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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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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마을로 면모를 일신한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정경. 별장형 주택과 자동차가 지난날의 마을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위쪽 사진의 주택 뒤편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이 마을을 수호하는 천연기념물 제424호 천년송(千年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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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말댁이 각시바위골 근처 솔밭에서 송이를 발견한 것은 귀남이를 낳기 전해였다. 화전을 놓아 일군 조밭을 다녀오다 소피를 보기 위해 오솔길을 비켜 찾아 들어간 솔밭머리에서 막 볼 일을 끝내고 일어섰을 때였다. 갑작스런 소낙비에 솔가래 썩은 부식토가 패어서 망측스럽게 모양을 드러낸 송이버섯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봉긋한 머리를 발견하고 그녀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위수 씨의 소설 ‘날다람쥐’의 한 대목이다.

소피를 보는데도 송이버섯이 발견된다는 이곳이 곧 뱀사골 지류 깊숙이 숨겨진 마을인 와운동이다.
구름도 누워 간다는 와운(臥雲)마을은 진입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지리산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뱀사골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조차 이 마을이 요룡대의 지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사실을 잘 몰랐다. 등산로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운동 마을의 유래를 앞의 소설에서 또 인용해 본다.

“…우리 조상들은 임진란 때 난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뼈대 있는 선비였니라. 저 건너 점산(店山)에는 가마터가 있었지야. 산데미 같이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쇳물을 녹여 내고 질그릇도 구워 내고 …우리 동네서 쓰는 물건을 뭐든지 우리가 만들어 썼지야.
…그렇게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고, 타관 사람들도 동네에 들어올 일이 없었더니라.
그런데 경술난리(한일합방) 때는 동네에 숨어들어온 의병을 뒤쫓아 왜놈들이 드나들고, 여순(麗順)사건 이후에는 산사람과 토벌대가 번갈아 드나들고, 우리 동네는 이렇게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큰 변을 당했니라….”

이 인용 부분은 작가 강위수 씨가 실제로 와운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정 노인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강 작가가 와운마을을 처음 찾았던 것은 1977년으로 당시엔 20가구 살고 있었고, 덕동국민학교(초등학교) 와운분교가 있었다.
학생 수는 고작 5명으로 3학년까지만 이 분교에서 배우고 4학년부터는 시오리길의 덕동국민학교를 다녔다.

필자가 강위수 씨의 소설 ‘날다람쥐’를 읽고 와운마을을 찾은 것은 다시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른 1989년 여름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0년 전이다.
와운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반선의 전적기념관 바로 옆의 다리를 건너는 데서 시작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뱀사골 제2야영장인데 그 뒤편으로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이어져 있었다.
반선에서 와운마을까지는 3킬로미터의 거리이나 걷기 좋은 길이어서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었다.
  
1989년, 와운마을은 다시 주민이 10가구로 줄어들었고, 와운분교도 학생이 없어 폐쇄된 상태였다.
지리산 산간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와운마을에는 ‘산색시’라는 영화를 한창 촬영하고 있었다. 그 한 해 앞에는 여름 한철 동안 3개 영화 촬영팀이 들이닥쳐 법석을 이루었다고 했다.  

당시 와운마을은 한봉단지로 지정을 받아 10가구 모두 벌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벌써 이 마을은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와운휴게소’란 간판을 내건 집의 인정이 많은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벌 하나로 생활해 왔지요. 그런데 두서너 해 전부터 도회지 사람들이 피서 삼아 몰려들어 와선 뱀탕도 찾고, 염소며 토종닭도 주문을 해서 이제는 집집마다 저절로 민박을 치고 음식을 파는 것이 주업처럼 되고 말았어요.”

뱀사골 요룡대로 흘러드는 지류 하나를 빼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연 요새와도 같은 와운마을.
하지만 1989년 당시에 와운마을 진입도로 개설을 위한 측량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한봉단지에서 민박마을, 나아가 별장마을로 거듭날 청사진을 이미 그 때 그려놓고 있었다.
‘이 마을은 한봉단지로 지정돼 있으나, 도로가 개설되면 벌통을 없애고 방갈로 등의 편의시설을 만들어 사철 휴양지로 탈바꿈할 것으로 전망된다.’(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1권)

2009년 8월, 그로부터 다시 2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와운마을에는 승용차를 몰고 찾아드는 도회지 사람들로 넘쳐난다. 아주 멋지게 지은 ‘별장형 주택’도 눈길을 끌게 한다.
그 사이 이 마을의 천연기념물 ‘천년송(千年松)’을 찾는 관광객도 줄을 잇고 있다.
그렇지만 차량을 불러들이는 마을진입도로가 ‘자연세계의 아름다운 그림’을 망가뜨려놓고 있기도 하다.  
  • ?
    선경 2009.09.19 21:04
    잘지어놓은 현대식별장이 편리하고 멋지지만
    자연과 더불어 어우러지던 산골의 순수함은 사라져버려
    왠지 허전한마음이 드네요
    이아름다운 계절에 좋은일로 가득하세요~~~여산선생님
  • ?
    최화수 2009.09.21 11:13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좋은 일들이 줄을 잇고 있는 듯합니다.
    선경님, 카나다의 가을은 눈부시겠죠.
    좋은 시간, 즐거운 나날이시기를...
  • ?
    박경식 2011.08.11 23:18
    안녕하세요.
    최화수 선생님 청림 박경식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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