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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산책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464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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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3.1절 기념식장에서 민중가요 '상록수'가 불려지고, '친일 반민족행위자' 708명의 명단이 발표되는 등으로 일제잔재 청산 등에 대한 관심이 드높게 일고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 그 당시의 지리산은 어떠했던가?
지리산의 동쪽 들머리 산청 단성면과 서쪽 들머리 구례 광의면에는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두 우국지사가 있었다.
지리산을 좋아한다면 등산이나 유산(遊山)뿐 아니라 이들의 고귀한 정신과 얼을 되새겨보는 것이 앞서야 하겠다.

전남 광양 출생의 매천 황현(梅泉 黃玹)은 황희 정승 후손으로 어릴 때 구례 지리산 자락으로 옮겨와 지리산 사람이 됐다. 그이는 구한말 시국이 혼란한데 크게 실망, 향리로 내려와 신학문 도장 호양(壺陽)학교를 열기도 했다.
매천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여비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5년 뒤 한일합방이 이뤄지자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節命詩) 4편을 남기고 자결했다.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 천은사 입구, 그가 살던 곳에 매천사(梅泉祠)가 세워져 있다.

매천사 바로 앞으로 성삼재 종단도로가 지나간다. 성삼재로 오르거나 천은사를 찾는 수많은 차량들이 그 앞을 통과한다.
하지만 매천사를 찾아보는 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한 것이 현실이다. 지리산 동부 관문인 덕산을 지나치며 남명의 산천재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나 같다.
매천이 우리 근세사를 집대성한 '매천야록'을 남긴 것까지는 몰라도 좋다. 또한 절명시 4수의 내용을 모르고 있어도 좋다.
하지만 지리산 정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그이의 사당마저 모르고 지나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매천에 대해선 뒤에 따로 언급하기로 한다. 구례 광의면에 매천이 있었다면 지리산 반대쪽인 산청 단성면에서도 똑같은 한말의 출중한 우국지사를 배출했다.
지리산이 큰 산이란 것은 그 동, 서 들머리에 큰 인물이 똑같이 자리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구례의 매천 황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은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초포동 태생의 면우 곽종석(郭鍾錫)이다.
면우는 남명의 '지리산 정신'을 꽃피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남명이 살았던 덕산과 바로 이웃한 곳에서 태어난 곽면우는 어쩌면 남명의 삶을 재현해 보인 것이나 같다.
그의 출중한 인물됨을 높이 사서 고종이 여러 차례 관직에 등용코자 했고, 심지어 서울에 거처할 집을 하사했지만, 끝내 사양했다.
고종이 만나보고자 했으나 평복 차림을 고집, 유건과 도포 차림으로 임금을 만났다.
면우는 현종 12년(1846년) 어머니의 꿈에 큰 돌산이 입에 들어온 선몽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처음 이름이 '돌뫼'였고,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비상했고 용모 또한 준수했다.

면우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서울로 달려가 임금에게 매국한 5적의 목을 베야 한다고 상소했다.
그는 또 1910년 나라가 일본에 합병된 것에 분격하여 통곡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919년 '파리장서'를 내게 됐다. 파리장서란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가리킨다.
당시 일본은 한국 유림의 명칭을 도용하여 일본 정부에 ‘독립불원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꾸몄다.
이 일본의 간계를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독립청원서', 이른바 '파리장서'였다.

3.1운동은 국내적으로, 장서운동은 국제적으로 벌인 우리의 독립운동이었다.
면우는 독립청원서 운동의 대표로 추대돼 독립청원서를 지어 전국 유림대표 137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김창숙 등을 중국으로 보내 상해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협의를 갖게 하고 장서를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케 했다. 또한 이 장서를 영, 독, 중, 불어 등으로 수천 장씩 번역 인쇄하여 세계 각국 영사관 및 신문사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래서 세계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게 됐고, 국제여론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 유림단체 검거 선풍을 일으켰는데, 면우 곽종석도 붙들려가서 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그이는 곧 병보석이 됐지만, 그해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면우는 이 나라 유학계의 마지막을 장식한 거유로서 '지리산 선비'의 표상이 되었다.
산청을 '선비의 고장'이라고 칭하는 것도 면우와 같은 빼어난 선비들을 배출한 때문이다. 특히 문장에 능달한 그이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방대한 '면우문집'(165권)을 남겼다.
면우 선생의 지리산 정신이 더욱 빛을 띠는 오늘이다.

  • ?
    오 해 봉 2008.02.13 17:20
    차를운전하면서 성삼재길을 지나다니면서
    천은사근처에서 매천사를 본것도 같습니다,
    다음에는 꼭 들려서 예를 갖추겠습니다,
    덕산 곽면우님 이야기랑 좋은공부 감사합니다,
    여산선생님 항상 고맙습니다.
  • ?
    東窓 2008.02.14 23:37
    매천과 면우..
    지리산 자락에서 태동이 되고 꽃을 피워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선조들의 소중한 정신문화 유산을 일깨워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
    선경 2008.02.19 02:14
    지리산의 선비 면우 곽종석선생님의 고귀한정신과 얼을
    되새겨보며 지리역사의 중요한부문을 알게됨을 감사드립니다
    매천 황현선생님의 이야기를 기다려봅니다
    여산선생님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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