앞이 안보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망막증으로 눈에 핏줄이 터져 안개처럼 뿌연 윤곽만 보이는 눈으로
북한산 능력봉이라고 하는 보현봉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휜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저녁이었는데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침낭하나 메고 넘어지고 자빠지며 그 산에 올라갔었습니다.

그 밤에 제가 본 환상이 있었는데
제가 내 해골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해골 속에서 음표(마치 8분 음표나 16분음표)가 나오는데
그것을 가슴속에 하나둘 갖는 이마다 기쁨에 찬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장에 글씨가 써있었는데 生卽必死(죽으면 살리라)였습니다.
아! 내가 죽어야 다시 사는 것이구나?
이후에 저는 이것이 고전적인 해석처럼
저의 자아가 죽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나의 정욕을 죽이고 나의 욕심과 고집을 죽이면
제대로 된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던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생된 자
니고데모의 질문(요한 3장)처럼 저는 다시 태어나는 重生(거듭남)의 신비를
지혜와 철학으로 어림잡아 믿어왔을 뿐입니다.
근데 아니었습니다. 정말 저는 죽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짜인 나가 진짜인 나로 솟아나야 했던 것입니다.
버러지같이 기어다니던 내가 그 틀을 벗어나 나비가 되어 다시 나는 것이었습니다.
내 자아가 새로워지는 것이 지혜의 소산이 아니라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은 영으로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자가 깨달았던 알에서 깨어나 솟아난 나비처럼
철학적 우화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영적 실제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며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말하는 실제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이 세계의 보이는 물질적 실제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적인 눈을 뜰 때
이 세계와 영원의 세계 양자에 대해 모두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덪붙임 :  이어지는 계속된 편지 글은
            사랑방 안에 계속  쓰여져 있습니다.
            너무 길어서입니다. 이어서 읽고 싶으신 분은
            사랑방 안에 다시 쓰는 나의 이야기 3, 4번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 글로 서로의 종교적 견해가 다른 분들에게는
           혹 그분의 인생사에 또 다른 염려를 주는 것은 아닌지 살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염려는 글을 대하는 분의 마음에 속하는 일이라
           제가 배려해 주기에는 벅찬 일이라 여겨집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보았으며 들었으며 만진 세계라는 것입니다.
            
  • ?
    두레네집 2008.07.12 15:01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길을 찾아 나섰음에도 길을 몰라 헤맨 나날이었습니다.
    방황의 끝이 새벽의 여명같이 오려는지
    보다못해 저의 은사님이
    그만 헤매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만 지쳐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의심의 끝이 없었던 불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삶, 아니 사람의 목숨의 끝에 이르고서야
    나의 죄된 모습이 보였습니다.

    미련하게 저처럼 몸으로 댓가를 지불하지 말고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내면의 눈이 떠져
    세상과 하늘에서 복있는 사람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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